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불합치 의견이 포기하지 않은 “태아의 생명권” 개념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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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불합치 의견이 포기하지 않은 “태아의 생명권” 개념의 모순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0.11.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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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읽기]

■ 깊이 읽기_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 비합리는 헌법재판소에서 시작된다』 (박이대승 지음, 오월의봄, 136쪽, 2020.10)

지난 2019년 4월 11일은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이 확정된 날이다. 이는 1953년 9월 형법에서 낙태죄가 제정된 이후 66년 만에 처음으로 내려진 위헌 판결이었으며, “임신중단 비범죄화”를 오랫동안 외쳐온 여성운동 진영의 성과이기도 했다. 하지만 위헌 판결 이후 막상 달라진 것은 없었다. 위헌 판결과 동시에 임신중단을 둘러싼 논쟁은 공론장에서 자취를 감췄고, 낙태죄 조항이 효력을 상실하는 올해 12월 31일까지 새로운 입법안을 제시해야 하는 국회는 판결 이후 17개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대체 입법 논의를 시작하지 않았다.

이 책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히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 문제를 토론하고 논의해야 했던 지난 1년 반, 오로지 침묵만이 감돌던 한국사회의 모습을 지적한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낙태죄 위헌의 최종 결정 유형인 헌법불합치 의견의 심각한 논리적 모순에 있다. 저자에 따르면, 헌법불합치의견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여 임신중단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태아의 생명권” 개념을 끝내 유지함으로써 적지 않은 모순과 비합리를 만들어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오히려 임신중단에 관한 토론을 방해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 책은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을 동시에 인정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함을 분명히 제시함으로써, 합리적 논쟁의 장을 구성하는 규칙을 마련하려는 의도에서 집필됐다.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을 동시에 인정하는 것이 왜 불가능한지를 따져보기 위해서는 우선 “생명”과 “생명권”부터 제대로 구분해야 한다. 이 둘의 구분이야말로 임신중단에 관한 논쟁의 핵심을 이룬다. 이는 곧 “태아는 인간인가?”라는 질문과 “태아는 생명권의 주체인가?”라는 질문을 요구한다. 놀랍게도 2019년 낙태죄 폐지 논쟁에서는 이 두 가지 질문이 전혀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이 질문을 올바르게 제기하기 위해서는 “인간 개념”부터 정의해야 한다. “인간”은 다양한 학문 영역 혹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각기 다르게 정의될 수 있다. 하지만 낙태죄와 임신중단을 둘러싼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 개념의) 이런 다양성이 아니라, “현대 민주주의 체제가 법적 인간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이다. “임신중단을 둘러싼 혼란 대부분은 법적 인간과 생물학적 인간, 혹은 법적 인간과 종교적 인간을 혼동하는 데서 발생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어떤 존재가 법적 인간이 될 수 있느냐다. 그 답은 분명하다. “자신의 지성을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로서, 자유롭다는 바로 그 사실에 의해 자기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는 존재만이” 온전한 의미에서 법적 인간의 조건을 충족하며 나아가 법적 권리의 주체로 정의될 수 있다. 근대 정치체제와 법체계가 태아를 법적 인간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건 바로 이 때문이다. 한국의 민법·형법 역시 마찬가지로 태아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여기까지 이르면, 이제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인지 아닌지는 너무나 명확해진다. 적어도 “법적 인간”의 정의에 기초한다면, (어떤 존재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생명권, 즉 권리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 동물과 식물이 살아 있지만 생명권의 주체가 아닌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가 자신만의 도덕 체계를 수립해 특정 동물/식물 종의 생명권을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의 법이 그런 생명권을 보호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임을 주장하려면, 먼저 태아가 법적 인간인지부터 확실히 해야 한다. 2019년 판결의 최종 결정 유형인 헌법불합치 의견은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임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태아가 인간이냐는 질문에는 분명히 답하지 않았으며, 때로는 모순적으로 태아가 인간이 아니라는 입장을 암시하기도 했다. 헌법불합치 의견이 야기한 모든 논리적 모순은 “태아가 인간인지 아닌지 제대로 논증하지 않은 채, 태아도 생명권의 주체라는 결론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다 보니 발생한 것이다.”

사실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발상은 법 외부의 도덕적 영역들, 이를테면 전통적 믿음이나 종교적 신념 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태아 생명권은 “태아”의 법적 지위를 강화하려 하기보다는 “인간 여성”의 지위를 떨어뜨림으로써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태아 생명권 개념은 그 자체로 가부장주의와 긴밀히 얽혀 있다. 이런 가부장주의에 맞서는 싸움은 단지 페미니즘만의 것이 아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가 어떻든 “근대 민주주의의 원리를 따르고 태아를 비인간으로 규정한 현행 법질서를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태아의 생명권에 대한 비합리적 태도를 배제하고,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

헌법불합치 의견은 구체적으로 어떤 논리적 모순들을 범했는지 살펴보기 전에, 낙태죄 위헌의 또 다른 결정 유형들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2019년 당시 재판관들 사이에서 헌법불합치 의견 다음으로 많은 득표를 얻은 단순위헌 의견은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생명”과 “생명권”을 구별함으로써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라는 의견을 결과적으로 배제했다.”

