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을 벗은 조선 르네상스 리더십의 진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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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을 벗은 조선 르네상스 리더십의 진짜 모습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1.01.10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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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두 리더: 영조 그리고 정조 - 조선 르네상스를 연 두 군주의 빛과 그림자 | 노혜경 지음 | 뜨인돌출판사 | 344쪽

오늘날 한국인에게 익숙한 조선의 두 군주, 영조 그리고 정조. 이들의 모습에는 어떤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게 있다. 그런데 이게 영조와 정조의 ‘진짜’ 모습일까? 이런 인상평에 가려, 두 군주의 통치행위 전반을 오인하거나 곡해할 우려는 없을까? 이 책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한다.

조선 르네상스기의 문을 열어젖힌 개혁 군주, 영조. 난관을 극복하고 국가의 리더가 된 그는, 격동의 시대 한가운데서 갖은 저항에 맞서 국가 개혁을 실행해나갔다. 한편 그 개혁의 기치는 후대 정조로 이어졌으나, 아쉽게도 미완의 실험에 머물고 말았다.

이 책은 새 세상의 꿈을 향해 나아간 영조 그리고 정조 두 인물의 리더십 특색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50가지 장면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그 분석들을 종합하여 ‘정치지도자’로서의 면모를 입체적으로 재정립한다. 이로써 기존 역사 교양물들이 보여준 편향적이고 패턴화된 시선을 넘어서서, ‘조선 르네상스’를 이끈 ‘두 리더’ 영조와 정조를 좀 더 정확하게 제시할 뿐 아니라 당대 조선 사회를 올바로 이해하는 새로운 역사적 시각을 제시한다.

이 책은 두 군주 영조와 정조의 면면을 살피는 데 있어, 시대에 대한 판단력과 개혁 의지, 그 개혁을 실행하기 위한 제도적 실험, 그리고 그 수행 과정에서의 공감 및 참여 유도와 같은 리더십을 꼼꼼히 톺아본다. 우선 이 책 전반부에서는 주로 두 군주의 시대정신과 개혁 의지의 충실성을 살피고, 그것이 어떤 제도들로 실현되었는지 혹은 굴절되었는지 깊이 들여다본다.

영조와 정조. 두 사람 모두 시대의 변화 요구를 인지하고 그에 부응하여 개혁 정책들을 펼쳐나가려는 의지가 충천했다. 오늘날 두 임금을 ‘개혁 군주’로 부르는 데 큰 이의가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의 요구에 대한 판단에서는 긍정적인 면과 아쉬운 면이 동시에 존재한다. 우선 영조. 그 자신이 출신 배경에 대한 한계를 지닌 인물로서, 콤플렉스와 그 극복 의지를 동시에 갖고 있었다. 모친이 무수리 출신이라는 사실은 그의 정통성 논란을 자아내는 중요 요소였는데, 실제로 그는 신하들이 자신을 무시하여 자꾸 뜻을 거스른다며 히스테릭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이런 ‘불편함’은, 한편으로는 신분 구조의 변동 양상을 보이는 당대 사회를 직시하고 그에 선제 대응하는 개혁성의 유인이 되었다. 궁중에서는 후궁들의 대우를 개선하는 정책을 펴고, 관료사회에는 소외된 계층을 양지로 끌어내고(3장 4절) 공동체에 기여한 자를 우대하는 과거 제도를 도입한다. 또 백성들에게는 민심을 적극 청취하고 실질적인 현실 개선을 위한 파격 정책들을 펼치는 등, 사회계층의 상하부 할 것 없이 두루 ‘공평’의 분위기가 형성되게끔 노력한다.

▲ 두 리더_영조와 정조
영조와 정조

정조는 어땠을까. 그 또한 할아버지이자 선왕인 영조의 개혁 기조를 그대로 이어받는다. 영조가 전례 악용으로 인한 민간의 폐해를 막고자 관청의 관행 기록을 전부 불태우게 한 것처럼, 정조도 전례의 극복을 강조했다. 왕실 행사에 백성을 무상 동원하던 관행을 깨고 그들에게 포상한 것을 비롯해, 다양한 민간 지원책을 펼친다. 그런데 ‘공평’을 추구하며 민간의 세금이나 부역을 감면해주거나 관료를 특진시키는 등의 정책은, 또 다른 불평등을 야기하거나 행정상의 부조리를 초래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아울러 정조는 자신이 공언했던 것만큼의 개혁을 단행하지는 못한다. 개혁 정책에는 반대 세력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그는 그들을 설득하여 찬성으로 돌릴 논리를 제시하기보다는 자기 확신에 따른 정책 추진 쪽으로 기우는 경향을 보인다. 선왕인 영조는 영악하다 싶을 정도로 신하들과 논리 싸움을 벌여, 사소한 지점은 양보하더라도 결국엔 자신의 개혁 정책을 관철한 경우가 많았다. 그에 비해 정조는 신하들을 말판 위의 말처럼 여기곤 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미리 확정해놓고 정책의 판을 짜다 보니, 옳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거나 미완에 그치고 마는 개혁 정책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 책 후반부에서는 주로 두 군주의 통치 스타일을 살피고, 새 시대가 요구하는 군주의 상에 두 사람이 얼마나 도달했는지 가늠해본다. 결론을 얘기하면 이렇다. 영조는 민심을 최대한 듣고 공감하며 구성원의 자연스러운 참여를 이끌어내는 리더십을 구사했으나, 갈등이 극심한 정국에는 자기 통제를 잃는 모습도 보였다. 한편 정조는 전 계층이 두루 실질적 혜택을 누리게 하는 개혁 군주를 꿈꿨으나, 그 과정에서 관료들과의 사적인 관계를 형성하여 정국을 압도하는 ‘밀실 정치’를 구사했다.

이처럼 이 책은 ‘르네상스’를 이끈 두 군주의 통치행위를 꼼꼼히 살핌으로써, 사회 대개혁의 기치를 들어 올렸던 18세기 조선의 정국을 보다 깊고 넓은 시각으로 바라본다. 또한 그런 대대적인 변화를 이끌고자 분투한 두 군주의 리더십을 다면적·다층적으로 조명함으로써, 조선 르네상스가 본격 시작된 배경과 그것이 더 큰 걸음을 내딛지 못한 까닭을 아울러 분석한다. 이들이 보여준 이상과 좌절, 리더십의 도전과 한계는 단지 당대에 국한된 게 아니었다. 이 책의 50개 이야기 꼭지 끝마다 저자가 달아놓은 ‘영조/정조 그리고 리더십’은, 낡은 틀을 깨야 하는 시대에 리더가 어느 길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오늘의 우리에게 넌지시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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