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평가와 반성 없는 ‘대학 기관인증 평가’ – 성장기에 마련된 ‘대학 기관인증 평가’ 기준은 구조개혁기에도 타당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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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평가와 반성 없는 ‘대학 기관인증 평가’ – 성장기에 마련된 ‘대학 기관인증 평가’ 기준은 구조개혁기에도 타당할까?
  • 변기용 논설위원/고려대·교육학
  • 승인 2021.02.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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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직설]

[변기용의 ‘우문현답’]
리의 제는 장에 이 있다

필자는 지난 2019년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주관하는 2주기 대학 기관인증평가의 위원으로 참여하면서 현행 “대학기관인증평가의 인증 기준과 적용방식이 과연 지금의 대학 구조개혁 맥락에서 타당한 것일까?”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고등교육의 호시절이었던 1990년 중후반기 ‘고등교육 팽창기’에 주로 신규 대학의 진입을 차단하기 위해 적용되었던 대학기관 평가인증 기준과, 대학들이 자구 노력을 통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현재의 ‘고등교육 구조개혁기’에 적용되어야 하는 인증 기준이 같아서는 필연적으로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겨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학령인구 감소로 퇴출의 기로에 서 있는 많은 교육중심 한계·부실 대학의 경우, 어쩌면 생존을 위해 마지막 자구노력을 하는 상황에서, 호시절에 적용되던 ‘통상적인 교수들의 연구년/연구비 기준’을 대학기관인증을 받기 위해 우선적으로 충족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정말 학생과 사회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일까? 한계·부실 대학들의 자구노력을 도와 최대한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학에 가용한 얼마 안 되는 재원을 교수들의 연구년과 연구비 기준을 충족시키도록 하는 데 쓰기보다는, 대학의 회생을 위해 필요한 특성화 프로그램 개발과 학생 지원 등 보다 효과가 높은 우선순위 영역에 먼저 투자하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 아닐까? 

201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대학 구조개혁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속에서도 현행 대교협 대학기관인증평가에서는 과거와 동일하게 5개 영역(①대학이념 및 경영 ②교육 ③교직원 ④교육 시설 및 학생 지원 ⑤대학 성과 및 사회적 책무)을 각각 나누어 별도로 평가하고, 어느 한 영역이라도 충족시키지 못하면 ‘인증 판정’을 부여하지 않는다. 다른 영역이 우수하더라도 어느 한 영역이 ‘미흡 판정’을 받게 되면 전체적으로 인증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런 네거티브 방식은 대학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던 20세기 중후반 고등교육의 급속한 성장기에, 신규로 진입하는 대학들의 최소한의 질적 수준을 공적 기관에서 보증함으로써 질적 수준이 낮은 대학의 ‘진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혹은 정부의 공적 자금 지원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데는 매우 효과적인 제도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호황기에 고등교육 시장에 진입하여 오랫동안 운영해 오다가, 상황의 악화로 새롭게 생존을 모색하고 있는 후발 한계·부실 사립대학의 자구노력을 도와준다는 견지에서는 많은 문제가 있다. 한계·부실 대학들의 경우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들이 가진 제한된 자원의 ‘전략적 활용’을 통해 자구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이러한 자구노력 상황에서는 5개 영역에 대해 균형적으로 조건을 맞추기보다는, 필요한 우선순위 영역의 선정과 이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통해 특성화와 비전을 창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대교협의 대학기관인증 평가 기준은 개별 대학의 상황과 관계없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특정한 영역에 대해서도 우선적 자원 배분을 강제함으로써 오히려 한계·부실 대학들의 자구노력을 제약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위기 상황에서는 기존의 인증평가 기준과 적용방식을 조금 달리하여, 대학의 역량을 기술적으로 5개 영역별로 나누어 평가하더라도 해당 대학의 자구노력/회생 역량을 총체적으로 평가하여 어떤 한 영역에서 조금 모자라더라도 총체적인 관점에서 회생 능력이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는 “반드시 모든 신체 기관이 다 있는 것을 기본적 조건으로 재활 사업을 하기보다는, 한 눈을 다쳐서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보다 잘하는 다른 특별한 재능만 있다면 얼마든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가 될 수 있다”라고 하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는 말로 비유할 수 있다. 대학 본연의 역할과 기능에 비추어 볼 때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어느 한 영역에서 설령 미흡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구노력을 통해 회생을 위한 ‘기관 총체적 역량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인증 혹은 인증 유예 판정’을 부여하여 해당 기관이 자구 노력을 통해 회생의 가능성을 높여 나갈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위기 상황에서는 훨씬 타당한 접근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당분간 우리 대학들은 엄중한 대학구조개혁의 현실에 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시기적 특성을 감안할 때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계·부실 대학’들의 경우 최소한 당분간은 현재처럼 “대교협의 대학기관인증평가”와 “교육부 대학 기본역량진단”이라는 평가를 ‘중복적’으로 받도록 하지 말고,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는 “교육부 대학 기본역량 진단”만을 받도록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이때 개별 대학의 입장에서는 두 가지 유사한 평가를 중복적으로 받게 됨으로써 들어가는 추가적 비용과 노력을 절감할 수 있다. 물론 이 경우 교육부 대학 기본역량 진단은 현재와 같은 형식적인 평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계·부실 대학에 대한 국가의 공적자금 투입을 정당화할 수 있는 수준의 엄격한 절차와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즉 이들 한계·부실 대학에 적용되는 정부의 평가는 마치 ‘정부가 부실기업에 공적 자금을 투입할 때’처럼 “총체적이고 엄격한 실사 평가”를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대학구조개혁이 필요한 맥락에서 교육부로서도 ‘마땅한 대책도 없는 한계·부실 대학 퇴출 정책’만 외칠 것이 아니라, 대학 구성원의 의지와 노력을 통해 회생 가능성을 보이는 대학들에 대해서는 일정한 재정 지원과 컨설팅을 통해 다시 한번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대학 퇴출이 초래하는 엄청난 사회적 부작용을 그나마 줄여나갈 수 있는 효과적 방법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변기용 논설위원/고려대·교육학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및 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University of Oregon(Eugene)에서 고등교육행정전공으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교육부 대학원개선팀장, 기획담당관, OECD 사무국 상근 컨설턴트(Institutional Management in Higher Education), 장관 정책보좌관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교육정치학회 회장과 안암교육학회 <한국교육학연구>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저서로는 『잘 가르치는 대학의 특징과 성공요인: 학부교육 우수대학 성공사례 보고서1, 2』(공저), 『한국 교육책무성 탐구』(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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