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와 마키아벨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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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와 마키아벨리즘
  • 대학지성 In & Out 기자
  • 승인 2020.10.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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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문화정전 19강>_ 김경희 이화여대 교수의 「마키아벨리와 마키아벨리즘」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일곱 번째 시리즈 ‘문화정전’ 강연이 매주 토요일 한남동 블루스퀘어 카오스홀에서 진행되고 있다. 인류 문명의 문화 양식은 오랜 역사를 통해서 문화 전통, 사회적 관습으로 진화하며 인류 지성사의 저서인 '고전'을 남겼다. 이들 고전적 저술 가운데, 인간적 수련에 핵심적이라 받아들여지는 저술을 문화 정전(正典)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 52회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인류가 쌓아온 지적 자산인 동서양의 ‘문화 정전(正典)’을 통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마주한 삶의 문제를 깊숙이 들여다본다. 19강 김경희 교수(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편집국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김경희 교수는 “종교전쟁 시기 권력 투쟁의 과정에서 사용된 권모술수와 비도덕적 행위를 비난하면서부터 시작”되어 근대 국가 형성기에 ‘국가이성론’ 입장에서 “국가의 유지와 보존을 위하고 공공선을 위하여 불가피한 수단으로 인정”되었다가 현대 민주주의 시기에 이르러 “정치 영역에서 다수와 공동체를 위한 더러운 손의 인정과 그것을 제어하기 위한 시도들”에 관한 논의를 경과해온 ‘마키아벨리즘’에 대해 논한다. 그것을 위하여 “마키아벨리즘을 낳은 마키아벨리의 저서들을 살펴봄으로써 그의 사후 해석자들의 마키아벨리즘이 아닌 마키아벨리의 마키아벨리즘”을 그려 보이고, 보다 구체적으로는 “마키아벨리가 제기한 마키아벨리즘의 핵심 문제로서 정치, 정치 행위자 그리고 도덕과 종교 등의 문제”를 검토한다.

▲ 지난 9월 12일, 김경희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문화정전의 19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 지난 9월 12일, 김경희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문화정전>의 19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들어가며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 말기 피렌체의 공무원이자 정치가였으며, 고대사에 대한 공부와 자신의 경험을 결합해 저술 활동을 하였다. 그는 1469년에서 1527년까지의 58세의 생애 중 단지 14년(1498~1512)의 짧은 기간 동안 외교와 군사 업무를 담당했을 뿐이었다. 그 이외의 기간은 제대로 된 직업도 없이 근근이 본인의 삶을 지탱해나간 인물이었다. 더구나 그는 생애의 마지막에 재건된 공화국의 제2서기관에 입후보했지만 고배를 마시고 얼마 안 있다 불우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현실의 곤궁을 극복하고 『군주론』, 『로마사 논고』, 『피렌체사』 등의 저술을 남겼다.

특히 그의 『군주론(Il Principe)』은 흔히 마키아벨리즘을 설파한 저서로 이해되어 왔다. 마키아벨리즘은 성공을 위해서는 권모술수도 불사하는 등 비도덕적 행위의 정당화를 꾀하는 주장이라는 뜻이다. 마키아벨리즘의 역사는 『군주론』의 유행과 그 맥을 같이한다. 그리고 그것은 16세기 유럽을 휩쓸었던 종교개혁 속에서 구교와 신교의 갈등이라는 정치적 혼란기를 통해 강화된다.

