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율령국가의 성립과 백제왕씨의 관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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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율령국가의 성립과 백제왕씨의 관계성
  • 송완범 고려대·사학
  • 승인 2021.01.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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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 책 속으로_ 『동아시아세계 속의 일본율령국가 연구: 百濟王氏를 중심으로』 (송완범 지음, 경인문화사, 308쪽, 2020.12)

본 연구는 일본율령국가의 형성과 함께 역사상에 등장하는 백제왕씨라고 하는 씨족에 대한 검토를 통해 7세기 말 율령국가 형성으로부터 이후 9세기 중반까지의 전개 변화 과정을 추적하면서 동아시아세계 내에서의 일본 율령국가의 본질 탐색을 목적으로 했다. 백제왕씨란 일본에서 율령국가가 형성하기 시작하는 7세기 말 천무·지통조에 백제왕 선광(善光 혹은 禪廣)의 직계에게 주어졌던 백제왕족의 집단명이다. 백제왕씨로서의 씨족이 갖는 특이한 성격은 일본 율령국가에 의한 백제왕의 [책립(冊立)]이라는 사태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사례로서 많은 연구자에게 주목되어 왔다. 본론에서는 백제왕씨의 성립과 발전 과정을 각 시기의 고유한 사정을 참작하면서 단계적으로 파악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점에서 백제왕씨의 성격을 검토해 나가고자 했다. 본론의 구성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우선 제1부 <일본율령국가의 성립과 백제왕씨>에서는 백제왕씨 성립에 관해 일본 측의 시점에 서 있는 대부분의 선행 연구와는 달리 백제부흥군 및 백제 이주민의 입장에서 검토하는 것의 유효성을 제기함과 아울러 백제왕씨 성립의 전사(前史)로서 ‘백제왕’의 존재에 주목하고, 백제의 국내사정과 왜왕권의 외교정책이라는 복합적인 관점에서 백제왕씨 성립의 역사적 배경을 검토한다.

제1장 ‘7세기의 왜국과 백제: 백제왕자 풍장(豊璋)의 동향을 중심으로’에서는 백제왕자 풍장의 동향을 통해 7세기 왜국과 백제와의 관계를 재검토한다. 이 검토는 백제 멸망과 함께 풍장이 백제왕자로부터 백제왕으로 변하는 시점에서의 전사를 명백히 하는 것도 된다. 나아가 이는 풍장의 내왜 시기와 그 배경은 물론 풍장의 귀국 직후 동아시아 정세의 설명과도 관련한다.

제2장 ‘백촌강의 싸움과 왜: 동아시아 신체제의 재편과 관련하여’에서는 백제멸망으로부터 시작하는 백제부흥전쟁과 그 후의 전개에 주목한다. 백제왕자의 귀환과 함께 왜국으로부터 대규모의 구원군이 보내지지만 백촌강에서의 패전과 함께 백제로부터 많은 이주민이 망명해온다. 나아가 백촌강 싸움 이후의 새로운 동아시아 세계에 대해서 살펴본다.

제3장 ‘백제왕씨의 성립과 일본율령국가’에서는 제1부의 결론으로서 백제왕씨의 성립에 대해 검토한다. 그 중심에는 백제왕 선광이 있다. 아직 건설 중이었던 일본율령국가는 백제왕 선광을 일본의 국가 시스템 속에 어떻게 포섭해갔던 것일까. 그러한 고찰을 통하여 종래의 ‘소제국주의’론에서는 보이지 않는 백제왕씨 성립의 배경과 의의를 지적하고 일본율령국가 성립과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서도 논한다. 부론(금석문 甲午年銘法隆寺金銅觀音造像記銅版으로 본 백제왕씨)에서는 지금까지 별로 주목되지 않았던 금석문 갑오년명법륭사금동관음조상기동판(甲午年銘法隆寺金銅觀音造像記銅版)을 소재로 백제왕씨의 존재에 대해서 검토한다. 백제왕씨의 선조인 선광의 죽음을 추모하는 승려들, 즉 선광 자식들의 생각이 편찬사료만으로 백제왕씨의 문제를 생각해 왔던 종래의 방법론에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 백제왕신사
▲ 백제왕신사

 제2부 <일본율령국가의 전개와 백제왕씨>에서는 8세기 중엽 백제왕씨의 집단이주와 집단거주의 의미를 검토함으로써 집단으로서의 ‘백제왕씨’가 일본율령국가에 있어서 담당한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본다.

