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예술에 대한 부르디외의 시각을 다층적으로 조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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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예술에 대한 부르디외의 시각을 다층적으로 조명하다
  • 이상길 연세대·사회학
  • 승인 2020.12.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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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 책을 말하다_ 『상징권력과 문화: 부르디외의 이론과 비평』 (이상길 지음, 컬처룩, 408쪽, 2020.11)

<상징권력과 문화: 부르디외의 이론과 비평>은 내가 부르디외 사회학을 주제로 쓴 두 번째 책이다. 2018년에 펴낸 <아틀라스의 발 - 포스트식민 상황에서 부르디외 읽기>(문학과지성사)가 부르디외 사회학의 발생과 구조를 탐구하고 한국 사회에서의 외국이론 수용 문제를 성찰하고자 했다면, 이번 책은 부르디외의 문화생산론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예술과 미디어 문화에 관련된 부르디외의 이론과 활동을 정리하는 동시에, 그 한계와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탐색해 보는 데 이번 책의 지향점이라면 지향점이 있었다. 구체적으로 <상징권력과 문화>는 부르디외가 예술과 대중문화를 사회학적으로 어떻게 접근했는지, 이는 프랑스 내부의 역사적 상황이나 논쟁과 어떻게 맞물려 있었는지, 예술가나 비평가를 꿈꾼 적도 있었던 이 사회학자가 실제 자신의 사회학을 어떻게 예술적 실천과 연결 짓고자 했는지, 부르디외식 접근이 동시대의 저널리즘과 문화산업을 바라보는 데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 등을 논의한다. 

이 책의 주축을 구성하는 7편의 텍스트들은 본격적인 학술논문이 아닌, 일종의 비평문critical essay이다. 단 한 편만 빼고는 이전에 비평 계간지나 단행본 - 그나마 지금은 대부분 구하기 어려운 - 에 실린 적이 있는 글들이다. 학술지에 발표된 하나의 글마저도 ‘주제비평’의 틀 아래 쓰였던 만큼, 일곱 개의 장 모두가 비평문으로서의 성격을 공유한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구태여 비평문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단순히 어떤 텍스트를 분류하는 사회적 범주를 확인하고 재생산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그 용어는 이 책에 묶인 글들이 갖는 장단점과 관련이 있으며, 책 전체의 목표와 성격을 명확히 드러내 준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중요하다.

일단 비평문들이다 보니, 글의 소재나 형식에서 훨씬 자유로운 면이 있었다. 논지의 엄밀성과 경제성을 추구해야 하는 논문의 틀에서 벗어나, 뭔가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이미지를 활용하기도 하면서, 독자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가는 실험을 할 수 있었다. 비평지의 특성상 학술지 논문과는 다른 독자층(문화예술 생산자, 학생, 일반인)을 의식하면서 글을 써야 했기에, 내 딴에는 어려운 내용을 최대한 재미있게 전달해 보려는 노력을 많이 기울인 셈이다. 반면 논문이 아니다 보니, 내 입장을 세우고 단일한 논점을 치밀하게 공략하는 글이 되지는 않았다. 거기엔 부르디외의 문화생산론에 대한 내 비판적 시각이 정교하고 일관된 수준에까지 이르지 못한 탓도 클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이루는 글들이 ‘사유의 시도’라는 본래 의미의 ‘에세이’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책 속에서 나는 예술과 미디어 문화에 대한 부르디외의 분석틀이 어떤 이론적·실천적 특징과 한계를 지니는지 탐색하고자 했고, 현 상황에서의 새로운 관점이나 대안적 방향성까지 제시하지는 못했다. 이는 향후의 연구를 통해 더 발전시켜나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상징권력과 문화>의 본문에는 7개의 장 외에 33개의 노트가 실려 있다. 책을 만들면서 나는 본문 내용과 연관성이 있는 주제 항목을 장별로 4~6개씩 뽑아냈고, 이를 새로 집필해 각 장의 뒤쪽에 덧붙였다. 주제 항목은 대체로 세 가지 유형을 띠는데, 부르디외의 텍스트에 대한 해설, 부르디외에 대한 비판론, 그리고 사회적 맥락의 설명 등이다. 이러한 노트들을 다수 추가한 데는 이유가 있다. 부르디외는 문화예술에 관한 주저들 말고도, 적지 않은 양의 논문, 대담, 강연문 같은 부가 텍스트들을 남겼다. 이 텍스트들은 문화예술의 다양한 주제(예를 들면, SF, 소수문학, ‘동시대 예술’ 논쟁 등등)에 대해 유연한 분석과 흥미로운 통찰을 보여주고 있어, 저서들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따라서 부르디외 텍스트의 해설 성격을 띠는 노트들은 (아마도 그의 부가 텍스트들이 우리말로 번역되기는 요원한 상황이라는 전제 아래) 그의 이론에 뉘앙스와 유용성을 더해주는 소개 글로서의 기능을 지닌다. 또 부르디외에 대한 비판론이라든지 사회적 맥락의 설명을 담은 노트들의 경우, 그의 이론이 갖는 장단점을, 학문적 토론과 사회정치적 상황에 연계시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이론’과 ‘이론적 서사theoretical narrative’의 문제에 관해 고민하게 되었다. 예전에 ‘계급별 영화 소비’ 같은 부르디외식 경험 연구들을 수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내가 이용했던 부르디외의 이론과 비평문들에서 서술한 이론 사이에 뭔가 미묘한 차이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였다. 그러한 느낌은 단순히 글의 형식이나 스타일의 문제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책 원고를 교정하던 무렵, 하워드 베커의 <사회에 대해 말하기>에 관한 서평을 쓸 일이 있었는데, 다시 읽은 베커의 책은 그러한 고민에 살을 붙여주었다. 사회과학에서 이론은 상호 유기적으로 연관된 추상적 개념과 명제들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통상 연구자 공동체 안에서 경험 연구를 산출하기 위한 용도를 지닌다. 자기 이론이 ‘연구프로그램’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던 부르디외는 이러한 표준적 이론관을 일정하게 공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모든 이론이 경험 연구의 프로그램으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독자에게 (종종 암묵적으로) 역사나 사회 현실에 대한 모종의 서사를 제안한다.

