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빛도 없는 민중’ 같은 도깨비…한국인의 삶과 욕망을 보여주는 ‘도깨비 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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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빛도 없는 민중’ 같은 도깨비…한국인의 삶과 욕망을 보여주는 ‘도깨비 통사’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1.03.07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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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은 도깨비와 함께 산다: 도깨비로 보는 한국 사회문화사 | 이윤선 지음 | 다할미디어 | 304쪽

이 책은 ‘도깨비’로 풀어보는 한국학, 민속학, 인류학적 고찰을 담은 책이다. 도깨비의 시원이 된 비형랑 설화를 비롯해 다양한 민담을 분석하며, 어원을 밝히고 도깨비방망이나 도깨비감투 등 도깨비 상징물의 출처와 의미도 살펴본다. 도깨비를 ‘이름도 빛도 없는 우리 민중’에 비유하며 계보를 따라서 도깨비의 형상과 이미지를 추적하며, 이를 통해 도깨비에 투영된 한국인의 욕망을 읽어낸다. 또한 마을 공동체에서의 도깨비의 기능과 역할을 살펴보며 한국의 민속을 더 깊이 파고든다. 한중일 도깨비 비교, 불교나 무속 등 종교적 고찰까지, 도깨비를 둘러싼 한국 사회문화사를 두루 통찰한 ‘도깨비 통사’라 할 수 있다

도깨비 민담을 듣고 도깨비굿 하는 모습을 보며 자라, 도깨비가 액운을 막아준다고 믿는 모습. 한국인의 흔한 삶의 풍경이었다. 권위 있는 신격은 없지만, 익살스럽고 해학이 넘치며 친근한 존재였던 도깨비. 그 많던 도깨비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지금은 자취를 감췄지만, 도깨비는 우리 문화사의 대부분을 차지했을 뿐 아니라 한국인의 삶과 죽음의 경계에까지 깊숙이 숨어 있던 ‘문화적 형상’이다. 그러나 도시화, 문명화로 대변되는 천편일률적인 성장 담론이 한국인의 삶에서 도깨비를 몰아내고, 지금은 디지털 영상 문화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도깨비는 일정한 형상을 가지고 있는 정형화된 대상물이 아니다. 종류를 가늠하기도, 숫자를 헤아리기도 어렵다. 도깨비만큼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의미망을 가진 캐릭터도 없다. 그래서 언제고 그 무엇에나 의미를 투여해 소환할 수 있는 ‘부정격의 신성을 가진 존재’라 정의한다.

이 책에서 주목한 것은 사람과의 ‘친연성’이다. 도깨비들은 갯벌이나 우실(마을 숲) 늪, 오래된 나무 등 ‘전이지대(轉移地帶)’에 산다. 전이지대란 인간과 신의 교섭지, 즉 ‘중간지대’다. 여기에 머물면서 신격으로 모셔지기도 하고 사람보다 천하고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비하되기도 했다. 마치 그림의 ‘여백’이나 글의 ‘행간’ 같은 존재다. 어딘가 모자라고 어리숙하며,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방망이 하나로 재화를 만들거나 금전 보따리를 내주는 것’처럼 인간의 자잘한 욕망들을 해소해주기도 한다.

이런 도깨비의 기능은 무엇일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응징의 기능을 포함한 문지기 기능과 풍어와 다산, 재화를 가져다주는 초복 기능이다. 도깨비고사를 살펴보면 갯벌의 도깨비를 부를 때 ‘물아래 김서방’이라 호명했는데, 연안과 강역의 갯벌 어업 문화에서는 용왕이나 해신처럼 더 권위 있고 능력 있는 신들 대신 하찮은 신격이지만 부담 없고 친근한 ‘갯벌 수호신’으로 도깨비를 부르는 어장고사 등의 마을제사가 집중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도깨비들이 현재 우리들의 삶에서 사라져버렸다는 점이다. 그 까닭은 근대 이후 마을 숲을 밀고 갯벌을 없애서 경작지를 만들고 공장을 지은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도 전이지대들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 공동체가 무너지고 자연환경이 훼손되며 개인주의가 난무하는 세태와 무관치 않다. 최근 화두가 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정신은 천편일률적인 성장담론으로, 우리 안의 여백을 몰아내고 있다. 덩달아 현대인의 삶 속에서 자잘한 욕망들을 투사하며 여백이나 행간 같은 역할을 하던 도깨비들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설화로 전승되던 도깨비들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게임·드라마·영화·출판 콘텐츠 속에서 재구성된 도깨비는 끊임없이 소환되고 있다.

이 책에서 살펴본 도깨비들은 중심부가 아니라 변방이나 지역, 가부장 대신 여성, 문화적 다양성 등 여백에 투영되고 행간에 스며드는 ‘소소하고 하찮은 것들’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존재이다. 저자는 편향된 기성 질서와 관념들을 뒤집고 균형을 잡는 ‘전이지대의 도깨비’를 떠올리며, 이들의 회향을 기다린다는 메시지로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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