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일본 지배층 씨족 중 26%가 한국계…동북아역사재단 〈신찬성씨록〉
상태바
고대 일본 지배층 씨족 중 26%가 한국계…동북아역사재단 〈신찬성씨록〉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0.11.22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술 뉴스] 동북아역사재단_ 〈신찬성씨록〉 역주본 발간
- 일본고대 씨족의 본관, 사적, 조상의 유래 등 실태를 이해하는 계보서
- 한국계 씨족 150씨 새로 밝혀내
- 한반도계 이주민들의 일본고대사회 정착·동화 과정, 삶과 의식에 대한 이해에 유용

동북아역사재단이 일본고대의 씨족 계보서인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録) 역주본을 출간했다. 3권 2,2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일본고대 씨족들의 본관, 사적, 조상의 유래 등 실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료이다. 이 책은 고대일본의 왕경(平安京)과 기나이(畿內) 5개 지역에 거주하는 1,182씨의 씨족지를 집성한 천황제 율령국가의 칙찬 계보서이다. 8세기 말 헤이안 시대를 연 환무(桓武) 천황의 칙명으로 편찬국을 설치하여 씨족지를 제출받아 815년에 완성되었다.

연구책임자 연민수 박사에 의하면 이 책은 “각 씨족들의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계보를 기록한 점에서는 족보와 유사한 면이 있지만, 조상의 사적을 기록하고 특히 천황가 봉사의 연원, 유래를 기록하고 있어 정치성이 강한 계보서”이다. 『신찬성씨록』 서문에는 씨성과 출자의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편찬하게 되었다는 동기를 밝히고 있지만, “『일본서기』 편찬 이후 100여 년 만에 중앙거주자의 씨족지를 집성한 것은 계보장악을 통한 천황제 국가의 존속과 지배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연 박사는 설명했다.

전체 구성은 천황가의 후손임을 주장하는 씨족들을 황별(皇別)로 배치하고, 일본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후예 씨족들을 신별(神別)로, 외국계인 도래계 씨족의 후손들을 제번(諸蕃)으로 수록하였다. 그리하여 황별(皇別) 335씨, 신별(神別) 404씨, 제번(諸蕃) 326씨 순으로 되어 있고, 기타 확정하기 어려운 씨족들은 「미정잡성(未定雜姓)」 117씨 등으로 분류하여 마지막에 수록하였다. 여기에 실린 씨족들은 중앙에 거주하는 관인층을 중심으로 현실적으로 천황가에 봉사하는 지배층이다. 율령국가의 모든 공민을 대상으로 한 호적이나 계장과는 달리 이 성씨록은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편찬의 목적 등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신찬성씨록』은 개개 조상의 출자와 계보를 기록하고 있다. 그 계보의 중심에는 천황가가 있다. 천황가와 씨족들과의 혈연과 봉사의 인연은 성씨록의 이념으로 계승되어 있다. 『신찬성씨록』의 가장 큰 이념은 천황가의 절대성으로 지배층의 모든 구성원들은 계보적, 봉사의 연원 등에서 천황가와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천황가가 아니면서도 가상의 계보를 천황가와 연결시키는 유력귀족들도 적지 않다. 신별에 나오는 씨족들 중에는 『고사기』, 『일본서기』에 나오는 건국신화를 바탕으로 신화의 세계에서부터 천황가 봉사의 연원을 주장하며 그 인연을 강조한다. 현실의 천황가와 협력, 봉사하는 신료집단이 황조신인 천조대신(天照大神) 시대부터 이러한 관계를 맺어왔다는 사실을 주장하기 위해 신화의 세계에 투영시킨 것이다. 신별씨족 상호간에도 수많은 조상을 공유하는 동조관계를 만들고 있다, 천황가를 중심으로 지배계층은 수직적, 수평적인 의제적 혈열관계로 구성되어 있어 가족주의적 지배국가의 성격을 갖는다. 즉 일본국의 지배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의 씨족단은 단순한 관인층이 아니라 계보적 연결고리를 통해 천황에 봉사하며 국가적 지배질서를 유지해 나가는 동업자였다고 할 수 있다.

