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은 달라도 내용은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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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은 달라도 내용은 똑같다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0.10.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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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26)_종족 이름+땅=나라 이름

인간 사는 세상 어디를 가나 사는 방식은 다 똑 같다. 사랑의 언어도 드러나는 어휘는 달라도 담고 있는 내용은 이 나라 말이나 저 나라 말이나 매 일반이다. 나라 이름을 짓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영국 북부에는 스코틀랜드(Scotland)가 있다. 스코트는 종족명이고 랜드는 땅이다. 핀란드, 타일랜드, 폴란드, 잉글랜드 등도 마찬가지다.

▲ 네덜란드 질란드의 위치
▲ 네덜란드 질란드의 위치

지형상의 특징을 반영하는 지명도 있다. 네덜란드어로 Nederland, 영어로는 Netherlands라고 표기하는 나라는 육지가 해수면보다 낮은 나라다. 이 저지국가를 비공식적으로는 홀란드(Holland)라고 칭한다. 그렇지만 비록 짧은 기간이기는 하지만 1806~1810년간에는 이 나라의 공식 명칭이 홀란드였다. 나폴레옹이 동생 루이 보나파르트를 홀란드 왕국의 군주로 임명하고 나서의 일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더치(Dutch)는 네덜란드인을 지칭하는 데모님(demonym)이나 형용사형이다. 데모님 혹은 젠틸릭(gentilic)이라는 용어는 특정 지역 사람들을 종교, 인종, 언어, 문화적 차이와 상관없이 부르는 말이다. 예를 들어, 타이(Thai)라는 말이  태국인을 통칭하는 데모님으로 사용될 수 있고, 타이족 사람들을 가리키는 종족명(에쓰노님, ethnonym)이 될 수도 있다.
 
남태평양 상의 섬나라 뉴질랜드(New Zealand)처럼 ‘새롭다’는 new가 붙은 나라나 도시는 기존의 지명이나 사람 이름을 빌린 것이다. 남반부의 섬나라 뉴질랜드를 원주민인 마오리족의 말로는 ‘길고 흰 구름의 땅’이라는 뜻의 아오테아로아(Aotearoa)라고 한다. 이 멋진 섬나라를 처음 발견한 네덜란드 탐험가 아벨 타스만은 섬 이름을 슈타텐 란트(Staten Land)라고 지었다. 그러나 후일 네덜란드 지도 제작자들이 이 섬의 이름을 네덜란드 서단에 위치한 질란트(Zeeland)주에서 따와 라틴어로 노바 질란디아(Nova Zeelandia)라고 명명했다. 이 지명의 영어 표기가 New Zealand다. 미국 미시건 주에는 질란드(Zeeland)라는 도시가 있다.
 
이럴 정도니 제국주의가 득세하던 시절 유럽 열강들이 경쟁적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 심지어는 태평양 상의 작은 섬나라들까지 식민지화 하고 남의 땅을 자신의 것이라 우기면서 거만하고도 방자한 행동을 한 것이다. 그리고는 수탈과 오욕으로 얼룩진 집단적 욕망의 시기를 지리상의 대발견이니 대항해 시대니 하는 따위의 말로 자화자찬한 것이다.

▲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 중앙구(Centrum borough)에 있는 운하
▲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 중앙구(Centrum borough)에 있는 운하

미국을 놓고 영국과 프랑스가 싸웠다. 그런 와중에 유럽으로부터 수많은 이민자들이 신대륙으로 이주해 들어왔다. 영국 출신 이주민들은 자신들끼리 모여 정착촌을 만들어 “새로운 영국”이라는 뜻으로 도시 이름을 New England라고 붙였다. 네덜란드로부터 대서양을 건너 꿈의 땅 아메리카에 들어온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운 도시를 뉴 네덜란드/뉴 암스테르담이라고 명명했다. 백인들이 낯선 땅에 들어와 정착하기 오래 전부터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이른바 1세대(the First Nations)라고 불리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이다. 식민지가 되기 전 오늘날의 뉴욕시와 뉴잉글랜드 지역은 알공키언 인디언들(the Algonquins)의 주거지였다.
 
실제 주인은 따로 있는데, 뒤늦게 그 땅에 들어온 영국인들이 욕심을 내고 네덜란드인들과 싸워 새로운 주인이 되면서 도시의 이름은 뉴욕으로 바뀐다. 이 명칭은 영국왕 제임스 2세의 작위명 “요크 공(the Duke of York)”을 기념하여 붙여진 것이다.

