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자본』을 개론서가 아니라 『자본』 자체를 읽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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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자본』을 개론서가 아니라 『자본』 자체를 읽어야 하는가?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1.02.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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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스의 『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자본』의 첫머리에 대한 독해 안내와 주해 | 미하엘 하인리히 지음 | 김원태 옮김 | 에디투스 | 384쪽

2008년 금융위기 이래로 맑스 이론이 다시 주목을 받아 왔고, 이와 더불어 『자본』 읽기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그것은 이러한 위기가 자본주의 외부의 쇼크가 아니라 바로 자본주의경제에 내재한 위기였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 때문일 것이다. 

금융위기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사이 자본주의의 위기 담론은 ‘4차 산업혁명’이란 단어의 등장과 함께 자취를 감추다시피 하고, 현재 거의 전 세계는 코로나 바이러스에서 시작된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Pandemic)’에 의해 지배되면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중이다. 언뜻 보아 이것은 자본주의적 가치증식 과정들과 관련이 없는 외부의 쇼크처럼 보이는 까닭에 코로나 확산으로 너나없이 고통을 당하면서도 이러한 고통이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에 대한 관심으로는 좀처럼 연결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 미하엘 하인리히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바로 이러한 인식이 문제이며 안이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건넨다. 오늘의 생태 위기에서 비롯된 팬데믹 현상은 다름 아닌 단종재배에 근거한 자본주의적 농업의 구조가 생물의 다양성을 파괴하고 동물 종을 파괴시킴으로써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결국 인간들로 바이러스들이 전염되는 것 또한 인류사의 이전 어느 시기보다 훨씬 더 간단하고 훨씬 더 자주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여기에 대응해야 할 의료체제는 신자유주의적 긴축 정책의 첫 번째 타깃이 되어 왔다. 

그러므로 2008년처럼 작금의 위기 또한 지배적인 자본주의적 경제체제를 가리키고 있는 셈이 된다. 전례 없는 재앙의 연쇄 앞에서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제 개발 못지않게 스스로 멈출 수 없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법칙들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 긴급한 과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체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고자 하는 누구라도 맑스의 『자본』을 비켜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왜 『자본』을 요점 정리식의 누군가의 렌즈를 통한 개론서가 아니라 『자본』 자체를 읽어야 하는가?

일찍이 1960년대 말 이래 서독에서 이른바 ‘새로운 맑스-독해’ 경향이란 것이 출현한다. 유럽에서의 학생운동의 폭발과 더불어 시작된 이 흐름은 그러나 1970/80년대 ‘맑스주의의 위기’를 거쳐 1989/90년의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로 “종말”을 맞이하는 듯했으나, 지구적 자본주의체제의 모순이 드러나는 1990년대 말 이전보다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맑스 독해’의 흐름을 한 차원 발전시킨 대표적 학자로 평가받는 미하엘 하인리히의 본격 『자본』 주해서이다.

하인리히는 처음부터 자본주의와 그것의 작동 법칙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이라는 텍스트 자체에 대한 철저한 독해 외에 다른 우회로는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자본을 어떻게 읽고 토론할 것인가

『자본』은 결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텍스트가 아니다. 특히 『자본』의 첫머리가 그러하다. 어쩌면 1960년대 말에 떠올랐던 ‘새로운 맑스-독해’가 피상적인 이해에 그쳤던 것도, 저자의 표현대로, 『자본』 1권의 어딘가에서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상품에 대한 장(章)에 등장하는 추상적 노동, 가치형태 혹은 상품물신주의와 같은 중심 개념들은 곧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의욕적으로 시작한 『자본』 읽기는 여기에서 막혀 좌절을 맛보기 십상이었다. 이는 한국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맑스의 가치론과 화폐론에 대한 ‘편견’이 학계를 비롯하여 독자들에게도 널리 퍼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자본』 읽기는 스스로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좋은 삶’을 가로막고 인간과 자연의 파괴와 결부되어 있는 자본주의의 사회화 방식과 이것의 변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라 했을 때 그러한 편견과 한계는 극복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책은 『자본』의 첫머리인 1권 1장과 2장을 원전의 구절들과 설명, 주해를 덧붙이며 전개된다. 저자는 독자가 아직 읽지 않은 『자본』 전 3권의 세부 내용과 미리 구체적으로 연결 지으면서 『자본』 첫머리의 구절들을 한 구절씩 끊어서 설명하고, 원문을 읽을 때 생기는 질문들을 다룬다. 주해의 범위를 ‘독자가 그때까지 읽은 텍스트 분량’을 넘어서지 않도록 제한함으로써 독자가 주해의 타당성을 직접 판단할 수 있도록 한다. 말하자면, 이 주해서를 통해 독자는 미리 주어진 지도를 가지고 숲을 탐험하기보다는 직접 숲을 탐험하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의 도움을 받는 식으로 『자본』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독자에게 거침없는 질문, 자유로운 토론, 엄격한 논증의 문을 활짝 열어 둠으로써 『자본』 그 자체의 텍스트에 근거해서-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토대이자 『자본』 이해의 핵심인-‘가치론’과 씨름할 수 있게 돕는다.

다른 사람들이 제공하는 실제적 혹은 허위적 지식에 의지함으로써 정작 『자본』이라는 텍스트를 뒷전으로 미뤄 두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를 지향하고 『자본』의 논증을 독해 과정에서 되돌아와서 스스로 정확한 논증을 요구하는 독해가 결국 『자본』을 습득하는 최고의 방법인 것이다. 『자본』은 전 3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따라서 『자본』의 첫머리에 대한 독해로 완전히 이해될 수는 없다. 우리는 여기에서부터 제대로 시작해야 하며, 이 시작을 철저히 해내기 위해 저자는 『자본』이라는 복합적 텍스트의 온전한 이해를 위해 『자본』에서 길게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다른 텍스트에서 더 다루어진 해당 구절들에 대한 주해를 부록으로 덧붙였다. 나아가 『자본』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주요 용어들과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관련 저작들을 『자본』을 중심으로 한 맑스 이론의 통일적인 연관성에서 설명하는 부록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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