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곶에 해가 떠야 한반도에 아침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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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곶에 해가 떠야 한반도에 아침이 온다’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승인 2021.04.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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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의 여행이야기]_ 울산 울주군 간절곶
유채가 만발한 간절곶 바람의 정원. 풍차의 날개가 소리 없이 돌고 소나무들은 바람의 결에 맞춰 몸을 기울였다.

바람이 많다. 바닷가 너른 잔디밭에 서 있는 풍차의 날개가 소리 없이 돈다. 가까운 송림의 나무들은 바람의 결에 맞춰 몸을 기울였다. 원래 바람이 많은 곳인가. 희미한 수평선에 떠 있는 희미한 배가 부웅~ 저음으로 대답한다. 맞아, 바람이 많은 곳이지. 바람의 정원에 유채꽃이 만발했다. 허리를 굽혀 꽃들의 얼굴과 마주하자 바람이 잦아든다.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대송리 간절곶. 이곳에서 동북아 대륙을 밝히는 새천년의 해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봉화산 동쪽으로 완경사를 이루다가 간절곶에 이르러 부드럽게 미끄러진다. 해안은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쪽의 봉화산 줄기가 동쪽으로 완경사를 이루며 내려오다가 간절곶에 이르러 바다를 향해 스르르 부드럽게 미끄러진다. 곶의 상부는 넓고 평탄한 잔디밭이고 뒤쪽으로 송림이 우거져 있다. 잔디밭은 ‘큰 갓 소나무 너머에 있다’고 해서 ‘집너메’ 또는 ‘집넘이’라 부른다고 한다. 조성된 잔디밭이 아니라 원래 그러하였던 모양이다. 이토록이나 넓고 평탄한 대지를 바닷가에서 본 적이 있었나. 땅은 초록의 잔디로 물들어 있고 태양은 정수리 위에서 세상을 향해 골고루 온화한 빛을 뿌리고 있다. 그러나 빛 속에 서자 몸이 휘청인다. 바람이 세다. 소리도 없는, 느린 해일 같은 바람이 낯선 힘으로 민다. 스쳐 지나가는 한 여인이 즐거운 음성으로 외친다. “여긴 올 때마다 바람이 왜 이래!” 해안선은 바위와 크고 작은 돌들로 이루어져 있다. 입자가 거친 모래도 조금 보인다. 암석으로 이루어진 해안가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곧추선 해안절벽이 간절곶에는 없다. 그래선지 바람은 후려친다기보다 묵직하게 민다. 

간절곶 잔디광장. 상부는 넓고 평탄한 잔디밭으로 ‘집너메’ 또는 ‘집넘이’라 부른다.

간절곶은 먼 바다에서 보면 곶의 모습이 간짓대처럼 생겨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간짓대’는 과일을 따기 위해 대나무로 만든 긴 장대를 뜻한다. 한자로는 ‘간절(艮絶)’이라 표기된다. ‘동북 끝 쪽’을 의미한다는데 얕은 머리로 아무리 궁리를 해 봐도 갸우뚱하다. 20세기 초의 문헌인 ‘울산읍지’에 ‘간절욱조조반도(艮絶旭肇早半島)’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간절곶에 해가 떠야 한반도에 아침이 온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에 관련된 더 오래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아마 일본인들이 지은 한자명일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진다. 19세기 이전까지는 ‘이길곶(爾吉串)’이라 했다. ‘넓고(廣) 길다(長)'의 뜻이다. 1864년에 발간된 ‘경상좌병영계록’에는 ‘간절(懇切)’이라는 한자의 지명이 등장한다. ‘우리 배인지 왜인의 배인지 불분명한 배 2척이 돛을 걸고서 형체를 드러내어 간절곶(懇切串) 외양(外洋)에 머뭇거리고 있습니다’라고 되어있다. 이로 인해 근래에는 ‘1864년을 전후로 간절곶(懇切串)이라는 지명이 굳어진 것으로 판단된다’는 주장이 있다. ‘간절(懇切)’은 ‘절실히 희망한다’는 뜻이다. 이길(爾吉)이 간절(懇切)이 되고 간절(艮絶)로 변했다. 간짓대는 간절(懇切)할 터인데. 

곶의 남쪽 낮은 구릉지에 새천년 기념비가 서있다.
1920년 3월 26일 처음 불을 밝힌 간절곶 등대. 현재의 등대는 2001년에 새로 설치한 것이다. 

