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대학의 노동자, 그리고 교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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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대학의 노동자, 그리고 교수노조
  •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 승인 2020.12.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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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남 칼럼]

물론 교원노조법은 큰 결함을 안은 채 개정되었다. 하지만 2018년 8월 30일 당시 헌법재판소는 교원노조법 제2조에 대하여 내린 헌법불합치 결정(2015헌가38)에서 대학교수들을 아래와 같이 정의했다. 즉, 교수란 ‘학생들에 대한 지도·교육이라는 노무에 종사하고 그 대가로 받는 임금·급료 그밖에 이에 준하는 수입으로 생활하는 사람’이므로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밝힌 것이다. 두 해 전, 이 결정을 내리게 된 판단의 배경을 헌법재판소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는 언뜻 진보적인 어느 학자의 논문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꽤 오래 걸려 생성된 나름 국가의 인식이다.

대학 교원 임용 제도는 전반적으로 대학 교원의 신분을 보호하기보다는 열악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변천되어 왔다. 2002년 이후에는 기간뿐만 아니라 여러 근로조건을 계약으로 정하여 임용⋅재임용 하도록 하는 교수 계약임용제(교육공무원법 제11조의4 및 사립학교법 제53조의2 제3항)가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계약임용제 도입은 교수들 간의 경쟁을 통해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고 우수한 교수를 임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대학 교원의 신분을 불안하게 하고 대학 경영진들의 대학 교원 통제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상존하고 있다. 최근 대학 구조조정, 기업의 대학 진출 등으로 ‘단기계약직 교수(비정년트랙)’나 ‘강의전담 교수’가 등장하였고 2015년 기준으로 사립대학 내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의 비율은 20.6%에 이른다. 그런데 비정년트랙 교원의 급여수준이 정년트랙에 비하여 50%에 이르는 수준인 대학도 있어 비정년트랙의 확대로 인하여 대학 교원의 저임금과 신분불안이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 청구현황에 의하면, 교원의 재임용거부처분 청구의 숫자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어 객관적으로 대학 교원의 신분은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2015헌가38의 결정문>

이제 교수의 노동자성을 부인하는 이는 소수일 뿐만 아니라 그런 주장이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 명확하다. 문제는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이다. 문제에 대한 인식은 법률로 대충 포장하는 데 있지 않고, 그 문제의 공간을 극복하여 채워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대학마다 구성되어 있을법한 교수회 또는 교수협의회(평의회)의 한계를 지적하며 노동조합의 형성을 헌법의 차원에서 요구하는데, 교수는 단수형이요, 그 복수형이 바로 교수노동조합이다.

교수나 교수회는 대학의 장에 의한 학문의 자유 침해, 국가에 의한 대학의 자율성 침해 등의 경우에 있어 대학자치의 주체가 될 수 있다(2005헌마1047 등). 그런데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취지는 대학 구성원들이 학문의 연구와 교육이라는 대학의 기능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자주적으로 결정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며, 연구와 교육에 관한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 대학 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학문의 자유를 향유하는 대학 교원은 대학자치의 주체로서 어느 정도 대학의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이 보장되어 있으나, 임금, 근무조건, 후생복지 등 교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에 대해서까지 대학 구성원들이 대학의 자율성을 근거로 그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대학 측이 교수협의회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등 교수협의회는 법률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임의단체이다. (중략) 그러므로 교수협의회가 교수들의 근무조건 개선을 위해 대학 측을 상대로 교섭할 권한이 없음은 말할 나위도 없으므로, 갈수록 열악해지는 대학 교원의 근로조건의 개선을 위한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부족하다. 교수협의회의 역할은 해당 학교의 문제에 국한되므로, 특정 학교의 문제에 대하여 다른 학교의 교수협의회가 관여하고 싶어도 연대활동을 할 수 없으며, 교육부 혹은 사학법인연합회를 상대로 근무조건의 통일성 등에 관하여 교섭할 수도 없다. <2015헌가38의 결정문>

이렇듯 교수들의 단결권, 즉 교수들로 구성된 노동조합은 현 대학의 절망적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이성의 자기인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대학을 온전히 지배하며 교육과 연구의 여건을 옥죄는 학교법인과의 다툼, 그리고 여전히 경쟁과 책임전가로 일관하는 고등교육 당국과의 긴장으로 인하여 불가피하게도 이기적 존재자로서의 구심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겠지만, 오늘날 진리와 정의를 얻고자 하는 대학의 운명은 그 누구도 아닌 학자로서의 교수가 연대한 노동조합이라는, 즉 가장 합법적 주체의 참된 의지와 실천에 따를 수밖에 없음은 분명하다.
어디에서 대학의 희망을 찾을 것인가? 도대체 누구의 지혜로써 버틸 것인가? 대학의 역사만큼이나 그 정당성을 가진 노동조합이야말로 이 혼탁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참된 길이다. 이제는 패배주의와 편견을 넘을 때가 되었다. 죽어가는 대학이나 강요된 고등교육, 그리고 배움과 가치가 사라진 캠퍼스가 아닌, 생기와 자율, 그리고 진리와 정의가 가득한 배움의 대학공동체가 교수노동조합의 헌신적 걸음에 뒤따라 희망을 외치기를 기원한다.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나약하고 고립적인 교수의 권위에서 탈피하여 대학공동체의 참된 학자로 다시금 태어나지 않는다면 한국의 고등교육을 살릴 여명은 끝내 밝아오지 않을 것이다.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인제대학교 공공인재학부 교수로 <교수평의회> 의장을 맡고 있다. <민주법학> 편집위원이며, 전공은 계약법으로 교육법, 인권법, 주택법, 법여성학 등에도 관심이 많다. 저서로 『여성과 몸』(공저, 2019), 『대학정책, 어떻게 바꿀 것인가』(공저, 2017), 『민법사례연습』(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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