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 뮤지컬 〈검은 사제들〉
상태바
인간이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 뮤지컬 〈검은 사제들〉
  • 최승연 뮤지컬평론가
  • 승인 2021.04.04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승연의 뮤지컬 인사이트]
공연사진 제공: 알앤디웍스

계획되었던 공연들이 하나둘 시작되면서 극장들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코로나 직전까지 흥미로운 흐름을 보여주었던 ‘이머시브 공연’이 뮤지컬 <그레이트 코맷>으로 조심스럽게 재개되었으며,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각색한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삼연)와 <블루레인>(재연)이 나란히 공연되고 있으며, 더 이상 공연이 불가능할 것 같았던 <명동로망스>가 절찬리에 시작되었고 배우 양준모가 예술감독을 맡은 <포미니츠>가 곧 공연을 앞두고 있다. 또한 예측 불가 코미디 <인사이드 윌리엄>도 창작산실의 마지막 작품으로서 흥행을 이끌고 있다. 이 사이에서 <검은 사제들>(알앤디웍스 제작)이 주목된다. 한국 뮤지컬 씬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오컬트 뮤지컬이라는 점, 뮤지컬 <호프>를 만든 강남 작가, 김효은 작곡가, 오루피나 연출가가 다시 모여 만든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뮤지컬 <검은 사제들>은 2015년에 544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오컬트 영화의 가능성을 선보인 장재현 감독의 영화 <검은 사제들>을 원작으로 한다. 김광철·장병원이 엮은 영화 사전에 의하면 오컬트(occult) 영화란 초자연적 현상이나 악령, 악마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심령 영화지만 비현실적인 공포 영화와 달리 악마의 실체와 존재를 현실 세계에서 끄집어내고 마치 실화처럼 사건을 다루는 장르를 말한다. 따라서 오컬트 영화의 극적 긴장감은 악령의 존재가 얼마나 개연성 있게 다뤄지는가 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가톨릭의 공식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구마의식을 밀어붙이는 김 신부의 카리스마와 악령이 빙의된 영신의 불가해한 변화, 그리고 이 과정 전체를 지켜보며 정신적 성장을 이뤄내는 최 부제의 이야기는 악령의 존재가 극적 현실에 미치는 가공할만한 파괴력을 믿고 경험한 이들의 기록과 같다. 실제로 가톨릭 교계에서 <검은 사제들>이 묘사한 구마의식의 절차와 신빙성에 의문을 품고 비판했던 것은 영화가 ‘기록한 것’을 실제 종교적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시선에 좌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공연사진 제공: 알앤디웍스

그렇다면 뮤지컬은 이 오컬트 장르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 영화에 비해 뮤지컬은 리얼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공간은 한정되어 있으며 영신의 변화와 그 변화에 대한 반응은 카메라의 시선만큼 타이트하게 묘사되기 어렵다. 뮤지컬 <검은 사제들>은 이에 대해 두 가지 측면에서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 영신의 빙의된 상태를 공연성으로 확장시켜 표현하는 것, 그리고 작품의 테마를 공연 전체에 스며들게 해서 실화처럼 사건을 다루는 오컬트 장르의 토대를 건드리는 것이다.

영화도 그랬겠지만 뮤지컬 역시 영신의 구마의식 장면을 어떻게 다룰지 매우 고민했을 것으로 보인다. 뮤지컬은 악령을 숙주를 ‘통해’ 인식되는 존재가 아니라 배우가 ‘실제로’ 연기하게 함으로써 공연의 시작부터 스스로 드러나는 존재로 노출시켜 놓았다. 따라서 악령은 처음부터 어디에나 있고 누구에게나 빙의될 수 있는 존재로 잠재되어 있다. 공연의 하이라이트인 구마의식에서는 이 맥락을 따라 악령을 무대 중앙의 2층에 위치시켜, 영신을 내려다보며 정신을 지배하는 존재로서 그 작용의 결과들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무대화했다. 또한 영화에서처럼 영신에게 여러 악령들이 빙의되어 있음을 앙상블 배우들의 합으로 시각화하는 방법도 더했다. 따라서 영신의 구마의식은 배우 각각의 역량보다 악령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안무와 집중감을 고조시키는 조명 효과의 합, 그리고 이 메커니즘 안에서 각자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배우들의 연기로 구현된다. 이로써 구마의식은 시각적, 청각적 요소들이 무대 전체를 휘감는 분위기로 확장되어 표현된다.

