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의 추구, 인문적 사유가 지향해야 할 준거점
상태바
‘보편’의 추구, 인문적 사유가 지향해야 할 준거점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1.03.07 20: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인문정신이란 무엇인가: 동서양 고전과 문명의 본질 | 김월회·안재원 지음 | 길 | 444쪽

중국 학술사상을 전공한 김월회 교수(서울대, 중문학)와 서양고전학을 전공한 안재원 교수(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교수)가 동서양의 고전을 ‘지금, 여기’의 시공간에서 재해석하는 책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인문학의 전성시대’인 듯 보이지만, 사유의 올곧은 씨앗을 바탕 삼아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궁구하기보다는 속 빈 강정처럼 당장에 필요한 실용적 지식 차원의 습득에 머물고 있는 세태를 비판하면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성찰적 관점에 바탕을 두고 동서양 고전에서 그 지혜의 단초를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이 책은 기획되었다. 

성경의 「요한복음」에서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쿠오바디스, 도미네”, 곧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길을 물었으며, 중국 당나라 시인이자 시선(詩仙)으로 불리는 이백(李白)은 “가는 길 어려워라, 가는 길 어려워, 갈림길도 많은데 지금 어드메인가”(行路難 行路難 多岐路 今安在)라며 ‘행로난’을 읊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합리적 이성에 기초한 사유와 생활, 사회의 운영이라는 측면에서 아직도 근대화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으며, 여기에 더해 탈근대의 과제 역시 미해결의 상태로 혼재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인문학적 성찰을 바탕으로 하는 우리 미래 사회에 대한 정초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즉 쿠오바디스이고 행로난의 상황이지만, 그렇기에 또한 고민과 성찰을 통해 미래의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들이 제시하는 우리 사회의 미래상은 ‘보편문명국가’이다. 그러면서 서양의 그리스, 로마를 비롯해 중국의 한(漢)나라와 당(唐)나라를 위시한 ‘제국’의 모델에 방점을 두고 있다. 물론 여기서 저자들이 ‘제국주의’를 말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즉 제국 단계의 문명은 생존과 생활을 위해 양식과 체제를 빚어내고 갱신해가는 과정에서 종족과 지역의 경계를, 나아가 일국 차원을 넘어서 ‘보편’의 방법과 표준을 추구, 제시한다. 다시 말해 삶의 바탕이나 기본, 일상을 이루는 바를 통했을 때 비로소 시간과 공간, 인간이라는 변수를 가로지르면서 보편이 관철되고 구현될 수 있다. ‘삶의 기술’이라든지 자연의 힘을 이용하는 경험 또는 기술 일반이 대표적 예들이다. 역사적으로 ‘학문’(scientia)이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던 ‘인문’(humanitas)이 바로 그것이다. 보편문명국가를 추구하기에 문명을, 특히 제국 단계의 문명을 품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라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저자 김월회 교수와 안재원 교수

그러한 ‘인문’의 가장 확실한 근거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곳이 ‘고전’(古典)이다. 시대와 지역, 이념과 종교, 민족과 세대 등을 초월해 그 가치가 널리 입증된 것이 바로 고전이며, 이러한 개념 자체가 고전이 보편적 가치와 이념, 쓰임새 등의 처소(處所)임을 분명하게 말해주기 때문이다. 이는 고전이 보편문명국가를 향한 길을 놓아가는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용한 밑천임을 웅변해주고 있다. 고전이 시간과 공간, 인간의 두꺼운 벽을 가로질러 보편 가치와 이념의 담지체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데는 개인 차원이든 국가 차원이든, 생존 차원이든 생활(곧 문화) 차원이든 간에 인간다운 삶과 사회를 빚어내고 꾸려가며 제고해가려면 꼭 짚어봐야 할 화두에 대한 통찰이 큰 몫을 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두 저자는 보편문명국가로 가는 길을 지금 여기에 닦아가는 데 꼭 짚어야 할 문명의 화두를 ‘고전’을 기반으로 추려내었다. ‘제국과 문명 차원의 경세(經世)’라는 화두를 염두에 걸어놓고, 정전(正典), 학문, 학교, 시험, 놀이 같은 문명의 장치들과 리더십, 인재등용, 학술진흥, 혁신 같은 경세의 근간을 추려내었다. 한편, 경세가 반드시 국가나 세상의 경영만을 가리키지 않기에, 곧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전통이 명료하게 드러내주듯이 개체 차원의 ‘자기 다스림’ 또한 어엿한 경세의 한 축이기에 공부, 의로움, 지혜, 기예, 용기 등의 항목들도 추려내었다. 그리고 이러한 화두와 연관 있는 동서양 고전을 참고해가며 우리의 삶과 사회를 나름 비판적으로 읽어내기도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