우선 마키아벨리에게 ‘악의 화신’이나 ‘폭군의 조언자’라는 이름을 붙이게 만든 것은 종교전쟁 시기 종교 갈등 속에서 드러난 정치적 사건들을 통해서였다. 마키아벨리가 죽고 나서 5년 만인 1532년에 출판된 『군주론』은 반종교개혁의 파고 속에서 1559년 로마 교황청에 의해 금서로 지정된다. 종교와 도덕을 부정하고 악을 전파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렇게 선보다는 악을 옹호하는 저서로 낙인찍힌 『군주론』의 악명을 가중시킨 것은 종교 갈등 속에서 일어난 정치권력의 비종교적ㆍ비도덕적 행동을 마키아벨리의 가르침에 의한 것이라고 비난함을 통해서였다. 이 시기 이래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도덕을 무시하여도 좋다는 폭군을 위한 악마적 가르침의 대표적 저서로서 『군주론』의 이미지는 현대까지도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위의 논의는 현실의 권력 투쟁 과정에서 나타난 권모술수의 사용을 마키아벨리의 가르침인 마키아벨리즘으로 비난한 것들이다. 이에 반해 마키아벨리즘을 근대 국가 형성 과정에서 나타난 권력 투쟁의 일부로 파악한 논의가 바로 국가이성론(Staatsräson)이다. 이는 독일의 역사학자인 마이네케(Meinecke)에 의해 집대성되었다. 마이네케는 『근대의 국가이성의 이념』에서 마키아벨리를 국가이성의 시초자로 인정한다. “국가이성이란 국가 행동의 기본 원칙, 국가의 운동 원리이다. 그것은 건전하고 강력한 국가를 유지하는 데 있어 정치가가 해야 할 일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이성의 목표는 “국가 및 국가 속에 포함된 국민 공동체의 복지”이며, “권력ㆍ권력 주장ㆍ권력 확대는 그것을 위해 절대로 요구되어야 할 불가결의 수단이다.” 국가이성은 이러한 목표들을 위해 그 “정치 행동에서 고도의 합리성과 합목적성을 요구”한다. 이러한 국가이성론에 비추어볼 때 『군주론』은 마키아벨리에게 국가이성의 정초자라는 이름을 부여하기에 충분하다고 마이네케는 보고 있다.

우선 마키아벨리는 “합리적ㆍ경험적 및 계산하는 요소”라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가 최고의 완성을 본 인물이기에 “국가의 형태ㆍ기능 및 생활 조건을 규명하고 계산”하는 데 그의 열정을 쏟았다고 마이네케는 말한다. 이러한 국가이성의 명령에 충실했던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하나의 일관된 대주제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운명’에 대한 ‘역량’의 투쟁”이라는 것이다. 외세의 침략과 그것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구비하고 있지 못했던 피렌체와 이탈리아는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은 위기 상황에 놓여 있었다. 운명의 힘에 굴복해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시기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국가이성의 담지자로서 군주가 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운명’의 제어였고, 그것을 위해 그의 ‘역량’이 강조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마이네케가 보기에 『군주론』은 마키아벨리의 가장 내면적인 사상이 표현된 저서로 그것은 바로 “몰락에 처한 한 민족을 전제 군주의 ‘역량’과 ‘필요’에 의해 강요된 모든 수단의 지레의 힘에 의해 국가의 새로운 덕과 힘을 향해 재생시키는 것”이었다. 결국 국가이성은 국가의 필요에 따라 도덕과 종교를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고, 공공복리라는 국가이성의 새로운 윤리 앞에 예전의 종교적ㆍ도덕적 윤리가 그 빛을 잃었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즘의 문제는 정치와 그 속에서 행동하는 인간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볼 수 있다. 종교개혁 이후 종교전쟁 시기에 마키아벨리즘은 반대파와의 권력 다툼에서 권모술수를 쓰는 이들의 행태를 비판하기 위한 논리로 작용한다. 반종교적이고, 반도덕적인 술수를 사용하는 악마와도 같은 존재를 지적하는 데 마키아벨리즘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국가이성론은 근대 국가 형성기에 국가 존망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윤리와 도덕 그리고 종교적 굴레를 넘어서는 행위도 인정하였다. 국가의 생존이라는 공공복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마키아벨리즘으로 표현하였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현대에도 역시 정치에서 비윤리적 행위의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고, ‘더러운 손’이라는 문제로 제기되었다. 공적인 과업의 달성을 위해 필요불가결한 더러운 손의 문제는 그것을 인정하더라도 칭송되지는 말아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이렇듯 마키아벨리즘은 시대를 넘어 현재까지 이어지는 정치와 정치 행위(자)의 문제를 제기한다. 마키아벨리즘을 증폭시킨 것이 현실 정치의 문제였다면, 그러한 문제를 제기한 것은 마키아벨리였다고 볼 수 있다. 마키아벨리가 그 이전과는 다른 정치관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하에서는 마키아벨리가 제기한 마키아벨리즘의 핵심 문제로서 정치, 정치 행위자 그리고 도덕과 종교 등의 문제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2. 마키아벨리의 마키아벨리즘

