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10% 줄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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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10% 줄여라!
  •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교수·과실연 명예대표
  • 승인 2021.03.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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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찬 칼럼]

지난 8일 KAIST 총장 취임식에서 이광형 신임 총장은 “KAIST의 문제는 너무 공부를 많이 한다는 것”이라며 “전공 공부할 시간을 10% 줄이고, 그 시간에 인성과 리더십을 배우자”고 제안했다는 보도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공부 열심히 해라!’라는 말은 우리 모두가 어려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그래서 ‘좋은 성적’, ‘좋은 학점’ 받아 ‘1등’, ‘합격’하는 것이 가장 큰 효도로 인정받기도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생은 오로지 공부 열심히 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가 되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그동안 우리 교육은 ‘지식’ 습득에 초점을 두어왔고, 모든 학생을 ‘점수’로 줄 세우며 획일화시켰다. 물론 오랫동안 개인의 특성과 소질을 살리는 교육, 인성교육 등을 이야기 해왔지만, 결국은 수능 점수로 귀결되곤 하였다. 이러한 흐름이 대학에서의 ‘학점’ 경쟁으로 이어지며, 연구영역도 논문 편수, 피인용 지수, 임팩트 팩터 등 ‘수치’로 인정받게 되고, 대학도 국내외 평가에서의 ‘순위’가 ‘좋은 대학’을 결정짓게 됨에 따라 대학의 발전목표가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개인 중심, 지식 중심의 수치로만 획일화된 생태계는 고도의 ‘창의성’을 기대하기 어렵고, ‘따뜻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인성과 리더십‘은 바로 이러한 우리 사회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오늘과 같은 대전환기에 창의성과 생산성은 물론 개인의 삶의 질도 바로 다름을 존중하는 ‘다양성’, 더불어 지혜를 모으는 ‘협업 정신’, 그리고 서로를 배려하며 공존하기 위한 ‘공동체성’을 담을 수 있는 사회 환경에서 나온다. 

‘인성과 리더십’은 또 다른 차원에서 국가 경쟁력이 된다. 사실 국가 발전은 각 영역, 단위의 리더가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느냐에 크게 좌우된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요즈음은 교육, 과학기술을 포함한 모든 영역이 ‘정치’가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리더십이 국가 경쟁력을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지금처럼 노량진 학원, 고시촌 등을 거치며 공부만을 요구하는 시험, 고시 등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 지도자로 나서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인성과 리더십을 겸비하도록 하는 일이 바로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일이 된다. 

예를 들면, 팬데믹으로 매우 어려워진 유럽을 이끌고 있는 독일의 경쟁력은 바로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서 비롯되었다고들 한다. 세계적인 언론사들로부터 지구상 최고의 지도자로 선정된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먼저 그는 총리 관저보다는 개인 아파트에서 월세를 내고 살며, 소박한 옷차림, 부드러운 미소, 겸손한 말, 꾸밈없는 행동으로 국민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늘 모든 이해집단을 배려하고, 전문가의 조언을 중시하며, 반대당의 업적도 인정하여 좋은 정책, 공약은 승계하는 겸손, 포용, 진정성이 담긴 인성에서 그의 리더십을 읽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 고교 졸업생의 약 70%가 대학에 진학한다. 이는 미래 대한민국 전 분야에서의 70%는 대학에서 키운 인재들로 채워지므로, 이들이 어떤 역량과 정신, 태도를 갖추냐에 따라 사회 생태계와 국가의 경쟁력이 결정된다. 현재 대학들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신기술 첨단 분야의 인력 양성을 비롯해 시대 변화와 수요에 맞춰 각자 특성화를 통해 살아남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등록금 정책, 신입생 급감 등에 따른 재정 악화, 정부의 평가와 이에 기반한 재정지원이라는 획일화된 시스템 등에 대학들이 발목 잡혀있으며, 현재 여러 곳이 무너져가고 있다.

대학들은 수십 년간 ‘자율성’에 기반한 대학운영 및 재정확보 등을 외쳐왔지만, 누구도 귀담아듣지 않고 있으며, 이에 대한 앞으로의 정부나 정치권의 변화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는 대학들이 선제적으로 학생, 학부모로부터 신뢰와 기대를 얻는 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 진정성을 가지고 ‘한 학생’을  제대로 키우는 일에 이미 주어진 재정이라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특히 학식과 재능이 뛰어난 ‘인재(人才)’를 넘어 ‘사람이라는 재목’을 키운다는 뜻의 ’인재(人材)’로서 성장하게 하는 일이다. 대학의 가치를 스스로 세워나가는 길이다.  

현재 우리 대학들이 갈수록 매우 어려운 상황에 빠져들고 있지만, 그래도 여기저기서 희망을 보게 된다. 대학들이 서로 ‘공유’하며 협력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100% 비대면 교육을 경험하며 얻은 자신감을 기반으로 온라인을 통한 대학 간 협력을 구체화시키며, 다양한 패턴으로 공존하는 방법을 만들어 가고 있다. AI 등 새로운 분야에 대한 교육 콘텐츠, 전문교수 인력, 실험실습 장비 등 개별대학으로서는 부족할 수밖에 없는 인적·물적 자원 문제를 ‘공유대학’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해결해나가는 것이다. 

이와 같은 대학 간 협업은 급변하는 대전환기에 대학 간, 지역 간 상생하는 새 판을 짜는 일로서 그 의미가 크다. 그런데 이는 국가 전역에 걸쳐 인성과 리더십을 갖춘 새로운 인재(人材)를 골고루 제대로 키워나가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대학들이 스스로 서로 배려하고 도우며, 현재의 제한된 사회 환경을 이겨나가는 길이다. 대학도 이제는 개별대학 ‘평가 점수, 지표 관리’ 노력을 10% 줄이고, ‘한 학생의 성장’에 관심을 더욱 높이며, 우리 고등교육 생태계와 사회의 발전에 진정성을 가지고 기여하는, 대학 자체의 ‘인성과 리더십’도 키워야 할 때다.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교수·과실연 명예대표

연세대 수학과 명예교수로 연세대 대학원장, 대한수학회 회장, 국제퍼지시스템협회(IFSA) 집행이사, 교육과학기술부 정책자문위원장,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 과학기술분과 의장, 포스코청암재단 이사, 국무총리 소속 인사혁신추진위원회 민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기초과학연구원(IBS) 과학자문위원회(SAB) 위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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