곶의 남쪽으로 땅은 아주 천천히 구릉을 이룬다. 바위들이 수천 년 간 삭박되어 폐허가 된 제단과 같은 모습으로 흩어져 있다. 그 가운데 새천년 기념비가 서있다. 커다란 귀부가 바다를 향하고 이수에는 두 마리 용이 얼굴을 맞대고 있다. 구릉지의 가장 높직한 자리에는 간절곶 등대가 서있다. 1920년 3월 26일 처음으로 불을 밝혔고 지금까지 하루도 쉰 날이 없다고 한다. 빛은 26해리(48km)까지 도달한다. 바다의 일기가 나쁠 땐 무신호기로 소리를 내어 등대의 위치를 알려준다. 현재의 등대는 새천년을 맞아 2001년에 새로 설치한 것이다. 옛 등탑은 등대 앞 잔디밭에 전시되어 있다. 잔디밭에는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로도스 섬의 청동상’이 있다. 태양신 헬리오스가 양다리를 벌리고 횃불을 치켜든 모습으로 미니 사이즈다. 헬리오스의 다리 사이로 배들이 지나다녔다는 전설이 있다. 태양에 대한 의지와 숭배의 상징이다. 

간절곶 소망우체통. 높이 5m의 커다란 우체통으로 실제로 배달이 된다. 

바닷가에는 높이가 5m나 되는 ‘소망 우체통’이 있다. 1970년대에 사용했던 옛 우체통을 본떠 2006년에 제작한 것이라 한다. 근처 매점이나 카페에 무료 엽서가 비치되어 있고 실제로 배달된다. 얼마나 많은 소망들이 이곳에 담겼을까. 아무리 소박한 소망이라 할지라도 그 간절함은 우주만큼 클 게다. 울산 서생면의 진하 명선교에서부터 부산 기장의 신암항까지 10km의 길은 ‘간절곶 소망길’이다. 연인의 길, 낭만의 길, 소망의 길, 사랑의 길, 행복의 길 등 다섯 가지 테마로 이루어져 있다. 생각만 해도 따스해지는 단어들이다. ‘간절곶 소망길’은 부산 기장의 임랑 해변에서부터 울산 울주의 진하 해변까지 19.9km에 해당하는 해파랑길 4코스에 속해 있기도 하다. 동해의 해파랑길은 확실히 우주적으로 아름답다.  

간절곶 표지석. ‘간절곶에 해가 떠야 한반도에 아침이 온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유라시아에서 가장 해가 늦게 지는 포르투칼 호카곶의 상징돌탑. 2018년에 설치했다.  

곶머리에 간절곶 표지석이 있다. 바위에는 ‘울산읍지’의 문장을 새겨 놓았다. 옆에는 사다리꼴의 돌탑 하나가 서있다. 유라시아에서 가장 해가 늦게 지는 포르투갈 ‘호카곶(Cabo da Roca)’의 상징탑이다. 호카곶이 있는 신트라 시와 문화 교류를 맺어 2018년 1월 1일 설치했다. 호카곶의 탑 꼭대기에는 십자가가 있지만 이곳의 탑에는 없다. 종교계의 반발에 부딪혀 십자가를 제거했다고 한다. 무신론자의 입에서 ‘하!’라는 감탄사가 터진다. 바닷가 너른 대지에 선 돌 오브제는 분명 멋있게 쓸쓸하다. 탑에는 포르투갈의 국민 시인인 루이스 카몽이스의 글이 새겨져 있다. ‘여기,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땅이 끝나는 곳에서 두 숙녀가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진중하고 신뢰에 찬 눈빛을 마주하고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들의 차가워진 옆얼굴 속에 바다가 있다. 간절곶 바다의 수온은 4월이 가장 차다고 한다. 이제 서서히 따뜻해지는 시간이다.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대학에서 불문학을,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무가지 음악잡지 ‘Hole’을 만들었고 이후 무가지 잡지 ‘문화신문 안’ 편집장을 잠시 지냈다. 한겨레신문, 주간동아, 평화뉴스, 대한주택공사 사보, 대구은행 사보, 현대건설매거진 등에 건축, 여행, 문화를 주제로 글을 썼으며 현재 영남일보 여행칼럼니스트 겸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내 마음의 쉼표 경주 힐링여행』, 『청송의 혼 누정』, 『물의 도시 대구』(공저)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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