▲ 피에르 부르디외
▲ 피에르 부르디외

이론적 서사는 사회적 사실들을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데 쓸모 있는 행위자 목록, 관계 유형, 상호작용의 양상과 특징, 변화의 단계와 과정, 그리고 윤리적 판단 기준 등으로 짜여있다. 그것은 신화적 서사나 종교적 서사, 이데올로기적 서사 등과 서사라는 공통분모를 지니면서도 분명한 차별성 또한 가진다. 이론적 서사는 대개 다른 서사들을 반박하거나 혹은 대체하려 한다. 그 독자의 범위는 전문가 집단을 넘어서 일반인들에게까지 확장될 수 있다. 우리는 이론적 서사로부터 우리가 살고 경험하는 부분적인 현실을 해석하고 또 명료화하는 데 도움을 받는다. 이는 바꿔 말하면, 이론적 서사가 우리의 일상적 경험이라는 테스트를 통과하면서 설득력을 갖춘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보기에, 모든 이론이 풍부하고 매력적인 서사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표준적인 사회과학의 많은 이론은 연구프로그램과 가설의 생성에 유용하지만, 서사를 구성하는 수준에 미치지는 못한다. 반대로 모든 이론이 반드시 경험 연구를 위한 효율적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d Bauman의) ‘액체근대liquid modernity’ 이론이 그렇다. 어떤 이론은 연구프로그램을, 또 어떤 이론은 서사를 적극적으로 지향하며 그러한 용도에 맞게 최적화된다. 즉 이론과 이론적 서사는 아예 서로 구분되는 유형이나 스케일처럼 나타날 수 있다. 간혹 하나의 이론이 연구프로그램과 서사로서의 잠재력을 동시에 지니고 있을 수도 있는데, 내가 보기엔, 부르디외의 이론이 그 같은 경우다. 즉 부르디외가 주창한 문화생산 장이론(field theory)은 연구자들이 경험적 탐구에 응용할 수 있는 분석틀을 제시하는 동시에, 우리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과 사건, 일상에서 겪는 경험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유익한 인식 도구를 제공한다. 

내가 <상징권력과 문화>에서 했던 것은 (글을 쓸 당시엔 크게 의식하지 못했지만) 부르디외의 문화예술론을 내 나름대로 서사화하는 작업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그의 이론을 전문적인 경험 연구를 위해 도식화하는 대신,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일종의 이야기로 번역, 전환하는 작업 말이다. 이러한 서사화의 중심에는 하비투스, 문화자본, 구별짓기 같은 개념이나 상동성 가설 못지않게(혹은 그보다 더), 행위자의 전략, 문화적 정당화, 상징투쟁, 상징혁명 등이 중요하게 자리 잡았다. 어떤 이론의 서사화에 단 하나의 방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면, 문화예술 영역에서의 투쟁과 변화를 강조하는 이러한 서사화는 부르디외의 문화예술론을 수용하고 의미화하는 내 시각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또 이는 부르디외의 이론적 서사가 기술적·분석적 수준을 넘어서, 규범적·수행적 성격을 띤다는 점을 시사한다. 즉 그것은 비주류의 예술가, 언론인, 연구자, 문화생산자들에게 자신이 속해 있는 공간 내의 주어진 권력 관계와 정당성 규범을 문제시하면서 상징투쟁을 통해 더 많은 문화자본을 축적하고, 세계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적극적으로 구축해나갈 것을 요구한다. 아마 이것이 내가 <상징권력과 문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상길 연세대·미디어문화연구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및 같은 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뒤 파리5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파리1대학교에서 철학과 DEA 과정을 수료했다. 저서로는 《아틀라스의 발 - 포스트식민 상황에서 부르디외 읽기》, 《커뮤니케이션학의 확장》(공저), 《문화연구의 렌즈로 대중문화를 읽다》(공저) 등이 있으며, 부르디외의 저작 가운데 《성찰적 사회학으로의 초대》, 《사회학자와 역사학자》(공역)를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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