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촛불을 희망의 촛불로
상태바
분노의 촛불을 희망의 촛불로
  • 설한 발행인/경남대·정치학
  • 승인 2020.01.0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년사]

무언가 딱히 이룬 것도 없는데 속절없이 세월만 흘러 새해가 또 왔다. 언제나 그렇듯이 새해를 시작하는 마음은 항상 희망과 기대로 가득하다. 삶이란 날마다 새로운 시작의 연속이니 지나간 것에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다. 과거의 일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고, 새로운 일은 새로운 마음을 담아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가야 할 따름이다.

하지만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이 그저 가볍지만은 않다. 되돌아보면 어느 해 치고 순탄했던 적이 없었다. 지난해 역시 실망과 분노, 불안 속에 갈등의 연속이었고 심지어 자괴감과 배신감마저 들어 참으로 힘들고 고단했던 한 해였다.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전쟁 상태였다. 진정한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라기보다는 진영논리와 가짜뉴스에서 분출된 집단적 광기에 매몰된 채 극단적인 좌우 이념 대결과 함께 거짓과 진실, 정의와 불의, 상식과 비상식, 민주와 비민주 간의 총체적인 대결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각기 다른 이유로 고단하고 억울하며 불안한 민중은 결국 서로 다른 촛불을 들고 다시 거리로 나와 스스로 변화의 주체가 되고자 한다.

사실 이 땅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저성장과 경제적 양극화, 사회적 불평등 구조가 고착화되고, 사회적 분열과 갈등은 여전히 만연해 있다. 남북 갈등은 여전하고 국제관계도 위태위태하기만 하다. 특권층의 자가당착적 불공정 행위는 서민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무능함에 대한 자괴함과 함께 배신감까지 들게 했다. 정쟁에 몰두한 정치권은 극단적인 국민적 분열을 확대 재생산하며 권력 유지와 쟁취에 악용하고 있다. 법과 제도에 대한 불신, 공권력 남용의 폐해로 우리 사회는 그렇게도 청산을 부르짖던 적폐와 비정상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국민에게 확신을 주지 못했고 정치는 방황했다. 아무리 민주적인 법과 제도를 갖췄다 해도 우리 사회가 비민주적이고 비도덕적인 관행과 문화, 권력욕에 젖어 있다면 그 법과 제도는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도구가 될 수 있으며 공정한 사회는 요원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한 해였다.

이 모든 문제의 근저에는 우리 사회의 도덕불감증이 있다. 도덕적 잣대가 신분과 지위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고, 도덕이 이해관계와 정치적 목적에 이용당하는 수단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도덕불감증을 말해주고 있다. 특히 권력자들과 사회지도층, 소위 가진 자들의 도덕불감증 및 도덕적 타락은 우리 사회 위기의 일차적 원인이다. 이들에게 과연 정의란 게 있는지, 도덕이란 게 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나 수오지심(羞惡之心) 따위는 아예 자리를 잡지 못하고 도덕과 양심, 준법의 경계가 위태롭게 흔들린다. 이러한 도덕불감증은 인성교육의 부재와 이기적이고 출세지향적인 지식중심, 결과중심의 교육이 한 원인이며, 과정은 무시한 채 성공한 결과에만 박수를 보내는 문제의식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도 우리 사회 도덕불감증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학은 자본주의 전사를 만드는 공간이 아니라,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공공적 성격을 지닌 공간이다. 따라서 대학은 인간의 문제를 대학 정신의 핵심적 요소로 삼아야 한다. 인간의 문제는 더 편하고 풍족하게 오래 사는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거짓과 불의, 억압과 차별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인간의 문제는 자본주의의 생산성이 해결해 주지 못한다. 지난해 역시 국가와 기업에 휘둘리고 자본주의 시장논리에 지배된 채 우리 대학의 민주주의와 자율성, 비판정신은 기대만큼 나아지지 않았다. 올해는 어설픈 외국대학 흉내 내기와 탁상공론은 그만두고 진정한 교육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한국 사회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2020년은 새로운 변혁의 변곡점을 맞는 격동의 한 해가 될 것이다. 지난해의 어두운 기억을 떨치고 새로이 도약할 준비를 해야 한다. 과거의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고 어리석음을 반복할 것인지 현명한 선택으로 통합과 번영을 이룰 것인지는 올 한 해 우리의 결단에 달렸다. 여전히 잔존하는 구태와 구습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새로운 시작에 부합하는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그러면 분노의 촛불은 희망의 촛불로 승화될 것이다.
 

 

설한 발행인/경남대·정치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