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트 홀의 목소리로 듣는 문화이론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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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트 홀의 목소리로 듣는 문화이론의 역사
  • 김용규 부산대·영어영문학
  • 승인 2021.03.2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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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문화연구 1983: 이론의 역사에 관한 8개의 강의』 (스튜어트 홀 지음, 김용규 옮김, 현실문화, 416쪽, 2021.02)

테리 이글턴은 영국의 지적 좌파에 관한 한 편의 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 지적 좌파의 다양한 측면과 경향을 보여줄 수 있는 전형적인 인물을 한 명 찾는다면, 아마 스튜어트 홀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스튜어트 홀(1932~2014)은 자메이카 출신의 대표적 영국 문화이론가로서 리처드 호가트, 레이먼드 윌리엄스, E. P. 톰슨을 잇는 영국 문화연구의 핵심 이론가 중 한 명이다. 그는 1950년대 중반부터 『뉴 레프트 리뷰』에 적극 참여하였고, 호가트를 이어 1968년부터 버밍엄 대학 현대문화연구소의 제2대 소장을 맡아 현대문화연구소를 명실상부 영국 문화연구의 산실로 키운 인물이다. 그는 현대문화연구소를 맡고 있는 동안 계급 문제를 넘어 하위문화, 인종 및 종족성,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다루는 등 문화연구의 범위를 크게 확장시켰다. 특히 그는 서구 마르크스주의와 구조주의 이론을 적극 수용하여 영국 문화주의와의 종합을 시도하기도 했다. 1979년에 현대문화연구소를 떠나 개방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홀은 문화연구를 현실 문화정치의 한가운데로 이동시켜 대처리즘의 문화정치를 탁월하게 분석하는 성과를 내놓았다. 2014년 작고하기 직전까지 홀은 대처리즘 이후 영국사회의 변화를 ‘새로운 시대’라는 전 지구적 시각을 통해 다시 읽는 등 무려 지난 50년 이상 동안 영국의 지적 좌파의 역사를 실천적으로 구현해온 인물이다. 

『문화연구 1983—이론의 역사에 관한 8개의 강의』는 버밍엄 대학의 현대문화연구소를 떠나 개방대학으로 옮긴 이후 홀이 그의 제자 로렌스 그로스버그의 초청으로 1983년 여름 어바나-샴페인 소재 일리노이 대학에서 개최된 학술대회의 별도 세미나로 진행된 것이다. 이 학술대회와 세미나들은 문화이론/문화연구의 역사에서 결정적 전기가 되었는데, 당시 프레드릭 제임슨, 가야트리 스피박을 비롯한 당대의 대표적 문화이론가들이 대거 참여했던 이 학회는 미국에서 문화이론/문화연구가 확산되고 심화되는 중요한 전기가 되었다. 홀의 강의는 당시 참석한 수많은 연구자들에게 큰 감동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쉽게도 거기에 참석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이 책의 강의 내용은 1983년까지 진행된 문화연구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홀의 생생한 목소리로 들려준다는 점에서 문화연구의 소중한 성과이자 중요한 자료이다.

