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과 전 세계 민주주의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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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과 전 세계 민주주의 동향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1.01.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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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사 리포트]_ 국회입법조사처 『국제관계 동향과 분석』 제78호

올해 들어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 수준이 하락하는 경향이 지속돼 왔다. 2005년을 기점으로 민주주의 수준이 하락하고 권위주의 수준이 상승하는 국가가 늘어나고 있다. 각 국 정부는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통행 및 출입제한이나 경제활동 봉쇄, 계엄령 발동까지 비상조치들을 도입하였다.

이러한 정부대응은 불가피하게 시민의 자유와 기본권에 대한 일정한 제약을 수반한다. 이에 따라 유엔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비상조치가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위험에 비례하는 수준에서, 비차별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달 ‘코로나19 확산과 전 세계 민주주의 동향’을 분석한 보고서 『국제관계 동향과 분석』 제78호(허석재 입법조사관)를 발간했다. 아래 그 내용을 소개한다.


1. 들어가며

2020년 들어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부터 이미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 수준이 하락하는 추세가 지속되면서 국제사회의 우려가 제기돼 왔다. 일부 권위주의 국가의 권위주의적 행태가 강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도적으로 안정된 민주주의 국가들조차 권위주의적으로 변모하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이 초래하는 재난상황에서 국가 공권력의 역할이 커지고 시민의 자유와 기본권에 대한 일정한 제약이 불가피해졌다. 이로 인해 민주주의 수준이 하락하는 경로에 있던 많은 국가들이 코로나19에 대한 대처를 구실(pretext)로 민주적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코로나19 확산과 대응을 계기로 민주주의 수준이 낮아지는 경향에 대해 주요 사례별로 살펴보고, 국제적인 대처 노력을 소개하며, 정책적 시사점을 도출한다.

2. 전 세계 민주주의 수준 변화 추세

옛 공산권의 해체를 계기로 자유민주주의의 전 세계적 확산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점차 민주화 경향이 약화되었고, 대략 2005년을 기점으로 민주주의로 전환하는 국가에 비해 권위주의로 퇴행하는 국가가 늘어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가 매년 집계하여 발표하는 자유 지수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의 확산세는 2005년을 기점으로 꺾였고, 이후 작년까지 14년간 계속해서 민주주의화된 국가보다 권위주의화된 국가의 수가 많았다.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가 발표하는 자료를 보더라도 집계가 시작된 2006년 이후 2019년에 민주주의 평균 지수가 최악을 기록했고, 국제적 민주주의 연구 프로젝트인 ‘민주주의의 다양성 조사’(Varieties of Democracy: V-Dem)가 발간한 최신 보고서에서도 10년 전에 비해 권위주의 치하에 살고 있는 세계 인구가 6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경향은 일부 저개발 국가만이 아니라 브라질, 인도, 미국, 터키 등 정치·경제적인 영향력이 매우 큰 국가들에서도 나타나고 있어 전문가들의 우려가 높아져 왔다. 선진민주주의가 대다수인 유로존 국가들 사이에서도 2008년 재정위기를 계기로 포퓰리즘이 득세하면서 민주주의의 기본규범을 해치는 행태들이 나타나고 있다.

3. 코로나19 확산과 민주주의 수준 하락

2020년 들어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각 국 정부는 전염 위험을 줄이기 위해 통행 및 출입제한 조치나 경제활동 봉쇄(lockdown), 나아가 계엄령까지 발동하는 등 전시에 준하는 대응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민의 자유와 기본권에 대한 제약이 불가피하다. 유엔은 성명을 발표하여 긴급조치의 적용은 ‘당면한 위험에 비례하는 정도로, 불가피한 경우에 머물러야 하며, 차별을 수반하면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국가에서 코로나19 대응을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면서 민주주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프리덤하우스는 10월에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 80개국에서 민주주의 수준이 낮아졌다고 진단하였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전 세계 192개국의 392명의 언론인, 시민단체 활동가 및 전문가를 상대로 조사를 진행했는데, 64%가 자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상황이 악화되었다고 응답했다. 정부의 투명성과 책임성은 약화되었고, 정보에 대한 통제와 시민에 대한 감시활동이 증가하였으며,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하는 선동행위가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59개국에서 시민을 상대로 한 경찰의 폭력 사례가 보고되었는데, 대부분의 경우 자유 지수가 낮은 비민주주의 국가였다. 66개국에서는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신체구금과 구속이 발생했다. 65개국에서는 코로나19 대응을 이유로 의회의 의사일정을 중지시켰다.

스리랑카 정부는 감염 확산을 막는다는 취지에서 대대적인 정보를 수집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경찰과 군부를 동원해 불필요한 사생활 정보까지 파악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유포하는 개인이나 단체에 대해 탄압하는 사례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터키의 방송위원회는 정부의 코로나19 대처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내보낸 언론기관에 대해 벌금을 부과했으며, 키르기스스탄, 방글라데시, 르완다, 탄자니아, 나이지리아 등 많은 국가에서 정부
대응에 비판적인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구금되는 등 정치적 탄압이 발생했다.

