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의 시대를 넘고, 책임 수업시수 제도를 혁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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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점의 시대를 넘고, 책임 수업시수 제도를 혁신하라
  • 배상훈 성균관대·교육학
  • 승인 2020.12.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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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_ 배상훈 칼럼

대학은 변해야 한다. 캠퍼스 밖 환경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탓인지, 피로감을 느낄 정도로 ‘대학 혁신’이라는 말이 나돈다. 하지만 대학은 늘 그 자리에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본질적인 문제를 건드리기보다는 기술적 조정에 머물기 때문이다. 웬만큼 대학 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대학가에 떠도는 현란한 처방들이 많은 경우 공염불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혁신이라 하면, 공허하게 느끼거나 냉소적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 운영의 핵심 문제를 개혁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커다란 기득권 구조(構造)에 도전하거나, 다른 제도들과 밀접하게 연관돼서 손대는 것 자체가 부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의 제도는 역사의 산물이므로, 변화에 저항하는 집단이 둘러댈 수 있는 이유도 많다. 따라서 대학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고, 역동적으로 변하는 사회로부터 외면을 받을 날이 올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진정한 혁신을 하려면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 두 가지를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우선 ‘학점의 시대’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학생이 대학에 다니는 이유는 좋은 학습경험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캠퍼스 안팎에서 학생이 갖는 경험은 매우 다양하고 역동적이다. 정규 수업에서 거둔 성취만을 나타내는 ‘학점’은 학생의 다양한 대학 경험을 모두 담아내지 못한다. 교무처장이 발행하는 한 장의 ‘성적 증명서’로 학생의 꿈, 성취와 경험, 성찰, 실패로부터 얻은 교훈 등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비교과 프로그램 참여부터 봉사활동, 학생회 활동, 교환학생, 인턴 경험에 이르기까지 여러 교육 경험을 기록하고 축적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심지어 휴학하는 동안 얻은 경험도 가치가 있을 수 있다. 학생이 스스로 좋은 경험을 쌓아가고, 이를 즐기고, 자랑스러워하도록 만드는 새로운 학습 평가인정 시스템이 필요하다. 하지만 학점 제도를 혁파하기 쉽지 않다. 성적장학금을 비롯해 여러 제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형식적 공정성을 추구하고, 신뢰 자본도 숙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생의 진취적 도전정신, 성취 과정, 독창성에 대하여 질적 평가를 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결국 ‘학점 혁명’은 ‘평가 혁명’과 맞닿아 있다. 삶에 대한 진지한 각오, 교과목 이수 이력과 성취, 다양한 프로젝트 경험, 캠퍼스 밖 활동을 글이나 사진, 동영상 같은 다양한 수단으로 보여주는 디지털 플랫폼을 만들면 좋겠다. 이것이 학생의 자기주도 학습을 이끌고, 인턴, 취업, 진학에 쓰인다면 얼마나 좋은가. 최근 ‘e-포트폴리오’나 ‘학습자 가방(learner wallet)’을 만들어 통용하려는 시도가 대표적이다. ‘학점의 시대’를 과감히 버리고, ‘학습경험의 시대’로 나아가는 대학이 미래를 선도할 것이다.

교수 차원에서는 ‘책임 수업시수’라는 아날로그 시대의 경직적 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필요하다. 책임 시수는 교수에게 부과하는 연간 작업량과 같다. 문제는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이든 획일적이라는 것이다. 교수라면 누구나 연간 15학점을 가르쳐야 한다는 식이다. 베스트셀러 책을 펴내고, 학교를 대표하는 대형 명품 강의를 하는 노년 교수도 막 들어온 신임 교수와 책임 시수가 다르지 않다. 획기적인 연구 성과를 보여도, 대규모 산학 프로젝트로 대학 재정에 크게 이바지를 해도 규격화된 시수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학부생 연구 프로젝트를 지도해도, 참여 학생 수가 적으니 3학점을 못 준다고 한다. 그렇다면 1학점씩 주고, 학점을 적립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하면 어떨까. 지금의 획일적인 책임 시수 제도는 디지털 혁신시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수백 명이 들을 수 있는 온라인 명품 강의를 도입하게 되면, 아날로그 시대의 작업량을 말하는 책임 시수 제도가 온당치 않다. 앞으로 공유대학 플랫폼을 확대하려면 현재의 책임 시수 제도를 손봐야 한다. 무엇보다 지금의 책임시수제도는 교수들의 창의롭고 능동적인 참여를 끌어내지 못한다. 교수가 대학과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교수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자원이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공동체의 발전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새로운 패러다임일 것이다. 그러나 개혁은 쉽지 않다. 교수업적 평가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책임시수 제도와 교수업적 평가를 혁신하는 대학이 미래를 선도할 것이다.

스탠포드대학은 ‘개방형 교육체제(open loop university)’를 운영하고 있다. 공부하다가 성찰의 시간을 필요하다고 느끼면, 학교에서 배운 것을 현실 세계에서 써먹고 싶으면,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과감히 캠퍼스 밖으로 나가서 경험하라고 권한다. 언제든 다시 돌아와 학업을 이어갈 수 있다. 우리라고 못 할 이유가 없다. 학생은 학점 이수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교수들은 획일적인 책임 시수를 채우느라 진을 빼는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창의적인 대학 혁신은 불가능하다. 도전하고 결단하는 대학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것이다.
              

배상훈 성균관대·교육학

성균관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동 대학 학생처장 및 학생성공센터 센터장, 교육과미래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한국교양기초교육원 운영위원, ≪한국대학신문≫ 논설위원, <International Journal for Research on Extended Education> 편집위원장으로 활동한다. 『미래의 귀환』(공저), 『데이터로 교육의 질 관리하기: 이론과 실천』(공저), 『잘 가르치는 대학의 특징과 성공요인』(공저), 『대학 혁신을 위한 빅데이터와 학습분석』(공역)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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