이 강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강의가 진행될 당시 문화연구의 상황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영국 문화연구는 상당히 중요한 전환점에 접어든다. 1960년대부터 전후 영국의 경제 호황과 고등교육의 대규모 확장으로 그동안 교육에서 소외되었던 노동계급 및 중하층계급의 자식들과 여성들이 대학교육의 장으로 대거 진입하게 된다. 이들은 엘리트 중심의 대학 교육, 특히 전통적 영문학 교육에 도전하는 한편 비판적 이론을 기반으로 문학에서 문화로의 전환을 추동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세대들을 위한 이론적·실천적 학문으로 등장한 것이 문화연구이다. 문화연구의 등장은 단순히 문학연구를 문화연구로 전환하자는 외연적 확장에 그치지 않고 문화 주체를 새로 부상하는 대중으로 전환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하지만 이 강의가 진행된 1983년은 문화연구에 큰 전환이 일어나고 있었다. 1979년에 집권한 대처 정부는 전후 타협적 사회복지체제를 해체하고 그동안 공적 제도 및 국영기업을 민영화시켜 시장과 경쟁의 논리 속으로 몰아넣었다. 대처 정부는 이런 여세를 몰아붙여 60년대 이후 큰 인기를 얻던 진보적·비판적·대중적 학문을 시장의 ‘적’으로 규정함으로써 60년대의 진보적 문화의 성과들을 부정하고자 했다. 이런 변화는 문화연구에도 반영된다. 80년대의 문화연구는 60년대와는 상당히 다른 흐름을 형성한다. 한편으로는 대처리즘의 정치적 공세 속에서 문화연구의 정치화가 눈에 띄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자본주의의 공세 속에서 자본의 경쟁 논리에 연루된 문화연구의 주장들이 부상하게 된다. 영국 경제의 침체와 문화의 급속한 상품화 및 자본화 속에서 80년대의 문화연구는 자본에 의한 문화의 통합과 그러한 통합에 대한 문화적·정치적 저항이라는 이중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1983년에 진행된 이 강의는 영국 문화연구의 이런 변화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특히 이 강의가 갖는 정세적·국면적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홀은 상아탑에서 현실을 멀찌감치 바라보는 연구자라기보다는 현실 상황에 비판적이고 실천적으로 개입하는 비평가였다. 그의 글은 대부분 구체적인 정치적·역사적 국면에 대한 개입으로서 쓰인 것이다. 홀이 이 책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가 생전에 이 강의록의 출간을 꺼렸던 것은 이런 국면적 개입으로 쓴 글, 그리고 그런 개입에 근거한 자신의 문화이론의 역사가 ‘하나’의 문화이론의 역사를 넘어 문화연구의 ‘일반적 역사’로 오독되는 것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이 강의록은 문화연구의 전성기에 볼 수 있던 아주 중요한 이론적 성과들을 거의 모두 담고 있다. 이 강의록은 영문학 연구에서 문화연구가 어떻게 태동하게 되었는가, 문화주의와 구조주의의 성과와 한계는 무엇인가를 정확히 짚어내는 한편, 그 둘 간의 이론적 종합을 어떻게 성취할 것인가, 마르크스주의의 토대/상부구조 모델의 한계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문화적인 것의 상대적 자율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등 문화연구의 핵심 주제를 생생하고 치밀하게 다루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 이 강의록의 핵심은 사회구성체 속에서 문화적인 것의 위치를 정확하게 자리매김하는 데 있다. 홀의 핵심 주장을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문화적인 것은 공통적이거나 공유적인 것의 장이라기보다는 모순과 갈등, 경합의 장이다. 둘째, 문화의 모순과 갈등, 경합은 사회구성체 속의 사회세력들 간의 관계와 연결되어 있다. 셋째, 그럼에도 그런 모순적이고 적대적이며 경쟁적인 문화들의 의미를 경제적 토대에서 즉각 읽어낼 수 없다. 따라서 이 강의록은 문화의 위치를 해명하는 것, 즉 모순과 갈등, 경합의 장인 문화적인 것을 경제와 같은 다른 층위로 환원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전적으로 자율적 층위로도 자리매김하지 않는, 즉 문화적인 것의 독특한 위치를 해명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오늘날 문화연구는 더 이상 영국적인 현상도 아니고 유럽적인 현상도 아니며 이미 전 지구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인문사회 분야의 이론가들의 연구 속에도 문화연구는 마치 공기와 물처럼 스며들어 있다. 문화연구에 밝지 않으면서 인문학 연구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문화연구의 외연이 크게 확장되면서 자칫 문화연구의 근본적 핵심이 간과되기 쉽다. 이런 상황에서, 비록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홀의 강의록은 문화연구의 핵심을 다시 사고하는 데 중요한 혜안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즉, 문화연구 1983은 문화연구의 절정기의 이론적 논의로서 문화연구가 계속 확장되고 발전해나갈 때 항상 참조할 수밖에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용규 부산대·영어영문학

현재 부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영미문화연구, 문화비평이론, 세계문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고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부산대 인문학연구소 소장, 인문한국 단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혼종문화론》, 《문학에서 문화로》가 있고, 역서로는 《백색신화》, 《아래로부터의 포스트식민주의》, 《글로벌/로컬》, 《미술관이라는 환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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