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이해하는 세 가지 키워드…쌀, 재난,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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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이해하는 세 가지 키워드…쌀, 재난, 국가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1.02.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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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 재난, 국가: 한국인은 어떻게 불평등해졌는가 | 이철승 지음 | 문학과지성사 | 384쪽

저자 이철승 교수는 전작 『불평등의 세대』에서 ‘세대’라는 키워드를 통해 한국 사회의 위계 구조가 어떻게 세대와 맞물리며 불평등을 야기해왔는지를 다양한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흥미롭게 펼쳐 보였다. 이 책은 ‘쌀’ ‘재난’ ‘국가’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그러한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와 경쟁/비교의 문화는 어디서 왔고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에 대한 보다 심도 깊은 역사적 분석을 시도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 드리운 불평등의 ‘깊은 구조’를 이해하려면, 동아시아 사회와 국가가 반복되는 재난에 맞서 싸우며 먹거리(쌀)를 생산하고 유지하기 위해 만든 사회제도와 습속-협업과 위계, 경쟁-을 먼저 규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 것이다.

이 책은 ‘쌀’ ‘재난’ ‘국가’가 서로 조응하며 만들어낸 벼농사 체제의 유산들이 어떤 제도들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삶에서 발현되고 또 우리 자신을 규정하고 있는지에 대해 분석하는 책이다. 그렇다면 수백, 수천 년을 지속해오며 한국인들의 삶의 양태를 결정짓고 현대자본주의 사회에 이르기까지 그 체제의 유산을 드리워온 어떤 제도와 문화가 오늘날 우리 삶을 규정하는가?

저자는 이 책에서 이러한 벼농사 체제의 긍정적ㆍ부정적 유산들을 일곱 가지로 정리해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재난 대비 구휼국가의 발전, 협력과 경쟁의 이중주 시스템인 공동노동 조직, 그리고 표준화와 평준화의 기술 튜닝 시스템이 벼농사 체제의 긍정적 유산들이라면, 나이에 따른 연공서열 문화와 그것이 기업 조직에서 발현된 연공급 위주의 노동시장, 여성 배제의 사회구조, 시험(과거제)을 통한 선발 및 신분 유지와 숙련의 무시, 마지막으로 땅과 자산에 대한 집착 및 씨족 계보로의 상속이 이루어지는 사적 복지체제의 구조가 벼농사 체제의 부정적 유산들이다.

‘쌀’ ‘재난’ ‘국가’의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진 벼농사 체제의 유산들은 산업자본주의 사회에 이르러서도 공장과 회사로 이식되어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룩하며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세계적 성공을 이끄는가 하면, 재난에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사회적 조율 시스템을 작동하며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을 글로벌 모범국가로 등극시켰다. 코로나 팬데믹에 효율적으로, 기민하게 대처하는 국가는, 동아시아인들의 오래된 미래인 것이다. 이러한 벼농사 체제의 유산들은 수백, 수천 년 동안 진화하여 오늘날 현대자본주의하의 ‘동아시아적’ 혹은 ‘한국적’ 제도로서 그 명맥을 유지 혹은 강화하고 있지만, 벼농사 체제의 강고한 지속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들은 위기에 처해 있고 또 어떤 것들은 이미 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유산들 가운데 어떤 것들을 약화시키고 또 어떤 것들을 강화시켜야 할까?

이 책은 ‘쌀’ ‘재난’ ‘국가’의 상호작용을 통해 한반도의 고대국가에서부터 현대 지구촌 사회의 코로나 팬데믹과 복지국가의 역할까지, 오늘날 한국 사회에 드리운 벼농사 체제의 현존을 분석해 보여준다. 동아시아인들이, 한반도 정주민들이 삶의 준거로 삼는 여러 가지 원리가 있지만, 그중 가장 특이한 점을 꼽으라면 그것은 바로 ‘연공 문화’다. 경험 많고 나이든 농부에게 중요한 의사 결정을 맡기는 벼농사 체제의 위계 구조가 현대 기업 조직의 연공 문화와 임금제도로 정착한 것이다.

저자는 전작 『불평등의 세대』에 이어 이 책에서도 연공서열의 위계에 대한 비판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연공제가 ‘세대 네트워크’와 ‘인구구조’와 착종ㆍ조응하여 오늘날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 차별, 여성 배제의 구조를 초래하는지를 다양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이 책은, 연공제 문제가 핵심적인 구체제의 유산임을 밝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 불평등 문제의 핵심에는 바로 이 연공제가 자리하고 있고, 저자 이철승은 이 책의 긴 여정을 통해 연공제 철폐가 구조 개혁 과제들 중 가장 우선순위에 놓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두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1장 「동아시아 국가의 기원」은 한반도의 고대 및 전근대 국가 2천 년 동안 벼농사 체제하에서 재난 극복 및 구휼 시스템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나름의 통계자료를 통해 분석한다. 2장 「벼농사 생산체제와 협업-관계 자본의 탄생」은 벼농사 체제의 협업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로 인해 어떤 심리(경쟁과 질시) 구조가 탄생하는지를 다룬다. 3장 「코로나 팬데믹과 벼농사 체제」는 재난 시기 이 협업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여 재난을 극복하는지에 관한 사례 연구로, 현재 우리가 통과하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국가별 대응 시스템을 분석한다. 

4장 「벼농사 체제와 불평등의 정치심리학」은 벼농사와 밀농사 체제하에서 불평등은 어떻게 형성되고, 불평등에 대한 인식 구조는 어떻게 다른지, 그에 따른 불평등의 결과가 서로 어떤 차이를 빚어내는지를 비교ㆍ분석한다. 5장 「연공제와 공정성의 위기」는 벼농사 체제의 가장 중요한 제도적 유산인 ‘연공제’를 분석하되, 이것이 어떻게 ‘세대 네트워크’ 및 ‘인구구조’와 착종ㆍ조응하여 오늘날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 차별, 여성 배제의 구조를 초래하는지를 이야기한다. 6장 「벼농사 체제의 극복」 연공제를 통해 청년 일자리 위기와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에 대한 진단과 대안으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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