공연사진 제공: 알앤디웍스

그런데 사실 뮤지컬의 관심은 말초적인 공포보다 인물들이 하는 이야기에 있다. 이것이 <검은 사제들>이 뮤지컬로 제작된 이유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뮤지컬은 영화의 서사를 대부분 이어받고 있으나 인물들의 ‘이야기’를 뮤지컬의 어법으로 강화시킴으로써 영화와 차이를 만든다. 뮤지컬은 보통 공연의 시작점에 작품의 세계를 보여주고 설명하는 넘버를 배치한다. 뮤지컬 전체의 ‘아이 엠 송(I am song)’이라고 할 만한 이 넘버를 누가, 어떻게, 어떤 내용으로 노래하는지 결정하는 것은 작품의 방향을 선택하는 문제와 같다. <검은 사제들>은 이 자리에 최 부제를 위치시키고, 최 부제가 신의 침묵을 질문하며 신의 존재에 회의를 품는 넘버를 부르게 했다. 그리고 이미 영화를 통해 알려진 바대로, 어린 시절 여동생이 큰 개에 물려 죽는 사고 현장에서 도망침으로써 부채의식과 공포에 시달려왔던 최 부제의 트라우마를 반복적으로 노출시켜 그가 왜 사제가 되려고 했는지 그리고 그가 왜 영신의 구마의식을 지속하려고 하는지 설명한다. 뮤지컬은, 악령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돼지로 들어가는 구마의식의 마지막 순간을 영신의 숨이 끊어지는 호흡으로 톤 다운시켜 표현하는 영화와 달리, 김 신부, 최 부제, 이영신, 악령, 그리고 죽은 여동생의 환영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다성적 넘버로 풀어내어 휘몰아치는 방법을 선택한다. 따라서 영신을 악령으로부터 해방시키겠다는 김 신부의 의지와 함께, 영신을 구마함으로써 여동생의 죽음에 대한 부채의식으로부터 해방되는 최 부제의 이야기가 강조된다. 이어 최 부제가 악령이 거하던 2층 중앙으로 올라가 돼지를 안고 강에 뛰어드는 결말은, 악의 끈질긴 회유에도 불구하고 신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고백하는 최 부제의 마지막 넘버 이후에 벌어지는 사건으로 각색되어 내적 갈등을 극복한 최 부제의 선택의 결과로 그려진다. 뮤지컬은 이로써 첫 넘버의 질문에 마지막 넘버가 응답하는 구조로 완결되며, 그 과정에서 정신적 성숙을 이루는 최 부제의 이야기를 밀도 있게 구현한다. 영신 역의 배우가 최 부제의 여동생을 함께 연기해서 최 부제의 내면과 결합되는 방식 역시 흥미로웠다. 

이렇게 뮤지컬이 최 부제의 이야기를 한 겹 더 쌓은 이유는 ‘인간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김 신부의 의지를 전체 테마로 확장시키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래서 <검은 사제들>은 오컬트적 쾌락보다, 인간에 대한 희망에 방점을 찍은 뮤지컬로 읽힌다. 인간이 인간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보다 지금 이 시대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을까. 영화가 은유하거나 공백으로 남겨놓은 인물의 이야기를 캐릭터 송으로 구체화하여 우리에게 들려준 뮤지컬 <검은 사제들>은, <호프>에서부터 이어지는 자기 회복의 메시지를 원작의 틀 안에서 절묘하게 녹여낸 작품이다. 다만 영화를 미리 봐야 공연이 잘 보인다는 점, 전체 흐름과 잘 붙지 않는 B급으로 표현된 장면들에 대한 섬세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5월 30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공연된다. 

 

최승연 뮤지컬평론가

런던대학교(로열 할러웨이)에서 연극학 석사를, 고려대에서 국어국문학 박사를 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국제한국학센터 연구교수, 워싱턴 대학교(시애틀) 동아시아학과 객원연구원,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공연예술스쿨 교수 등을 역임했다. 주요 논저로는 “청년 테마로 본 뮤지컬: 팬덤의 참여욕망과 수행성에 대한 고찰”, “라이선스 뮤지컬의 현지화에 대한 일고찰”, “확장하는 보편, 타협하는 로컬리티”, “해방 후 오영진의 좌표와 음악극 실험”, “만들어진 비애와 감성의 연대”, 미국 뮤지컬과 국가정체성의 형성(공역), 멜로드라마적 상상력(공역)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