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세계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축소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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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세계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축소될 뿐이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03.07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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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자도생의 세계와 지정학: 미국 없는 세계에서 어떤 국가가 부상하고 어떤 국가가 몰락하는가 | 피터 자이한 지음 | 홍지수 옮김 | 김앤김북스 | 496쪽

지정학은 국제 정세와 국가들의 운명을 어디까지 규정하는 것일까? 인구구조의 문제가 어떻게 세계 경제를 뒤흔들어 놓을까? 머지않아 세계가 미국의 세계와 미국 없는 세계로 나누어진다면 한국은 어디에 속하게 될까? 

2021년 1월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미국이 돌아왔다’고 선언했다.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를 폐기하고 다자주의 복원하고 동맹체제를 다시 주도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냉전시대의 유산인 미국 주도의 동맹체제는 해체되고 미국이 구축하고 책임져온 세계질서는 머지않아 종말을 맞게 된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중국은 미국을 대신하기는커녕 추락과 붕괴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고 말한다. 한 세대 후가 아니라 바로 2020년대에 붕괴가 시작되고 2030년대가 되면 세계는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세계가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지정학, 에너지, 인구통계학 전문가인 저자는 지정학과 인구통계학에 기반해 국제 정세의 흐름을 분석하고 국가들의 부상과 몰락을 예측해왔다. 저자는 일관되게 미국이 세계질서에서 손을 떼게 된다고 말해 왔다. 사실 손을 떼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세계질서를 허물게 된다고 말한다. 이 책은 미국이 손을 떼게 되고, 미국 없는 세계가 되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떤 국가가 부상하고 어떤 국가가 몰락할지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러시아는 이미 국가적 쇠퇴 단계에 접어들었고 중국도 머지않아 추락하게 된다고 말한다. 전략적 위협이 없는 세계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동맹 체제는 약화되거나 해체된다. 미군은 유럽과 중동, 마지막에는 동아시아에서 철수하게 된다. 그 동맹 체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허용된 시장접근은 제한을 받게 되고 에너지와 자원에 대한 접근, 안전한 해상운송도 보장되지 않게 된다. 이 와중에 인구 구조 문제와 자본 부족이 쓰나미처럼 국가들을 덮치게 된다. 세계는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활력 있는 미국의 세계와, 국가들이 권력과 생존을 위해 각축해야 하는 미국 없는 세계로 나누어진다. 미국 없는 세계는 곧 각자도생의 세계가 된다. 질서의 시대에 미국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일부 국가들은 지역의 강자로 부상하고 질서의 혜택을 누리던 일부 국가들은 몰락하게 된다.

미국은 지금보다 훨씬 축소된 동맹 체제를 갖게 된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점점 더 미국과 단일 경제권으로 묶이게 된다. 지금도 캐나다와 멕시코를 제외하면 미국의 수출은 GDP의 3%, 수입은 4% 내외에 불과하다. 영국과 같이, 뜻이 맞는 일부 국가들과는 동맹이 지속된다. 남미, 호주, 동남아시아 국가들과는 대체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독일과는 이렇다 하게 엮일 일이 없게 된다. 일본과는 일본이 동남아시아에 대한 지나친 욕심을 내지 않는 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미국 없는 세계가 되면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간절히 바랐던 국가들은 당혹스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 러시아, 이란, 중국이 그런 나라들이다. 미국이 물러나게 되면 힘의 공백이 생기고 안정이 사라지고 불안정이 자리잡게 된다. 불안정은 안보 경쟁을 촉발하고 세계질서의 시대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게 된다. 러시아, 이란, 중국은 미국이 자신의 지역에서 떠나주길 바란다. 북한도 그렇다. 하지만 미국이 떠나는 순간 이 국가들은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러시아는 불안정한 독일을 마주하게 되고, 이란은 제정신이 아닌 사우디아라비아와 무섭게 부상하는 터키를 마주하게 된다. 중국은 내부적 분열과 군사화된 일본을 마주하게 된다. 북한은 중국에게 정말로 성가신 존재가 된다. 그렇다면 한국에게는 어떤 현실이 기다리고 있는가.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미국이 손을 뗀, 무질서의 세계에서 한국이 직면하게 될 가장 큰 난관은 북한이 아니라 일본이라고 말한다. “한국이 구조적인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나라, 한국이 해외 시장에 계속 접근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나라, 그러면서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상종도 하기 싫어하는 유일한 나라”인 일본이 장차 막강한 해상력을 기반으로 공해상에서 동북아시아의 만사를 중재하게 된다고 말한다. 무질서의 시대에 한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 일본을 필요로 하지만 일본과의 협력하기보다는 대립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문제라고 말한다.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미국 없는 세계가 과연 현실화될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과거에도 제국들의 세계가 끝나고 미국의 세계가 올 것이라는 예측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국가의 지배도 영원하지 않고 어떤 질서도 영원하지 않다. 냉전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고 냉전을 전제로 구축된 동맹 체제가 영원히 지속될 리도 없다. 냉전 하에서 중국과 미국은 사실상 동맹이었지만 이제는 적대적 관계로 돌아섰다. 프랑스는 유럽의 맹주가 되고자 필사적이고 독일은 궁지에 처하게 되면 어떻게 돌변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터키는 이미 미국 없는 중동을 예상하고 움직이고 있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에 맞서 미국 대신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는다 해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미국이 추락하는 중국을 더 이상 위협적인 국가로 인식하지 않게 되면 일본이나 한국과의 동맹도 의미가 없게 된다. 미군이 동아시아에서 떠나면 일본은 행동의 자유를 얻게 된다. 중국도 행동의 자유를 얻게 된다.

한국은 미국 없는 동아시아가 무엇을 의미하게 될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을 상대할 전략적 지렛대로서 미국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하지만 한국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미국은 한국을 떠날 수 있으며, 저자의 예측에 의하면 그 순간은 예상보다 훨씬 빠를 수 있다. 미군이 한국을 떠나더라도, 한국이 미국 없는 세계가 아니라 미국의 세계에 속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이한은 다소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미국이 얻게 될 이득보다 지불해야 할 비용이 클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피터 자이한은 한국이 실수할 여지가 거의 없는 나라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스스로가 국제정세를 오판하고 실수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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