1) 정치와 도덕

마키아벨리는 현실주의 정치관을 표현한 『군주론』 15장에서 상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는 엄연히 다름을 강조한다. 사물의 실제적 진실에 초점을 맞추고 싶어 하는 마키아벨리는 ‘그래야만 한다’는 도덕적 관점이 인간 세계에는 무용지물이 됨을 설파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현실은 도덕적이고 착한 이들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마키아벨리는 “상황의 필요에 따라서 선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군주에게 충고한다.

인간 세계는 선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악한 사람들로도 가득 차 있다는 현실적인 인식은 17장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인간 일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적인 데다 기만에 능하며 위험을 피하려고 하고 이익에 눈이 어둡습니다”라고 적고 있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인식은 인간을 짐승으로도 바라보는 18장에서도 잘 나타난다. 신의보다는 기만책을 썼던 이들이 승리를 거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하면서 마키아벨리는 싸움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법이고, 다른 하나는 힘이다. 법은 인간에 합당하고, 힘은 짐승에 합당하다. 그런데 전자는 불충분하기에 후자에 의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군주는 인간의 방법뿐만 아니라 짐승의 방법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 세계가 인간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짐승으로도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며, 인간이 신의 모습으로 창조된 피조물일 뿐만 아니라, 짐승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결국 선한 인간과 악한 인간, 인간다운 인간과 짐승다운 인간이 공존하는 영역이 인간 세계며,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도덕과 윤리는 언제나 져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곳이 바로 정치 세계다. 이러한 인간관과 정치관 속에서 기존의 도덕주의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이에 따라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16장에서 18장까지 이어지는 장들에서 선의의 덕이 덕스러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도덕주의를 비판하고, 도덕이나 덕 있는 행위가 악덕의 결과를 가져오고, 악덕이 선덕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설파한다. 선한 인간과 악한 인간들의 복잡한 관계의 영역인 정치에서 의도와 결과가 불일치하는 세상을 바라본 것이다. 16장의 주제인 관후함과 인색함, 17장의 주제인 잔인함과 인자함 그리고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과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 그리고 18장의 주제인 약속을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가 등의 문제는 바로 덕의 실천이 덕스러운 결과를 가져오지 않음을 지적한다.

결과의 선함은 결국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공리주의와 연결된다. 그는 인자해서 무질서를 방치할 경우 “공동체 전체에 해를 끼치는 데 반해”, 잔인한 방법을 쓸 경우 “단지 특정한 개인들만을 해치는 데 불과할 뿐”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마키아벨리의 잔인함 혹은 폭력 사용의 인정과 정치적 공리주의의 두 가지 문제가 나타난다. 폭력의 사용은 결과의 선함을 가져오기 위한 방법의 문제이다. 따라서 폭력의 무조건적인 인정과는 거리가 멀다. 다시 말해 폭력 행위의 효율적 사용을 말했다. 잔인한 조치는 적기에 단번에 사용되어야 잘 이루어진 것이다. 반면 지속적으로 천천히 행해지는 가해 행위는 잘못된 것으로 파악한다. 이는 결과의 선함을 위해 폭력 행위의 유용성을 인정하는 한편, 그 지속성에는 반대하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공리주의는 결과의 선함을 판단하는 핵심적 요소로서 공(公)과 사(私)의 구분 속에 공을 강조하고, 공동선의 추구를 그 핵심 가치로 두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공사의 구분 속에 정치를 공의 영역으로 한정하고, 정치인의 사적 이익 추구를 비판한다. 또한 폭력의 사용이 정당화될 수 있는 핵심적 요인은 바로 공동선이다.