제1장 ‘나라시대의 백제왕씨’에서는 8세기의 백제왕씨에 대해서 검토한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단순히 백제왕씨의 율령 관인화라는 맥락으로부터 접근했지만, 8세기 율령국가에서의 백제왕씨는 일본율령국가의 외향적 이념, 즉 신라와 발해를 번국으로 하는 ‘동이의 소제국’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이론적인 근거이자 실태로서 파악되는 등 중요한 존재의의를 가지고 있었다. 성무(聖武)천황기와 순인(淳仁)천황기에 백제왕씨의 활약은 이러한 인식을 통하여 비로소 인식된다.

제2장 ‘도래계유민의 개·사성(改·賜姓) 기사로부터 본 백제왕씨’에서는 일본율령국가의 기축인 씨족제의 시점에서 개·사성에 착안하여 백제왕씨의 특징을 찾는다. 백제왕씨와 같은 씨족적 성격을 가지면서 개·사성에 관해 다른 실태를 보이는 고구려씨족과의 비교를 통하여 율령국가의 씨족에 있어서 백제왕씨의 특수성에 대해서 재검토한다.

 제3부 <일본율령국가의 전환과 백제왕씨>에서는 헤이안(平安)시대 이후의 백제왕씨의 전개에 대해서 검토한다. 백제왕씨는 헤이안 초기까지는 문헌상에서 그 활동을 빈번히 보이고 있지만 인명(仁明)천황기를 경계로 하여 조정과 지방행정의 양면에서 그 모습을 보기 어렵게 된다. 한편,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는 9세기 중반은 일본율령국가의 전환기라고 말해지는 시기에 해당한다.

제1장 ‘환무(桓武)천황과 백제왕씨’에서는 환무천황기의 백제왕씨에 대해서 검토한다. 종래의 연구는 환무천황과 백제왕씨의 혈연관계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백제왕씨를 구백제계 도래씨족의 대표적 존재로서 파악하고, 나아가 환무천황의 어머니인 고야신립(高野新笠)의 계보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담당한 존재라고 평가한다. 또 환무조는 백제왕씨와 관계가 깊었던 천지조의 정책을 계승하는 의식을 갖고 있던 점에도 주의를 환기한다.

제2장 ‘일본율령국가의 전환과 백제왕씨의 종언’에서는 지금까지 별로 주목되지 않았던 9세기 중반의 차아(嵯峨)~인명(仁明)조와 그 이후의 백제왕씨의 존재형태에 대해서 검토하고 또 백제왕씨의 씨족으로의 존재의 전환을 검증한다.

마지막 결론 <율령국가에 있어서 백제왕씨의 존재 의의>에서는 백제왕씨를 통해 보는 일본율령국가론 또는 일본 국내에서의 백제왕씨의 존재를 통해 일본율령국가와 백제왕씨의 양 측면으로부터 상호 존재 의의가 검토 가능한 것을 지적한다.


송완범 고려대·사학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연세대학교대학원 사학과 석사과정수료, 일본 東京대학교대학원 일본사학과 석·박사과정 졸업(문학박사), 현재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글로벌일본연구원 부원장, 동아시아고대학회 회장, 일본역사문화학회 회장(한국일본학회), 한국일본사상사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근현대 지식인을 통해 본 한일관계』, 『현대일본의 사회와 문화』, 『調和的秩序形成の課題』, 『동아시아 국제관계사』, 『목간에 비친 고대 일본의 서울 헤이조쿄(平城京)』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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