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스스로 ‘자율성’ 쟁취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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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스스로 ‘자율성’ 쟁취해야 할 때
  •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교수, 과실연 명예대표
  • 승인 2020.10.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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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찬 칼럼]

10월 5일부터 ‘노벨상 주간’이 시작되는데, 한국인 수상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논문 피인용 빈도가 상위 0.01%에 속하는 연구자들을 노벨상 수상 후보로 선정하는 학술정보업체 클래리베이트의 올해 후보 24명 리스트에 국내 과학자가 포함되어 있다. 지금까지 후보로 지목한 연구자 중 16%가 실제로 노벨상을 받았다. 2014년부터 국내 학자 4명이 이 리스트에 올랐는데, 이제는 우리 대학의 연구 역량이 세계 최고 수준에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 대학 주변에는 또 다른 모습이 있다. 몇몇 교수들의 유흥주점에서의 법인카드 사용, 수강관련 규정을 따르지 않은 교수의 자녀 학점 부여, 자녀의 부정입학, 미성년자 논문 공저자 등재 등 종종 우리 언론에 대학들이 왜소하게 비쳐진다. 또한 연구 부정, 연구비 횡령, 유령 학술대회 참가 등의 이야기도 종종 언론에 등장하기도 한다. 이는 바로 대학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개입으로 이어진다.

왜 이런 종류의 일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요즈음 ‘염치’,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는 ‘뻔뻔함’이 일부에게는 일상화 되어 가는데, 우리 대학 사회도 이렇게 변해가는 것일까.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건강을 지탱해왔던 ‘윤리’, ‘도덕’이라는 전통적인 가치가 종종 지도층 인사들에 의해 무시되어지는 모습이 다음 세대에 어떤 영향을 줄지, 걱정되기도 한다.

이같이 물의를 일으킨 당사자에게 당연히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대학과 사회에는 전혀 책임이 없는 것일까? 점수, 순위, 학점, 양적 성과 등 숫자 중심의 획일적 평가 사회, 단기적 연구 성과 중심의 업적 평가, 연구비 관리 시스템 등은 어떠한가. 또한 ‘정직함’에 대한 우리 대학과 사회의 의식 수준은 어떠한가.

일부 선진국에서는 범죄로 취급한다는 ‘숙제 베끼는 일’, ‘시험 부정행위’에 대해 우리 사회는 상대적으로 그리 엄격하지 않은 것 같다. 이런 행위들을 나이 들어서는 학창시절의 에피소드, 추억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사실 ‘정직하지 않은 것‘인데, ‘그 정도는...’ 하고 대개 넘어가곤 한다.

이렇게 복합적인 요소들로 엉켜있는 대학 관련 문제들을 누가 풀어갈 것인가? 다른 누가 풀어줄 수 있을까? 결국 대학 문제는 대학 스스로 해결해나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대학과 재단의 구성원 모두가 투명성, 합목적성 등을 포함한 ‘정직함’에 대한 높은 윤리의식을 공유하는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 ‘부정직한’ 행위 문제는 당사자만의 것이 아닌, 대학과 학문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수치심’으로 인식해야 한다. 특히 부정직한 행위를 하는 사람에게는 정부⋅정치권⋅언론에 앞서, 대학과 학문 공동체가 나서서 강하게 책임을 묻는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대학은 ‘성과’, ‘평판’에 대한 인식도 대전환해야 한다. 지금처럼 정부의 재정지원 관련 평가, 국내외 대학평가 기관의 순위 등에 매달리면, 모두가 계속 단기적 양적 성과를 추구하는 획일화된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문제는 대학 스스로에게서 이러한 악 순환의 생태계를 평가, 비판하는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는 급변하는 4차산업혁명, 팬데믹 비대면 시대에 각 대학별로 다양한 방향과 색깔을 가지고, 학생, 교수들이 특성에 따라 맞춤형으로 마음껏 역량을 펼쳐나가야 개인은 물론 대학의 생산성,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대학평가 순위도, 목표로 삼기보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서 얻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대학이 이러한 생태계를 만들려면 ‘재정’, ‘자율성’ 이슈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이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쟁취해야 하는 대상인데, 주변의 신뢰와 기대를 확보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들이 먼저 “자율성”을 통해, 정부와는 어떻게 협업을 하며, 무엇으로, 어떻게 사회적 책임을 다할지에 대한 명확한 그림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고등교육재정교부금’의 입법화 등을 통한 재정 확보와 이를 통한 사회적 역할에 대해 국민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해나가며, 신뢰와 기대를 받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10월에도 국회의 국정감사가 이어진다. 이 자리에서도 대학은 지적과 비판에 대한 대응에 급급하기 보다는, 대학의 사회적 역할을 위한 ‘자율성’, ‘재정’ 이슈를 적극적으로 이해시키고 설득, 공감시키는 자리로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매년 10월 연구비는 많이 주는데, 왜 우리는 노벨상이 없느냐는 질타를 듣고 있기 보다는, 노벨상은 30년 이상 한 분야에서 연구를 이어가며 인류에 기여해야만 받을 수 있으며, 과학자들이 장기간 자유롭고 재미있게 연구할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 가능함을 이해시켜야 한다.

이제 대학은 ‘자율성’을 위해 정부나 정치권이 대학에 개입할 명분을 주면 안 된다. 이는 대학 스스로 갑-을 관계를 자초하는 일이다. 디지털 전환과 더불어 코로나19 사태로 갑자기 부상한 비대면 세계는 대학의 존재 양식, 존재 가치를 크게,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이렇게 급변하는 새로운 글로벌 생태계에서 각 대학이 ‘나름대로’ 생존하며, 한국 대학의 교육과 연구의 영향력을 세계 일류 수준으로 과감하게 펼쳐나가려면, ‘자율성’은 필수 조건이다. 좋은 일자리, 삶의 질, 기후 변화, 자연 환경 등 지구촌 인류가 직면하는 문제 해결에 대학이 적극 나서는 일이다. 대학이 제대로 서야 대한민국과 인류의 미래도 바로 설 수 있다.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교수, 과실연 명예대표

연세대 수학과 명예교수로 대한수학회 회장, 교육과학기술부 정책자문위원장,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 과학기술분과 의장, 국무총리 소속 인사혁신추진위원회 민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국가인재경영연구원 이사장, 기초과학연구원(IBS) 과학자문위원회(SAB) 위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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