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와 디지털, 앞으로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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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와 디지털, 앞으로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 남궁술 경상국립대·법학
  • 승인 2021.03.15 13: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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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웹캠을 마주하며 마이크 앞에 앉아 혼자 떠들어댄다. 떠들다가 갑자기 버벅거린다. (에이 씨! 다시 시작할까?) 속으로 고민하다가 체념하듯 이어서 다시 떠들어댄다. 물론 버벅거림이 심각하면 어쩔 수 없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만... 나는 물론 요즘의 대세인 너튜버가 아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아니다. 보다 솔직하게는, 학생들 앞에서 말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요즘은 모니터 앞에서 혼자 말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1년이 넘었으니 이제는 좀 익숙해질 법도 한데 어색함, 쑥스러움, 허전함은 계속 나를 더듬이로 만든다. 언젠가 어딘가에서 나의 더듬거림을 학생들도 홀로 듣고, 보고 있을 게다. 

Covid-19의 위용에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가 격언처럼 느껴진다. 강의실을 어슬렁대며 전후좌우의 학생들과 눈과 입으로 소통하던 라이브는 점점 추억이 되고 있다. 그런데 참 묘한 아이러니가 곁들어진다. 비대면 녹화 강의다 보니, 일정한 주별 강의 시간표와 무관하게, 나는 매 주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강의(녹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직장의 조직화된 스케줄에서 많이 자유로워진 것이다. 함께보다는 홀로 일(특히 강의!)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런데 이렇게 생긴 자유는 그리 의미 있게 다가오질 않는다. 한때 학생들로 후끈하던 강의실이 차분히 빈 공간으로 남아 있다. 학생들에게 수다스럽게 얘기하다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그들의 눈빛에 긴장하곤 했던 실시간의 입체감정은 그 투박함이 조금씩 마모되며 평면화되고 있다. 원래는 순도 100%의 아날로그였는데 어느덧 밋밋한 디지털로 되어가는 것이다. 

인터넷 강의를 하다 보니, 인터넷과 나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쇠퇴해가는 기억력으로 버티는 나는 디지털화된 정보의 바다 앞에서 지극히 초라해진다. 강의 녹화 중 버벅대거나 말실수하는 나를 지켜보면서, 요즘 나는 자주 다음의 상상을 한다. 내가 습득·선택·고민하며 작업한 지식이나 정보를 나의 목소리가 아닌 고품질의 인공지능 언어로 명료하게 전달한다면, 학생들의 반응은 어떨까? 아니, 나는 빠진 채, 정밀하게 제작된 인공지능이 무한한 데이터를  순식간에 분석하고 정리하여 강의를 한다면, 그 반응은 어떨까? 

오늘날 우리는, 인공지능이 절대 가질 수 없는 인간만의 능력은 감성과 공감이라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곤 한다. 이 공감이 있기에 우리 인간들은 자연스럽게 서로 연대한다. 공감은 감성이 있기에 형성되고, 감성은 서로 부딪히면서 작동한다. 그런데 지금은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라는 이 격언(!) 덕분에 인간의 감성은 고된 노동에서 많이 여유로워졌다. 그렇지만, 사실 우리의 삶에서 감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오래전부터 작아지고 있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SNS는 서로 어렵게 시공을 맞추어 만나야 할 필요 없이 우리를 소통하게 만들었다. 현실이 아닌 가상의 만남이 잦아졌다. 불특정 다수와의 시공의 한계를 넘은 익명의 대화도 가능해진 지 오래다. 가상의 만남도 만남이기에 감성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감성을 순전히 아날로그적이라 할 수 있을까? 물론 아직까지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주류이긴 하지만, 그 성질상의 불편함이 있기에 우리는 가상의 세계에 수시로 드나들고 있는지 모른다. 가상(virtuality)의 비중이 현실(reality)보다 커진다면, 가상은 단순한 가상이 아니다. 혼을 빼는 인터넷 게임에 열중하는 이들은 게임 콘텐츠에 아낌없는 투자와 거래를 한다. 가상의 비물질의 경제적 비중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20세기 초의 초현실주의자들(surrealists)의 외침이 시간을 넘어 우리 앞에 다가서는 듯하다. 빛의 속도로 무한히 늘고 있는 정보의 양과 질은 우리에게 아날로그적 방법으로 이를 꼼꼼히 분석할 시간적·정신적 여유를 주지 않는다. 디지털화된 분석 프로그램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하는 시기가 올 수도 있다. 학문을 한다는 우리로서는 냉철히 이를 인식하고 고민해야 한다. 아날로그적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지금까지의 규범적 학문은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는지, 디지털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한 몰가치적 시스템으로 전환되지는 않는지, 혹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균형적 병존이 지속적으로 가능한지의 여부 등을 말이다. 

교수님의 강의를 놓칠세라 열심히 받아 적던 과거의 대학 시절이 갑자기 그리워진다.    


남궁술 경상국립대·법학

경상국립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경상국립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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