▲ 뉴올리언스 도시 풍경
▲ 뉴올리언스 도시 풍경

마찬가지로 독특한 음악과 서인도 제도의 요리, 특이한 사투리, 연중 끊임없이 열리는 축제 등으로 이름 난 미국 루이지애나주의 도시 뉴올리언스는 루이 15세의 섭정이었던 오를레앙 공작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러니까 루이지애나 주 남동 지역 미시시피 강을 따라 위치한 통합도시교구 뉴올리언스는 프랑스 오를레앙 공을 흠모하여 그 이름을 도시명으로 삼은 것이다.
 
중국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외국명을 표기한다. 우선 국가명인 잉글랜드를 통째로 음차한 용어로는 영격란(英格蘭)이 있다. 한편 또 다른 국가명 英國은 잉(Eng-)의 음차어와 land의 의역(國)이 합성된 어휘다. 영국 즉 England는 좁은 의미로 대영제국(the Great Britain)에서 스코틀랜드(Scotland)와 웨일즈(Wales)를 제외한 부분을 가리킨다. 넓은 뜻으로는 대영제국(Great Britain)만을 의미한다. 스코틀랜드와 웨일즈는 각각 소격란(蘇格蘭)과 (威尔士)로 차자한다. 
 
독일(獨逸)은 도이칠란드(Deutschland)의 앞부분인 Deu-의 음역(音譯)이고, 불란서(佛蘭西)는 France의 음역이다. 우리는 미국의 한자어로 美國을 사용하지만, 중국인은 ‘미궈(miguo)’라 말하고 米國이라 쓴다. America 전체의 음차가 아니라 Ame-만을 米로 받아들인 셈이다. 독일은 德國이라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고대 중국의 한자로 차자(借字)한 외국명 중 외자로 표기된 국가들의 본 이름에 더욱 흥미가 생긴다. 기원전 2세기 흉노에 밀려 서천을 감행한 월지족이 오늘날의 중앙아시아 일대에 세웠다는 소무구성(昭武九姓) 아홉 나라의 명칭이 외자다. 강국, 안국, 석국, 하국, 조국, 미국, 사국 등이 그들이다. 많은 것이 베일에 싸여있는 고대사 연구에 있어 명칭에 대한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앞서 소왕국이 산재해있던 인도아대륙(인도)에서는 나라 이름에 –pur; -pura가 붙었다고 말했다. -pur(a)는 범어(Sanskrit)로 “성; 성곽도시”를 가리키는 말이다. 물론 시대의 변천과 다양한 종족의 혼거로 인해 도시나 국가 명칭의 어미에 다른 말이 붙었다. 하이데라바드처럼 –abad가 붙으면 이슬람 도시다. 그래서 파키스탄의 수도 이름이 이슬라마바드가 되었다.

▲ 인도 하이데라바드 차르미나르 부근 라드 바자르(시장) 내 신부용품 상점
▲ 인도 하이데라바드 차르미나르 부근 라드 바자르(시장) 내 신부용품 상점

현재 인도 중부 텔랑가나 주와 안드라 프라데시 주의 공동 州都 이름은 하이데라바드다. Hyderabad는 ‘사자’라는 뜻의 haydar와 ‘도시’를 가리키는 말 –abad의 합성어다. 사자처럼 용맹하다고 해서 Haydar라 불렸던 이슬람 군주 칼리프 알리 이븐 아비 탈립의 별명에서 도시의 이름이 하이데라바드가 탄생했다. 본래는 ‘정원의 도시’라는 의미로 바그나가르(Baghnagar)라 불렸었다. 고대 범어 nagara에서 파생된 nagar도 ‘도시’를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인도 북서부 잠무-카시미르 주의 주도인 스리나가르(Srinagar)의 말뜻은 surya-nagar 즉 “태양의 도시(the city of the sun)”이다.
 
참고로 고대 인도말 범어는 언어 계통상 인도유럽어 >  인도이란어 > 인도아리안어에 속하며 브라만 계급이 사용하는 의식용의 聖典語(holy language)를 가리킨다. 일반 대중어는 프라크리트(Prakrit, common language)라고 한다. 두 용어에 공히 쓰인 ‘글(letter)’이라는 뜻의 ‘–krit’와 우리말 ‘글’이 오버랩되는 건 왜일까? 산스크리트는 산수가림다(刪修加臨多)로 음역되기도 한다. 줄여서 가림토(加臨土) 또는 가림다(加臨多)로 기록한 옛 서책도 있다. ‘가림토’가 ‘krit’의 음역어일 가능성이 크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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