임신중단에 관한 표준 논변을 제공하는 미국 텍사스 주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은 “생명”과 “생명권”을 명확히 구별했다는 점에서 좀 더 참고할 만한 판례다. 이 판결은 경우에 따라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필요”(태아 생명 보호를 일종의 공익으로 보는 견지)를 인정했지만, “법이 태어나지 않은 존재를 완전한 의미의 인격으로 인정한 적은 결코 없다”며 근본적으로 태아의 생명권을 부정했다.

그러나 단순위헌 의견 혹은 로 대 웨이드 판결과 달리 헌법불합치 의견은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임을 명시했다. 문제는 이런 판단에 대한 부연 설명에서 시작된다.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라고 주장하면서도, “(태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는 것이다.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곧 태아가 아직 인간이 아니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태아가 명백히 인간이라면 굳이 이런 식으로 표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태아는 인간이 아니지만 생명권의 주체가 된다”는 비합리적인 주장을 펼치는 셈이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어떻게 권리, 그것도 생명권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태아 생명권 개념의 모순은 점점 더 심화해 “결정가능기간”(임신한 여성이 임신중단을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기간)과 관련한 판단에서 명징하게 드러난다. 헌법불합치 의견은 결정가능기간을 22주 전으로 설정하며, 22주부터는 임신중단을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이때가 지나면 태아가 모체와 떨어지더라도 의료 기술의 지원을 받아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언뜻 태아의 생명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균형 있게 고려하는 판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앞서 주장한 태아 생명권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불합치의견의 주장대로 만약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라면, 시점(임신 22주)과 상관없이 임신중단을 허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태아가 우리와 같은 생명권의 주체인데, 그런 존재를 일정 시점 내에서 제거하는 것이 어떻게 허용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경우, 시점과 상관없이 생명권을 박탈하는 것 그 자체가 살인 행위이다. 헌법불합치 의견이 제거하지 않은 이런 논리적 모순들은 국회에서 정치적 논의의 합리적 토대를 마련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방해한다.

지금까지의 논증 과정에 따르면, 결국 현행 법체계 내에서 가능한 합리적인 선택지는 다음의 3개로 좁혀진다.

① 태아를 생명권을 가진 법적 인간으로 인정하고, 모든 임신중단을 예외 없이 금지하는 것.
②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를 여성의 기본적 권리로 인정하고, 태아 생명 보호라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임신중단 허용 기간을 제한하는 것(표준 논변인 로 대 웨이드 판결의 입장이자, 임신중단을 비범죄화한 국가 상당수가 선택한 입장).
③ 태아 생명 보호가 어떤 경우에도 임신중단 기간 제한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입장으로, 태아 생명 보호라는 공동체의 이익이 시간이 갈수록(임신 주수가 지날수록) 중요해진다는 전제를 거부.

“시민들은 자신의 종교, 도덕적 믿음, 경제적 이해관계, 정치적 신념이나 이익, 정체성 같은 다양한 이유에 따라 셋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물론 근대 민주주의의 원리에 충실하고, 태아를 비인간으로 규정하는 현행 법질서를 따른다고 할 때 가장 적합한 선택지는 기간 설정 없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완전하게 보장하는 세 번째 입장(③)이지만, 첫 번째(①)와 두 번째(②) 입장 역시 나름의 합리성을 갖춘 “정치적 입장”임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현실에서 선택될 가능성이 큰 것은 두 번째 입장(②)이다. 임신중단을 비범죄화한 모든 국가가 실제로 이 입장을 따라 일정 기간 내에서만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두 번째 입장이 입법 원리로 채택된다고 할 때, 논쟁은 종말을 맞는 게 아니라 비로소 새롭게 시작된다. 이제 “임신중단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강화하려는 진영”과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를 방어하려는 진영” 사이의 정치적 논쟁이 본격화될 것이다. 물론, 이때 로 대 웨이드 판결로 대표되는 이 표준 논변이 입법 원리로서 명확하고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임신중단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하나의 공익으로서 태아 생명을 보호할 필요성”을 모두 인정하는 표준 논변은 적어도 임신 14주에 해당하는 기간에는 어떠한 사유도 요구함 없이 임신한 여성의 숙고와 자기결정권을 완전하게 보장한다. 바로 이것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한다고 언급하면서도 그 완전한 보장 기간을 명시하지 않은 헌법불합치 의견과 결정적으로 달라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즉 정리해보면, 실질적으로 ②와 ③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가 존재하는 셈이다. 헌법재판소가 이미 낙태죄 위헌을 확정지었기 때문에 ①은 사실상 고려할 필요가 없어졌고, 이제 ②와 같이 일정한 제한 조건(기간) 내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완전하게 보장하는 방안 혹은 ③과 같이 어떤 제한 조건도 없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완전하게 보장하는 방안이 선택지로 남겨져 있다. (그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순 없지만) 만일 ③의 방안이 채택된다면, 한국은 “임신중단”과 관련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문제에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국가가 될 것이다.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결정은 분명 커다란 진보였지만, 그 결정이 내딛는 걸음은 결코 단단하지 못하다. “때로는 이런 진보가 퇴보보다 못하다. (...) 실제로 우리가 예전에는 진보라고 생각했던 걸음들이 지금은 목적지 없는 방황으로 끝나고 있다. 누구든지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을 꼼꼼히 읽어본다면, 비슷한 위험을 감지할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이미 역할을 다했으며, 이제 남은 건 국회가 헌법재판소가 방치한 혼란과 모순을 제거하고,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률과 제도의 기본 원리를 수립하는 일이다.                         - 도서출판 오월의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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