니체는 사유의 실험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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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사유의 실험실이었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1.04.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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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체: 그의 사상의 전기 | 뤼디거 자프란스키 지음 | 오윤희·육혜원 옮김 | 이화북스 | 524쪽

독일 최고의 사상사 평전 작가 뤼디거 자프란스키의 대표작 『니체 - 그의 사상의 전기』의 최신 개정판으로 옮긴이는 니체 전집과 이 책의 영어 번역본 그리고 각종 니체 연구서를 참고로 전면 새 번역을 했다. 옮긴이의 말을 들어보자

니체만큼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평가를 받은 철학자가 과연 있을까? 그는 한편에서는 미치광이 선동가라고 평가를 받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예술과 삶의 철학가로서 칭송을 받고 있다. 이러한 양면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며 평가는 과연 정당한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체가 여전히 세간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날 니체만큼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철학자가 또 있을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이름을 떨친 독일어권의 작가치고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이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작가들 대부분은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그가 젊은 시절에 받은 니체의 영향을 애써 과소평가하거나 아니면 유보적으로만 인정한다.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여러 가지 물음에 일목요연하게 대답하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니체의 저서가 워낙 광범위하고 많기 때문이다. 초기 저작에 나오는 주장과 후기 저작에 나오는 주장이 서로 상반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작품의 한 부분만을 인용하면 두 개의 주장이 종종 상충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곤란한 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각각의 작품을 그의 삶과 연결해서 생성 배경과 과정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 명의 작가, 혹은 철학자의 작품이 그들의 삶과 연관성을 갖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니체처럼 이 연관성이 밀접한 경우는 드물다. 니체에게는 그의 삶 자체가 가장 훌륭한 작품이다. 니체의 작품들은 자신의 삶이라는 큰 작품 속에서 부분적 의미만을 가질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에게 그의 삶보다 더 극적인 작품은 없을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니체의 삶과 작품의 내적인 연관성이다. 니체의 삶과 작품의 내적인 연관성이다. 니체의 전체 삶과 작품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작품 각각의 내용을 깊게 다루지는 않지만, 그의 작품이 어떤 연관성에서 서술되었으며, 초기 작품과 후기 작품이 어떤 맥락에서 연결되는지를 차분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니체의 삶을 조명하면서 그의 사상의 숨겨진 진면목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니체 철학은 과격하고 도발적이다. 인종차별적이고 심지어는 노예제도까지 옹호한다. 그는 쇼펜하우어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동정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의 마지막 모습, 즉 채찍질 당하는 말을 불쌍히 여겨 부둥켜안다가 정신을 잃고 마는 그의 마지막 모습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가? 그는 동시대인들에게 환멸을 느낀다. 이 환멸은 점차 고조되어서 거의 절망으로 바뀐다. 그의 사상의 과격함은 이러한 절망에서 나오는, 정제되지 않은 도취 상태에서의 주장이 아닐까? 실제로 그는 자신의 주장이 너무 과격하다는 것을 알고 양심의 가책을 느꼈기 때문에, 모든 사물이 자신이 파악한 것과는 다르게 진행되어서 자신의 이론이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편지를 친구에게 전하기도 한다. 모든 면을 고려하면 니체 사상의 과격함을 수사학적인 분출로 이해하고, 어느 정도 유보하면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전체 맥락의 개관은 개별 작품의 이해를 위해 필수적이다. 특히 요즘처럼 단편적인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는 한 분야, 혹은 작가에 대해서 전체를 개괄하는 시야를 갖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인터넷을 통해서 우리에게 제공되는 정보의 양은 이미 우리가 소화할 수 없을 정도이다. 현대인의 문제는 이러한 단편적인 정보를 보두 취합해서 전체를 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니체가 과거에 이미 이와 유사한 문제점을 지적했다는 사실이다. 니체는 19세기 사람들은 필요 없는 지식을 너무나도 많이 생산했고,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지식을 몸속에 지니고 다닌다고 조소한다. 체화되지 않은 단편적인 지식에 대한 니체의 비판에서 우리 현대인이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저자는 적어도 니체 철학에 있어서만큼은 단편적인 지식을 넘어서는 포괄적인 개관을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비교의 풍부함이다. 멀리는 그리스 시대의 철학에서 시작하여 니체와 시간을 공유했던 여러 사상가들, 그리고 니체 사후에 니체의 영향을 받은 작가들까지의 풍부한 예를 통해서 옮긴 이는 니체 철학뿐만 아니라 서양 사상사의 큰 줄기를 개관할 수 있었다. 

니체의 전체 삶을 몇 마디로 표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물론 충분하지는 않지만 가능한 일이다. 그의 삶은 자신이 살았던 ‘시대정신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작품 <반시대적 고찰>은 가장 상징적인 제목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의 눈에 비친 시대는 너무나도 이성적인 지식의 시대,  체화되지 않는 지식의 시대, 예술을 잃어버린 시대였다. 논리적인 설명만이 가치를 지녔기 때문에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여유를 잃어버린 시대이기도 했다. 니체는 이러한 시대정신에 대항해서 잃어버린 인간 본래의 열정과 도취를 – 니체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 찾고자 투쟁적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한다. 그는 당시의 기계적인 시대정신의 반대 극점을 찾기 위해 그리스의 비극시대로 돌아가기도 하고, 바그너 음악에 몰두하기도 한다. 과연 이러한 시도들이 성공했을까? 니체가 그토록 극복하고자 했던 자연과학적인 사고의 약진은 저지되었을까?

니체의 시대와 현재를 비교하면, 니체가 극복하고자 했던 추세는 현재에 들어서면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비극적인 사실이 바로 니체 철학이 아직까지도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이유이다. 니체 철학의 시대적 효용성은 20세기에 그랬던 것처럼 21세기에도 여전히 소진되지 않고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의 사상의 전기”라는 부제를 갖고 있다. 이 전기는 예전의 다른 일반적인 전기와는 다르다. 부제가 말해주듯이 니체 삶의 여정만을 서술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사상의 발전 과정을 그의 삶과 연결한, 사상과 삶의 전기이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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