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우한 방문,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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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우한 방문, 그 후
  •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 승인 2020.12.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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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영 칼럼]_ 사인사색

‘아니 벌써!’ 2020년 마지막 달이다. 유난히 힘들었던 올 한해를 돌아보니, ‘코로나, 코로나’ 하다가 끝에 이른듯하다. 한낱 구호 같았던 ‘지구촌 공동체’의 초연결망을 절감하면서, 우리가 한 번도 살아보지 않았던 세상을 경험한 해였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1월에 중국 후베이성 우한을 거쳐 장시성과 안후이성을 방문하고 돌아왔을 때,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리라고 상상도 못했다. 1980년대 중반 이래 절반의 세월을 국외에서 보냈고, 미술사 연구 명목으로 매년 2~3개월은 ‘해외유람’을 해왔는데, 갑자기 익숙한 일상이 멈추고 예측 불가한 나날의 연속 끝에 12월이 되었다. 이제는 여행을 생각하면 코로나바이러스를, 겨울 하늘을 비상하는 철새를 보면 조류 인플루엔자를 떠올릴 정도로 무한 반복된 방역 학습효과가 몸에 뱄다.

개인뿐이랴. 지난 1월에 우한에 갔을 때는 상상조차 불가했던 일련의 재난들이 그 후 우리네 교육 현장, 사회 도처, 국가를 종횡으로 가로지르고 전 세계 동서남북을 휩쓸었다. 우리는 난생 처음인 수많은 비극적 상황을 목격하고 체험했다. 어느새 팬데믹의 제3차 대 유행기에 접어든 시점에서, 때마침 CNN을 통해 후베이성에 이미 작년 12월에 전년도 대비 20배 넘게 많은 유사폐렴증상 환자 발생, 그리고 초기 상황과 대처에 대한 내부문서 관련 보도를 접하자니, 지난 1, 2월 내내 조바심하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우한에서 목격했던 수천, 수만의 한국인과 외국인이 나처럼 아무 제재나 기록, 문진조차 없이 국내로 입국했는데, 이내 급속도로 확산된 코로나19 사태로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위험 국가로 취급되었다. 이후 질병관리본부, 의료진, 착한 국민들의 ‘피 땀 눈물’ 덕분에 지구촌에서 코로나 팬데믹 방역에 나름 성공하여, 국가적 위상이 상향되어 다행이다. 구미의 지인들에게서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인” 한국 예찬을 들은 경우는 근래에 의료보험제도, 여성대통령 선출, 촛불평화집회, BTS 이후 처음인 듯싶다.

팬데믹 때문에 올 한해는 대전환의 연속이기도 했다. 영화에서나 본 전 지구적 바이러스 출몰과 많은 변종 바이러스의 출현 예상은 인간의 끝없는 탐욕이 자업자득으로 초래한 참담한 대가 및 우리 미래의 위기를 각성시켰다. 환경운동가들의 외침에 귀 막았던 인류가 강제적으로 지구 훼손을 멈추면서 생태계 회복의 전조가 보이고, 심각한 지구온난화와 환경문제에 대응하는 ‘지구살리기’가 본격화되었다. 대학에서는 줄곧 역설된 온라인 강의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꿈적도 않던 우리 교수들이 선택의 여지없이 비대면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2010년에 미국 국립기관이 웹엑스로 주최한 국제심포지엄에서 발표 후 그 편의성과 경제성에 국내외 학계에서의 급속한 보편화를 기대했는데, 미동도 없더니 올해 한꺼번에 거의 모든 학회와 원격회의에서 자리잡았다. 이제는 우리 강의와 발언이 우리 자신보다 훨씬 오래 사는 시대가 왔다. 우리의 말이 순간성을 넘어 영속성을 획득한 것이다. 학생들은 캠퍼스 없는 대학을 체험했고, 대학의 혁신과 쇠락이 가속화되고 교수직 종사자가 대폭 감소할 가능성이 가시화되었다.

이는 더 나은 세상, 새로운 가치체계를 지닌 사회의 예고편이기를 희망해 본다. 가령 농부는 논밭에서, 교수는 학교에서 농사짓는다. 농부는 인간과 가축 생존의 필수작물을 재배하고, 우리는 생존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심고 거둔다. 그들은 세상의 필수자재이고 우리는 부(副)자재인 셈이다. 하물며 교수 없이도 지식전수와 공유가 온라인상에서 무한대로 가능한 시대가 왔음에야! 그동안 우리는 교묘하고 영리한 방법으로 교수와 농부처럼 부자재가 필수자재보다 훨씬 더 중시되고 대우받는 체제를 구축하고 누려왔다. 자연의 법칙을 역행하는, 만족을 모르는 인간의 욕망은 신체적 바이러스뿐 아니라, 사회적 바이러스를 유발한다. 올해 코로나바이러스가 불 지핀 대전환이 공교하게 제작된 이 사회의 불합리한 가치체계들을 바로잡고 새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왜 찬란한 벚꽃은 개화기가 짧고, 빛깔 고운 단풍나무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지 않으며, 장미에는 과실이 없는지 자연의 순리를 생각해 본다.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미국 델라웨어대학(University of Delaware)에서 미술사 석사와 철학 박사 취득, 국립 스미소니언박물관 Fellow와 국제학술자문위원, 미국 국립인문진흥재단(NEH) Fellow, 중국 연변대학 객좌교수, 일본 동지사대학 국제대학원 객원강의교수 등을 역임하고, 현대미술사학회 회장과 미술사학연구회 부회장을 지냈다. 현재 원광대 조형예술디자인대학 미술과 교수로 원광대 국제교류처장과 한국문화교육센터장, 전라북도 문화예술진흥위원,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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