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의 시간론, 글로벌 자본주의와 테크놀로지를 사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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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시간론, 글로벌 자본주의와 테크놀로지를 사유하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04.04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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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간과 영원: 질 들뢰즈의 시간론 | 히가키 다쓰야 지음 | 이규원 옮김 | 그린비 | 248쪽

20세기를 자신의 세기로 만든 철학자 들뢰즈. 그의 철학적 궤적에는 언제나 ‘시간’의 문제가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대표작 『차이와 반복』에서 제시된 ‘세 번째 시간’이라는 개념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하며 그의 철학을 확장시켰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충분한 논의나 연구가 이루어지진 않았다. 이 책은 들뢰즈의 시간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며, 전기에서 후기에 이르기까지 들뢰즈의 철학 전반을 시간론이라는 축을 통해 순수 철학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철학사적인 문맥에서 해독한다.

들뢰즈는 ‘생(生)’=‘시간’의 철학자인 베르그송을 전면적으로 계승하지만, ‘시간’과 더불어 ‘공간’의 사유를 강조함으로써 ‘생성’의 체계를 확장한다. 흐름 속에서 흐름의 극한인 공간성을 포착해야 생성하는 개체를 논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공간화는 “영원한 자연의 시간이 현재와는 다른 차원에 포함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순간’과 ‘영원’의 교착을 동반한다. 이러한 들뢰즈의 시간론은 경험 가능한 양상으로서의 시간(현재=‘첫 번째 시간’)과 경험 불가능한 순서로서의 시간(직선의 시간=‘세 번째 시간’)이 역설적인 관계에 있다는 것을 해명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며, ‘선험적 경험론’으로 대표되는 들뢰즈 철학 전체에서도 구심적인 역할을 맡는다. 아울러 20세기까지 이어져 온 이른바 ‘시간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시간과 자기’의 채색이 짙은 현대 사상을 “비자기적인 ‘자연’의 방향으로” 전개시키는 독창적인 사유이기도 하다.

질 들뢰즈

저자는 시간의 개념이 들뢰즈의 주요 저작에서 어떻게 변신을 거듭하는지를 보여 준다. 들뢰즈 전기의 주저 『차이와 반복』에서 선험적, 비경험적 시간으로 제시된 ‘세 번째 시간’은 『의미의 논리』에서 ‘아이온의 시간’으로 변용되고 ‘반-효과화’라는 주제와 맞물려 ‘순간으로서의 영원’으로 해석된다. 이것이 후기의 『시네마』에 이르러 이미지화(‘시간-이미지’) 가능한 시간으로, 가타리와의 공저 『안티오이디푸스』 및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는 무한한 부감(俯瞰)으로 파악되면서 각각 시각예술과 ‘역사’의 관점에서 논의된다. 

들뢰즈가 직접 다루지 않은 역사성의 문제는 벤야민과 푸코의 논의로써 더욱 천착되는데, 특히 “들뢰즈의 논의로 착각할 정도의 용어가 여기저기 등장하는” 벤야민을 매개로 한 접속이 시도된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벤야민을 관류하는 바로크성은 레비스트로스의 논의로 이어지면서 행위성의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그리고 두 편의 보론에서는 들뢰즈 철학에서의 방법론적 역설과 전회라는 측면에서 본서의 기조가 보완된다.

저자의 일관된 논지는 들뢰즈 철학의 ‘내삽’과 ‘외삽’을 동시에 구성함으로써 그의 시간론을 20세기의 자연철학으로서 위치지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자본주의와 테크놀로지의 문제를 포함한 21세기의 사유로 열어젖히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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