특히 코로나19를 대응하면서 소수인종이나 정치적 반대세력을 억압하는 조치가 취해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불가리아의 경우 집시인(Romany)에 대해 더 강한 이동제한 조치가 가해졌고, 인도의 이슬람교도들은 ‘슈퍼전파자’로 간주되어 혐오대상이 되었으며, 스리랑카에서는 사망한 이슬람교도들에 대해 전염 위험을 이유로 (이슬람 규범에 따른 매장이 아니라) 화장을 하도록 조치한 사례가 있었다. 몬테네그로에서는 세르비아 정교도에 대한 혐오가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정부의 잘못된 정보제공이 문제된 경우도 있다. 니카라과와 투르크메니스탄 정부는 바이러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 바 있으며, 탄자니아 정부는 검증되지 않은 처치방법을 사용하도록 권장하였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감염자의 99%는 아무런 해를 입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며,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대통령도 감염자의 90%가 아무런 증상이 없다고 언급했다. 멕시코의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코로나19가 일반적인 감기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으며, 벨라루스의 루카센코 대통령은 코로나19로 어느 누구도 사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하였다. 세계보건기구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력히 요청했음에도 이들 지도자들은 대중집회나 군사 퍼레이드를 개최하거나 아무런 조치 없이 대중들과 포옹하고 악수하기도 하였다.

국제비영리법률센터(International Center for Not-for-profit Law, ICNL)가 집계하는 「코로나19와 시민 자유 추적조사」에 따르면 2020년 11월 30일 현재 긴급조치가 발효된 국가는 95개국이고,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조치를 취한 국가가 47개국이며, 집회의 자유를 제약하는 국가는 128개국이며, 프라이버시에 영향을 미치는 조치는 50개국에서 도입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선거지원을 위한 국제기구(International IDEA)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2월 21일부터 11월 29일까지 75개국에서 선거를 연기하였다. 스리랑카의 라자팍사 대통령은 3월에 여소야대의 의회를 해산하였고 4월에 조기선거가 예정돼 있었으나 코로나19를 이유로 선거를 연기하고 의회없이 5개월간 통치하며 권력기반을 강화하였다. 에티오피아 총선은 올해 8월로 예정돼 있었지만, 코로나19를 이유로 무기한 연기되었고, 이에 대한 대대적인 반발로 인한 정정불안과 독재회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8월 9일 대통령 선거를 치른 벨라루스는 26년간 대통령으로 재임한 루카센코가 80% 이상 득표하며 재선에 성공한 것으로 발표했지만, 야권은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반발했고 대규모 시위사태로 이어지게 되었다. 선거부정이 만연한 국가에 대한 국제사회의 감시활동도 코로나19를 이유로 많은 제약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주의 다양성 조사(V-Dem)는 각 국이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민주주의 규범(standard)을 위반한 정도를 추적조사를 통해 지수화하여 업데이트하고 있다([그림 2] 참조).

이 자료에 의하면 민주주의 규범을 가장 심대하게 위반한 국가는 스리랑카(0.57)이며, 인도(0.56), 엘살바도르(0.49), 말레이시아(0.35), 멕시코(0.35), 남아프리카공화국(0.34), 필리핀(0.33), 세르비아(0.32), 우간다(0.31) 등의 순으로 나타난다. 미국(0.3)도 심대한 위반이 있었던 국가로 분류되며, 조사대상 144개국 가운데 22번째로 위반정도가 심하다고 평가되었다. 반면 한국은 위반이 없는 국가에 속한다.

4. 세계 민주주의 강화를 위한 국제기구의 입장

세계민주주의의 날인 올해 9월 14일에 구테흐스(Antonio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은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하여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과 의사결정에 대한 참여개방, 책임성 있는 대응을 위해 민주주의가 중요하며, 코로나 위기 이후 민주적 절차와 시민공간을 제한하는 다양한 비상조치들이 있었는데, 이런 조치는 민주주의의 뿌리가 약하고 제도적인 견제와 균형이 취약한 곳에서 위험하다”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같은 날 유럽연합집행위원회도 성명을 내서 “홍콩, 레바논, 벨라루스, 수단 등 여러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용감한 시민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싸우고 있다”며 격려의 메시지를 보냈다.

민주주의와 선거지원을 위한 국제기구(IDEA)는 지난 6월에 “민주주의를 지키자”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전 세계 100여개 기관과 119개국의 500여명의 저명인사가 참여했다. 이 성명은 코로나19가 “자유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협하는 정치적 위기를 초래했다”고 진단하고, “민주주의는 단지 이상에 그치지 않고 코로나19의 복잡하고 커다란 위기에 대처하는데 가장 잘 맞는 정부체제이며, 신뢰성 있는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과 사실에 기반 한 정책토론, 시민사회의 자발적 결사, 정부와 사회 간의 공개적인 협력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방역과 경제라는 상충하는 목표 간에 균형을 잡기 위해서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5. 주요 정책적 시사점

세계적으로 2000년대 후반기부터 지속되어 온 민주주의 수준의 하락세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심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민주주의의 제도와 규범이 취약한 국가에서 코로나19에 대한 비상조치들은 기본권과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 가운데 성공적인 방역을 이룩한 사례로 지목돼 왔다. 코로나19의 진단과 추적 및 치료에 있어서 효율적인 정부 대처와 투명한 정보공개,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룬 성과이기에 모범사례로 주목받게 되었다. 코로나19라는 비상시국에 시민 자유와 민주주의 절차에 부적절한 제약이 가해지지 않았고, 민주주의의 제도화가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향후 코로나19의 확산 추세에 따라 더욱 엄격한 규제가 도입될 가능성
이 있다. 이 과정에서 유엔의 권고대로 ‘불가피한 경우에만, 위험에 비례하는 수준에서, 비차별적으로’ 기본권 제한이 이뤄지도록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간 한국은 방역의 노하우와 진단키트 등을 해외에 제공하면서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이 제고된 측면이 있다. 멀지 않아 개발이 완료될 것으로 예상되는 치료제도 해외에 보급이 가능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도 민주주의와 시민자유의 보장을 기준으로 삼는 국제협력에 동참하는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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