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식민지 민족차별은 일상적이고 관행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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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식민지 민족차별은 일상적이고 관행적이었다
  • 정연태 가톨릭대학교·한국사
  • 승인 2021.02.28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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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식민지 민족차별의 일상사: 중등학교 입학부터 취업 이후까지』 (정연태 지음, 푸른역사, 344쪽, 2021.01)

■ 책을 말하다_ 『식민지 민족차별의 일상사: 중등학교 입학부터 취업 이후까지』 (정연태 지음, 푸른역사, 344쪽, 2021.01)

일제강점기 한국 사회에서는 신분차별, 성차별, 빈부차별, 학력차별, 민족차별 등 각종 차별이 행해지고 있었다. 그중 일제강점기를 표상한 것은 민족차별이었다. 임진왜란을 통해 형성되고 확산된 대일(對日) 적대·원수의식과 조선 후기에 형성된 소중화적 민족 자존의식을 지니고 있던 한국 사회에서 일제의 민족차별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요, 상처였다. 그럼에도 민족차별을 전면적, 체계적으로 해부한 연구는 의외로 빈약하다. ‘민족차별’이란 타이틀을 내건 본격적 연구서(硏究書)는 거의 없고, 그러한 논문조차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이에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연구 작업을 통해 민족차별의 양상, 구조와 특성 등을 체계적, 심층적으로 해부하고자 했다.

먼저 이 책은 한국사 연구에서는 처음으로 민족차별을 법적, 구조적, 관행적 민족차별로 범주화하고, 민족차별이 일상적으로 표출되는 메커니즘을 체계화하려 했다. 그중에서도 명시적인 법규범이나 제도를 통한 법적 민족차별이나 정치·경제적 불평등 구조와 위계관계에 의해 결과적으로 발생하는 구조적 민족차별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편견이나 혐오에 의해 일상적, 무의식적으로 자행되는 관행적 민족차별의 문제를 특별히 주목했다. 

그리고 이 책은 식민지 민족차별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밝히기 위해 미시적 사례 연구를 추진했다. 사례 연구의 대상으로 중등학교를 택했다. 일제강점기 중등학교는 한국인 가운데 1퍼센트 미만만이 졸업장을 가졌을 만큼 우수 인재가 모였던 교육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중등학교 가운데서도 한·일 별학(別學)이던 인문계 학교와는 달리 대부분 공학(共學)이던 상업학교로 범위를 좁혔다. 그리고 상업학교 중에는 충남 소재의 강경상업학교를 선택했다. 이 학교는 재학생의 민족 간 비율이 비슷해, 민족차별 문제를 살펴보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이에 이 책은 이 학교에서 학생 선발·지도·교육·평가과정, 학생의 중퇴·취업 과정 등 입학부터 졸업 이후까지 거의 모든 과정, 국면에서 민족차별이 일상적으로 자행됐음을 체계적으로 입증하고자 했다. 

1927년 제5회 졸업기념사진<br>
1927년 제5회 졸업기념사진

이를 위해 교육 현장의 생생한 자료를 새롭게 발굴해 객관적 근거자료로 활용했다. 예컨대, 해방 이전 25년간 강경상업학교 한·일 졸업생 및 중퇴생 총 1,489명의 학적부를 데이터베이스화했다. 기존 연구에서는 거의 시도되지 않았을 정도로 장기간에 걸친 방대한 규모의 학적부를 분석한 것이다. 그중 한국 근대사 연구에서는 최초로 중퇴생 학적부, 해방 전후의 동창회 명부들을 모두 데이터베이스화해 미시적 분석에 활용했다. 이외에도 교지, 학생일기, 해방 후 한·일 졸업생의 동창회보 등을 수집해 분석했다. 뿐만 아니라 해방 이전 강상 출신 한·일 졸업생들과 면담해 구술 자료를 확보함으로써 문헌 자료의 한계를 보충했다. 다만, 핵심 사료인 학적부의 경우에는 개인의 신상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개개인의 특성과 관계망을 드러내지 못하고 민족차별의 실태를 수치로밖에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점은 아쉬운 대목이라 하겠다.