공동선에 대한 강조는 국가 공동체의 유지 및 보존과 연결된다. 국가와 국가의 유지와 보존을 위한 행위로서 정치의 우선성은 종교보다 국가를 우위에 두는 마키아벨리의 종교관에서도 잘 드러난다. 더 이상 종교는 세속의 영역인 국가와 분리된 독립적 가치나 국가 위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가치를 지니지 않게 된다. 마키아벨리에게 종교는 국가의 유지와 보존을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였다. 종교는 시민이나 군인들이 국가에 충성하는 규율을 확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종교는 그 자체의 의미보다 정치적 효용의 관점에서 파악되었다.

중세가 종교에 대한 정치의 종속성을 주장했다면, 마키아벨리는 정치의 독자성 및 종교의 정치적 유용성을 강조했다. 국가 공동체와 공동선의 우선성 속에서 도덕과 종교가 사고되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국가의 존립 앞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즘적 주장이 가능했다. 조국의 방어와 유지를 그 무엇보다 우위에 두었던 마키아벨리의 모습은 “내 영혼보다 조국을 더 사랑한다(amo la patria mia più dell’anima)”라고 말했던 부분에서도 잘 나타난다.

마키아벨리에게 정치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상으로 종교와 도덕의 선한 의도가 온전히 관철되는 세상이 아니었다. 정치 세계의 구성원인 인간들은 악인과 선인 등 서로 다른 다양한 인간들이 존재하고 무엇보다 그들의 이익을 먼저 추구하는 존재들이었다. 여기서 선한 덕과 도덕적 행위를 고집하다가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마키아벨리의 마키아벨리즘은 선한 도덕적 행위가 악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파악하고, 그것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 마키아벨리즘과 역량

마키아벨리즘의 핵심 논지가 성공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라면, 이는 정치 행위자의 상황 돌파 능력과 연관된다. 마키아벨리는 이것을 『군주론』에서 역량(virtù)의 개념으로 표현한다. 『군주론』의 대강을 설명하는 1장 마지막 부분에서 영토 획득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타인의 무력 즉 운(fortuna)과 자신의 무력 즉 역량에 의한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 이후 『군주론』 전체의 논점은 변화무쌍한 세계에서 타인의 호의인 행운에 의지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힘에 의해 난관을 극복하고 국가의 유지와 보존을 꾀하는 방법에 대해 설파하고 있다. 그런데 virtù는 원래 라틴어 virtus에서 온 말이다. virtus는 남성 vir에서 나온 말이다. 고대 사회의 남성은 시민이자 군인으로서 외적에 맞서 전쟁에서는 무용 등의 역량을, 사회에서는 올바른 시민으로서 가져야 하는 도덕과 덕을 지니고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세계가 끊임없이 변화함을 강조했다. 마키아벨리는 변화하는 세계에 자신을 맡기는 요행을 바라기보다는 지혜와 역량으로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마키아벨리가 바라본 성공의 요인은 상황과 역량과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상황이 무르익어도 역량이 되지 않으면 실패하고, 역량이 있어도 상황이 되지 않으면 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영토 확장의 욕구가 무척 자연스러운 것임에도 성취할 역량이 없는 이들이 시도할 때 그것은 성공할 수 없고, 곧 비난받아 마땅한 실책이 된다고 말한다. 이를 그는 6장에서 기회(occasione)와 역량 간의 관계로 풀어낸다.