「제번」조에는 중국계 163씨, 백제계 104씨, 고구려계 41씨, 신라계 9씨, 임나 9씨 총 326씨를 수록하고 있다. 이들 도래계 씨족 중에서 중국계는 좌경제번의 진시황의 3세손 효무왕에서 나왔다는 태진공숙녜를 필두로 이 씨와 동조(同祖)라고 주장하는 31씨가 수록되어 있다. 아울러 한고조, 후한 광무제, 영제 등 28씨가 황제의 후손으로부터 출자를 구하고 있다. 진한의 황제를 출자로 하는 계보는 『신찬성씨록』 편찬시에 제출된 본계장에서 개변이 이루어졌고, 이 책에서 밝혔듯이 이들 중에는 백제계, 신라계가 적지 않다. 조상 계보의 유구함과 고귀성을 주장하는 것은 당시에 만연된 습속이고 관행처럼 되었다. 도래계 씨족들은 이주의 시점을 더 멀리 설정하고 고귀한 왕조의 후예들이 천황의 덕화에 감화되어 귀화하였고, 오랜 봉사와 충성의 연원을 주장하였다. 출자는 상위 성으로의 개성에 유리한 조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반도계 씨족 중에서 특징적인 것은 필두에 나와 있는 백제 무령왕의 후손인 화조신(和朝臣)이다. 이 씨족은 『신찬성씨록』 편찬을 시작한 환무(桓武) 천황의 외척으로 당시 도래계 씨족의 최고의 위치에 있었다. 우경 제번(하)에 기록된 씨족은 백제 의자왕을 출자로 하는 百濟王氏로부터 시작한다. 의자왕의 아들 선광의 후손들로서 도래씨족 중에서 특별 지위를 부여받은 씨족이다.

이 책에서 새로 발굴한 한국계 씨족은 제번에서 100씨, 미정잡성에서 35씨, 황별에서 12씨, 신별에서 3씨 등 150씨이다. 이중에서 백제계가 98씨로 압도적으로 많고 신라계가 39씨, 고구려계 11씨, 가야계 1씨, 고조선계 1씨이다. 신발굴 씨족과 기왕에 편재된 한국계 163씨를 합하면 모두 313씨로 『신찬성씨록』에 등재된 전체 씨족의 26%에 달한다. 이중에서 본국의 왕을 출자로 하는 씨족은 백제가 근초고왕 등 29씨로 가장 많고, 고구려는 추모왕, 호태왕 등 5씨, 임나는 하실왕(嘉悉王) 등 4씨이다. 이들 대부분은 최초의 이주자로부터 적어도 5세대에서 10세대 이상 지난 후예들이고 완전히 일본고대국가의 공민이 된 한국계 일본인이다. 백제계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양국의 역사적인 인적교류, 우호관계에 기인한다.

본 역주집에서 인용한 자료는 『고사기』, 『일본서기』, 『속일본기』 등 일본고대의 정사, 율령집, 『정창원문서』, 사찰의 자재장 등 각종 고기록, 고문서, 비문, 최신의 목간자료 등 일본고대자료를 거의 망라하였다. 특히 여기에 등재된 씨족들은 이들 사료에도 확인되어 상호 연결고리를 맺으면서 보다 확대된 시야에서의 연구가 가능하다. 이른바 일본고대왕권사, 씨족사에 대한 종합연구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나오는 한국계 인명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한국고대사료에 나오는 인명보다 많다.

연민수 박사는 “『신찬성씨록』은 한반도계 이주민들이 일본고대사회에서 어떻게 정착해 가는지, 2세, 3세들의 삶과 의식은 어떠했는지, 동화의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매우 유익한 사료”로서 “민족의 이동과 정착, 동화의 과정과 이들 후손들의 출자의식은 어떠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으며, 현재의 재일한국인 문제, 중국의 조선족, 중앙아시아에 퍼져있는 고려인 문제, 기타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교민들의 문제를 전망해 보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고, 아울러 도래인들의 활동과 역할을 통해 왜곡된 귀화인사관을 극복하는 데에도 유용하게 활용될 것으로 본다”고 그 의의를 밝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