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곡 그 자체, '3주기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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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곡 그 자체, '3주기 평가'
  •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 승인 2021.02.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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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남 칼럼]_ 대학직설

폭망에 가까운 입시로 시름을 겪는 대학으로서는 설상가상 '2021년 대학기본역량진단'(이하 '3주기 평가'라고 함) 준비과정에서 불거진 교육의 질곡이 이만저만 아니다. 학령인구와 대학이라는 정글 속에서 적자생존을 위한 최선의 규범인 양 폭주하고 있으나 아무도 이를 가로막지 못한다. 대학 밖의 잣대가 대학 안에서는 또 하나의 약자들을 찌르는 칼이 되고 있다. 이 잘못된 규범이 야기한 폭력의 양상은 언제나처럼 낮은 자리만 골라가며 재생산되는 특징까지 보여준다. 국가가 개별 대학을 진단하거나 평가하여 부족함이나 모자람을 지원하는 데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면 모를까, 각 대학의 특수성을 배제한 채 모든 대학을 하나의 줄 앞에 세워 꼬리를 계속 잘라내는 이른바 도마뱀식 입학정원 조정방식은 결코 '이성적'이지 않다.

국가(대교협)는 고등교육법에 의거하여 몇 년의 주기로 각 대학의 고등교육역량을 점검하여 행·재정적 지원에 활용되는 대학기관평가인증제를 주관한다. 이는 대학설립을 승인할 때의 교지나 교사 등 객관적 여건과 교육역량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나름 정당한 통제행위이다. 대학이 대학다울 수 있는 토대를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인 셈이다. 그렇다 보니 이러한 일련의 공개적 점검 외의 '평가'라는 국가작용이 필요한 이유에 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의문 자체는 우문이라는 취급을 받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그리고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진단'이라는 이름의 줄 세우기식 평가의 본질이 결국 국가 스스로 팽창시킨 숫자를 줄이는 데 있음은 이제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교육부의 공식 문서나 신년계획 등에 등장하는 '자율적' 개혁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오랫동안 한국의 대학을 통제하는 주문이 된 지 오래다. 다시 말해서 '평가'의 본질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고, 오로지 긴 꼬리를 매번 자르기 위한 꾀만 난무한 것이다. 게다가 이 '평가'의 정체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모습이 다름 아닌 이런저런 이름의 재정지원사업을 비롯한 '돈'의 유혹 또는 '돈줄' 자르기다.

'평가'를 거쳐 하위권에 속하게 된 대학에 대해서는 국가장학제도에 대한 학생들의 접근권 자체를 막고, 더 나아가 국가의 재정지원사업 신청 자체를 차단하기도 한다. 어떠한 헌법적, 법률적 근거도 없이 자의에 가까운 국가의 잠재적 의지에서 비롯되는 일방적 행정일 뿐인데도 어느 대학의 당국자조차 입 뻥긋하지 않는다. 이렇게 폭력의 가상이 짙게 드리워진 재정지원사업 및 평가를 보노라면, 이미 국가 스스로가 대학의 결정적 약점을 잘 알고 있는 셈이다. 교비의 재정자립도가 낮은 대학, 특히 중소규모의 사립대학들은 비록 한두 푼에 해당하더라도 국가의 재정지원이 끊긴다면 숨조차 쉴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이런 평가와 재정의 연계는 치명적이다. 볼품없는 꼬리를 과감히 자르고, 이 잘린 꼬리에 낙인을 찍어 말려 죽이는 이 조폭 같은 전략이 국가의 '이성'이다. 더욱이 재정지원의 효율성을 재고한다는 명분은 지금까지 결코 제대로 입증된 바 없다. 20여 년 넘게 확장되어오던 대학생의 숫자를 줄이겠다는 채찍의 역할만 수행했을 뿐 양질의 고등교육을 균형적으로 구현하는 데 기여한 바는 입증되지 않았다.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는 그저 대한민국 헌법이 포장한 언어일 뿐이고, 어느 정치인이나 정당도 이를 현실 속에 구현하려는 진심을 내보인 적이 없다.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창의적 지식의 생산과 공유는 양질의 고등교육과 탄탄한 민주적 기본질서에 힘입어 구현되는 실재적 가치인데도, 우리는 그들을 정치적으로 설득하는 데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등교육기관에서 과연 헌법의 가치가 구현된 적이 있는지의 물음조차 점점 지워지거나 가려지고 있음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 1월 실시한 교육여론 조사 결과,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1순위 고등교육정책으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정책'이 꼽혔을 정도로 '명문'대학으로의 병목현상은 한국 현대사의 상징적 현안임에 틀림이 없다. 즉, 대한민국 사회는 '대학다운 대학'이 아니라 '간판다운 간판'을 요구하는 셈이다. 부끄러운 간판이 걸린 학교는 이미 대학이 아닌 셈이다. '대학다운지'를 묻는 게 아니라 '간판다운지'를 묻는다. 그래서 나쁜 간판을 스스로 떼어내지 않으니, 국가가 기필코 떼어버리겠다는 식이다. 이런 인식을 보면, 우리가 무엇보다도 시급하게 정치적으로 납득시켜야 할 대상은 정치인 혹은 그 정당들이기보다는 어쩌면 우리 자신일 것이다. 이제라도 질문을 다시 해야 한다. 먼저, 입학정원을 확대하도록 유도한 당사자는 다름 아닌 국가이므로 일차적 책임은 국가에 있음은 자명하다. 따라서 입학정원 감축이 필요하다면 국가 스스로 진솔한 자기반성과 함께 책임의 자세와 정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국가 스스로 반성하고 그 간극을 메워야 한다. 그다음으로, 국가는 고등교육기관 평가를 통해 각 대학의 약점과 한계를 찾아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배려하거나 도움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이를 계기로 고등교육과 지식사회에 관한 국가의 존재 이유를 입증하여야 한다.

이런 생각의 전환이 조만간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고등교육의 생태계는 국가의 그 뻔한 의지대로 무너지고 또 무너져 내려, 마침내 그럴듯한 간판으로만 메워진 '가상'만이 고등교육의 특권적 미래를 가득 채울 것이다. 그래서 학문은 학문으로만, 고등교육은 고등교육으로만 형식적으로 존재할 뿐, 우리와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그 어떤 수식을 더는 붙일 수 없을 것이다. 간판만 남고 이로운 학문과 헤아리는 교육을 더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인제대학교 공공인재학부 교수로 <교수평의회> 의장을 맡고 있다. <민주법학> 편집위원이며, 전공은 계약법으로 교육법, 인권법, 주택법, 법여성학 등에도 관심이 많다. 저서로 『여성과 몸』(공저, 2019), 『대학정책, 어떻게 바꿀 것인가』(공저, 2017), 『민법사례연습』(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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