그런데 기회가 와도 역량이 자신의 뜻대로 쉽게 질료를 빚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어려움을 마키아벨리는 국가를 세우면서 수행해야만 하는 새로운 제도와 통치 양식의 도입에 대해 설명하면서 말하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렵고 성공하기 어려운 일은 없다. 왜냐하면 “구질서로부터 이익을 누리던 모든 사람들이 개혁자에게 적대적이 되는 반면, 새로운 질서로부터 이익을 누리게 될 사람들은 기껏해야 미온적인 지지자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해관계의 대립과 계산이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일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이 난국을 타개해야 하는 것이 바로 신군주의 역량이다.

특히, 속임수와 잔인한 방법의 사용에 대한 인정은 건국기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신군주의 능력을 설명할 때 나타난다. 마키아벨리는 구세력을 극복하고 새로운 제도와 나라를 세우는 시기를 건국기로, 그 이후 나라에 평화가 찾아오고 질서가 세워진 안정된 시기와 구분한다. 이는 『군주론』 19장의 로마 황제들에 대한 언급에서 잘 나타난다. 황제 세베루스(Severus)는 소위 여우와 사자의 기질을 잘 사용한 황제로 언급된다. 그는 두 명의 강력한 경쟁자와 황제의 지위를 두고 경쟁했다. 세베루스는 불리할 때는 속임수 같은 여우의 방법을, 유리할 때는 사자의 단호함을 통해 황제가 되었다. 19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마키아벨리는 건국기와 치국기를 구분한다. 다시 말해 “국가를 세우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할 때에는 세베루스의 방법을 모방”해야 하지만, “이미 오랫동안 확립된 국가를 보존하기 위해서 적합하고 영광스러운 조치를 취해야 할 때에는” 철인 황제로 유명하며 절제와 정의를 사랑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모방해야 한다고 언급한다.

한편 마키아벨리는 소위 마키아벨리즘적 행위 그 자체에 성공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이 잠재해 있음을 파악했다. 예컨대 잘 사용해야 하는 폭력과 속임수의 문제는 마키아벨리즘이 지닌 과도화로의 경향과 더불어 그것이 성공을 방해하기에 제어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마키아벨리즘의 과도화 경향을 제어하기 위한 방안들을 제시한다.

우선, 폭력 사용의 효율성의 문제이다. 이는 가해 행위는 단번에, 반면 시혜 행위는 천천히 수행함으로써 폭력 사용이 단번에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그 이후에는 이득을 제공해서 민심을 수습해야 함을 지적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미움과 경멸을 피해야 함을 강조한다. 비도덕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 난관을 극복하고 성공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는 것이 아니라, 조심히 피할 것은 피하고, 폭력 사용의 효율성에 맞게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공공선에의 복무이다. 사익의 추구를 위해 행해지는 폭력은 폭군정을 세우고, 지속적인 폭력의 행사 속에 경멸과 미움을 불러일으킨다. 반면 공공선의 추구를 위해 행해지는 폭력은 필요에 따른 한시적인 수단일 뿐이다. 이후 공공선을 위한 안정적인 제도의 수립을 가져온다.

마키아벨리는 겸손함으로 거만함을 극복할 수 없고, 악의가 시간이 흐른다고 누르러지지 않는 정치 세계의 문제를 잘 알고 있었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특히 건국기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시적인 속임수와 폭력의 사용은 용서될 수 있었다. 하지만 비도덕적인 행위의 사용은 그 안에 극단화의 경향을 담지하고 있다. 사적 이익의 추구와 탐욕에 의해 인도될 때, 비도덕적 수단은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극단화될 수 있다. 이러한 마키아벨리즘적 요소를 잘 알았던 마키아벨리는 그 효과적이고 절제된 사용과 공동선이란 대의에 인도되어야 함을 강조했던 것이다.

