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민(民)은 제 삶에서 국가를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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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민(民)은 제 삶에서 국가를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02.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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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간중국: 21세기 중국인의 조각보 | 장정아·왕위에핑·박우·공원국·이현정 외 8명 지음 | 책과함께 | 360쪽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중국 국가가 ‘하나의 중국인’ 만들기와 계획경제를 강력하게 추진해온 과정에서 평범한 중국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들에게 국가란 어떤 의미이고, 제 삶에서 어떻게 만나고 있을까? 이 책은 인류학, 사회학, 중국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 13인이 지난 20여 년간 현지조사와 장기 교류를 통해 만나온 다양한 개인, 가족, 지역 주민의 이야기다. ‘중화인민공화국 공민(公民)’이라는 분명한 국민 정체성 대신 ‘민(民)’이라는 모호한 수사로 등장인물들을 에두른 것은, 이들의 삶에서 ‘국가’가 현현하는 양태나 이들이 ‘국가’와 마주하는 방식의 차이 혹은 ‘접면’이 현대 중국의 역동과 곤경을 들여다보는 데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96배에 달하는 면적에 14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 인구는 14억이 넘고, 공식적으로 56개 민족이 모여 사는 다민족 국가다. 한족을 제외한 55개 민족이 1억 명을 훨씬 넘는데도 ‘소수민족’이라 불리고, 이들 소수민족의 자치가 시행되는 지역이 나라 면적의 64퍼센트가 넘는다. 광활한 영토의 생태 환경도 고르지 않은 데다, 개혁개방 이후 사회주의 국가가 글로벌 자본과 시장경제 시스템을 특정 공간에 선별적으로 배치하다 보니 도시와 농촌 간, 지역 간 불평등도 극심해졌다. 더 나은 기회를 찾기 위한 이주가 농촌과 도시, 소도시와 대도시, 중국 영토 안팎에서 대규모로 진행되면서, “뒤틀리면서 움직이는 역사”가 매 순간 새롭게 쓰여왔다. 수많은 민족 집단이 분산된 채 존재하다 접촉, 혼합, 연결, 융합의 과정과 분열과 소멸의 과정을 동시에 거치면서 ‘중화민족’이 ‘실체’로 등장하기까지, 중국 국가는 교육, 미디어, 산업, 군사 등 제 방면에서 강력한 헤게모니와 물리적 폭력을 동시에 행사했다. 

토지에서 개인의 몸에 이르기까지, ‘영토’에 대한 통치 역시 국가 주도형 사회 계획의 중요한 일부였다. 농촌을 원시적 축적에 따른 비용을 감내할 “저렴한 자연”으로 만들고, 도농 이원구조를 제도화해서 도시와 농촌 주민 간 호적의 차이를 사회 신분의 차이로 만든 장본인이 중국 국가다. 이 농민의 ‘탈빈곤’을 목표로 민간 기업의 참여를 부추기면서 대대적인 빈곤 퇴치 사업을 벌이는 데 앞장선 장본인 역시 중국 국가다. 신중국 성립 초기에 토지개혁과 혼인법을 동시에 추진함으로써 미혼녀, 이혼녀, 과부에게 토지를 소유할 권리를 부여한 주체도, 1970년대 말부터 최근까지 계획생육(計劃生育) 정책을 시행하여 여성의 몸에 대해 집요한 지배력을 행사한 주체도 중국 국가다. 민생과 민본을 강조하며 인민으로부터의 인정을 통치의 근간으로 삼지만, 동시에 누가 ‘인민’의 자격을 갖는가를 가름하는 심판자도 중국 국가다.
 
당과 정부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보니, 국가를 상위의 실체로 가정하면서 구심적 힘의 행사를 정당화하는 태도가 평범한 중국인들의 삶에서 관행이 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민(民)이 제 삶에서 어떤 ‘국가’를 만나는가, 어떻게 만나는가는 여전히 중요한 질문이다. 국가는 인생을 뒤흔들 강력한 정책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길가 담벼락의 희미한 선전 구호나 공문의 의례적 문구처럼 “공유된 무관심”으로 남을 때도 많다. 국가 지도자가 마을 사당의 위패나 가정집의 부적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급속한 개발 과정에서 이권을 둘러싼 이전투구가 심해지면서 지방 관리가 폭력배처럼 출현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국가 대 사회’라는 구도를 가정하면서 그 대립을 논하는 서구의 시각도, 이를 비판하면서 민과 관의 조화를 강조하는 중국 주류 학계의 시각도 대립과 합일 너머의 세세한 주름을 살피기엔 너무나 매끄럽다. “패러다임은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는 순간 그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혜안을 떠올려봄직하다. 

‘시장경제의 저류(低流)’와 ‘전통 농민’ 사이, 중국의 ‘민(民)’은 어디에 있을까? 전자를 강조하면, 민은 국가와 시장 지배의 피해자, 피억압자로 등장한다. 삶의 존엄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잠재적 투사로 낭만화되곤 한다. 후자에 주목하면, 민은 중국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범속한 군상이다. 사회 정의에 무관심하고, 제 일가를 챙기는 데 급급한 인간으로 폄하되기 일쑤다. 하지만 대다수 중국인의 삶은 전자도 후자도 아닌 그 접면(接面)에 놓여 있다. 인류학자 안나 칭이 “마찰(friction)”이라 부른, “거북하기도 위계적이기도 한, 불안정하기도 창의적이기도 한” 마주침이 개인, 가족, 지역의 주름진 삶 ‘접면’에서 매일매일 펼쳐진다.
 
이 책은 이 ‘접면’에 대한 탐색이다. 현대 중국은 급속한 경제 발전과 대국으로의 성장, 계획경제 시기에 구축된 각종 질서의 와해와 재편, 초국적 이동의 확산과 불평등의 심화가 맞물리면서 유례없는 변동을 겪어왔다. 변동은 가족, 민족, 계층, 젠더, 세대, 지역, 국경 등 다양한 층위를 가로지르면서 중층적인 위계와 갈등, 새로운 기회와 열망을 만들어냈다. 정치경제 시스템과 국제 정세의 변화가 짧은 시기에 휘몰아치는 동안 ‘국가’, ‘사회주의’, ‘시장경제’와 같은 화두를 일상에서 대면하는 순간들이 녹록했을 리 없다. 시위와 파업, 소요와 폭동 같은 날것의 저항도 많았지만, 급류를 타거나 피하면서 생존과 안전, 부를 도모하는 기술들이 얼기설기 엮이며 삶의 우발성과 탄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난장(亂場)의 삶들을 이해하기 위해 위인의 서사를 동원하거나 지식인의 다림질에 기대는 대신, 현대 중국을 살고 버티고 만들어온 사람들의 삶을 본질적인 불완전함을 감수하고라도 두텁게 읽는 것이 이 책의 기획 의도다. 규모의 방대함과 인구의 다양성을 고려했을 때, ‘민간중국’을 들여다보는 것은 결국 조각보를 깁는 작업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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