한편 이 책은 민족차별의 논리를 밝히기 위해 1920~38년간 전국 중등학교의 교사 배척 동맹휴학을 전수 조사하고, 배척 대상 교사들의 관행적 민족차별 언행에 대해 거시적 분석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다수의 일본인·서양인 교사들과 극소수의 한국인 교사들은 ① 한국민족(인)을 일방적으로 모욕하거나, ② 한·일 비교를 통해 한국민족(인)을 비하하거나, ③ 한·일 학생을 차별 대우하는 방식으로 관행적 민족차별을 자행했음을 밝혔다. 동시에 이러한 관행적 민족차별에는 교사의 전제와 독선과 억압과 폭력이 수반되는 경향을 보였다는 사실도 구명했다. 

1938년 일본군 입대 교사 환송 행진 사진<br>
1938년 일본군 입대 교사 환송 행진 사진

나아가 관행적 민족차별과 인권유린을 자행한 교사들의 언행에는 문명 대 야만의 이분법에 기초한 야만인(종)론, 한국인의 결함과 부정성을 드러내기 위한 민족성론, 망국의 현실을 인정하고 자책케 하는 망국민론(亡國民論)이란 민족차별 논리가 깔려 있음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이 세 가지 논리는 서로 중첩되거나 유기적으로 결합해 차별 논리를 증폭시키고 배척 대상 교사들의 내면 의식을 지배해 관행적 민족차별을 부추기거나 정당화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관행적 민족차별이 학교사회에서 일상화된 배경으로서 민족차별적인 법, 구조, 의식의 문제를 주목했다. 특히 일본인 교사를 포함한 재한 일본인들의 내면의식을 지배하던 민족차별의식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형성, 체계화, 확산됐고, 어떤 특성을 지녔는지를 검토했다. 이를 통해 ① 식민지 민족차별의 일상화에는 법적·제도적 요인 이상으로 구조적, 의식적 요인이 더 중요하게 작용했으며, ② 한편으로는 식민지사회의 정치경제적 불평등 구조와 위계관계,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사회와 재한(在韓) 일본인(일본인 교사 포함)의 내면의식을 지배해온, 일본사회의 한국 멸시·차별관이 식민지 민족차별의 확고한 토대였음을 구명했다.

그중에서도 ① 일본의 한국 멸시·차별관은 신화와 날조된 역사에 기반한 한반도 조공국사관(朝貢國史觀)에서 출발해, 청일·러일전쟁 이후 인종론적 문명론, 마찬가지로 인종론적 성격을 띤 국민성론, 일선동조론과 결합하거나 관계를 맺으면서 발전했고, ② 이런 발전 과정을 통해 ‘문명 일본 대(對) 야만 한국’ ‘일본인의 우수한 민족성 대 한국인의 열등한 민족성’이란 민족 서열화 구도의 한국 멸시·차별관이 체계화·심화돼, 일본사회와 재한 일본인사회에 확산됐으며, ③ 일본인 교사들도 이러한 한국 멸시·차별관을 내면화해, 민족차별 언행을 일상적으로 표출했다는 점을 밝혔다. 그리하여 일본(인)의 한국 민족차별은 식민지 민족문제인 동시에 일본의 전통적인 한국 멸시관이 근대 이후 일본판 오리엔탈리즘과 결합해 체계화·심화·확산된 한국 멸시·차별관이라는 역사의식의 문제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해방 후 일본사회에서 되풀이되는 과거사 망언이나 최근 확산된 혐한(嫌韓) 언행도 일본의 역사와 사회에 관류해오던 한국 멸시·차별관이 특정한 정치사회적 계기를 만나 분출한 것임을 알게 됐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독자들이 일제강점기에 당했던 민족차별의 쓰라린 경험을 기억하고 타자를 비판하는 데 머물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오히려 그런 경험과 기억 속에서 오늘날 한국사회가 ‘오래된 미래’를 발견하고,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에 대한 차별 문제를 성찰하고 극복하는 데, 그리고 정치적 민주화를 넘어 사회적 민주화를, 제도적 민주화를 넘어 일상의 민주화를 성취해가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길 기대하고 있다.


정연태 가톨릭대학교·한국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1995년부터 현재까지 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단독 저서로는 《한국근대와 식민지 근대화논쟁: 장기근대사론을 제기하며》(푸른역사, 2011), 《식민권력과 한국농업: 일제 식민농정의 동역학》(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4)이 있으며, 공저로는 《한국 근대사회와 문화》Ⅱ(서울대학교출판부, 2005), 《근대교류사와 상호인식》Ⅱ(아연출판부, 200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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