3. 나가며

마키아벨리즘의 역사는 종교전쟁 시기 권력 투쟁의 과정에서 사용된 권모술수와 비도덕적 행위를 비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비록 마키아벨리즘이 비도덕성과 악마성에 대한 비난에서 시작하였지만, 근대 국가 형성기의 국가이성론 입장에서는 국가의 유지와 보존을 위하고 공공선을 위하여 불가피한 수단으로 인정되었다. 현대 민주주의 시기에서는 마키아벨리즘을 통해 정치 영역에서 다수와 공동체를 위한 더러운 손의 인정과 그것을 제어하기 위한 시도들이 있어왔다. 이 글에서는 마키아벨리즘을 낳은 마키아벨리의 저서들을 살펴봄으로써 그의 사후 해석자들의 마키아벨리즘이 아닌 마키아벨리의 마키아벨리즘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먼저 마키아벨리는 정치 세계의 복잡성, 다시 말해 악인과 선인이 공존하고, 서로의 이익을 추구하는 순수하지 않은 세계로 바라본다. 상황의 필요에 따라 선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말은 선해야 할 때와 선하지 않아야 할 때를 구분하고, 몰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상황에 적합한 방식으로 행동해야 함을 지시한 것이다. 이런 세계에서 더 이상 도덕주의는 통할 수 없었다. 도덕적 의도가 도덕적 결과를 가져올 수가 없었다. 선한 의도와 덕의 실천이 악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선한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악덕의 실천이 필요한 경우가 있음을 인정했다. 내전이 일어난 도시에 잔인한 조치가 행해졌을 때, 희생자의 숫자를 줄여 인자한 결과를 가져왔다. 반대로 인자한 조치는 많은 수의 피해자를 발생시켜 잔인한 결과를 가져왔다.

기존 도덕률의 전복을 통해 마키아벨리는 잘 사용된 폭력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건국기 많은 이해관계의 대립이 존재하는 곳에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야 할 때이다. 이는 또한 공공선의 추구와 실현이라는 목적과 결과에 의해 용인된다. 그럼에도 마키아벨리의 마키아벨리즘은 무제한적인 폭력의 사용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뚜렷한 제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폭력의 효율적 사용이다. 폭력은 지속적으로 사용하면 안 된다. 폭력은 한시적으로 단번에 사용하고, 그 이후 시혜 작용을 통해 민심을 획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폭력이 수단이라면 결과에 맞는 합당한 사용이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단번에 효율적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미움을 받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탐욕으로 인민의 재산과 명예 등을 강탈할 때 폭력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증폭시킨다. 세 번째는 상황에 맞는 사용이다. 이는 마키아벨리가 건국과 치국의 시기를 나누면서 각각의 시기에 합당한 방법을 논한 것에서 알 수 있다. 건국의 시기에는 권력의 집중이 필요하고, 폭력 및 속임수 등 비도덕적 방법의 사용이 용서될 수 있다. 하지만 치국의 시기에는 법 제도나 정의 등에 의존한 통치 방식이 필요하다. 결국 마키아벨리는 정치 세계의 다양성을 파악하였고, 그 속에서 문제 해결의 방법을 숙고했다. 이는 상황과는 무관한 도덕주의나 덕치주의를 탈피하게 만들었다. 정치 세계에서 속임수나 폭력의 사용이 문제 해결의 유용한 방법임을 인정한 측면에서 마키아벨리는 후대가 명명한 마키아벨리즘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마키아벨리즘의 창시자는 아니다. 오히려 상황에 맞는 행위를 강조한 측면에서 마키아벨리즘이 필요 없을 때를 인정하였다. 이는 마키아벨리가 반마키아벨리주의자임을 보여주고 있다. 상황에 맞는 유연한 행동을 강조한 측면에서 마키아벨리는 마키아벨리즘 너머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에 내재하는 마키아벨리즘의 심연을 꿰뚫어 보았지만, 마키아벨리스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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