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선원(禪院)의 한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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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선원(禪院)의 한 깨달음
  • 이계존 수원여대·사회복지학
  • 승인 2020.10.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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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사색]

주말 저녁 한 선배의 혼사가 있었다. 혼사 후 지인들과 피로연 한잔이, 필자 같은 한량을 위한 활수한 배려로 이해되었다. 집(용인)에서 서둘러 좌석버스를 타고 상경했다. 한참 고속도로를 가는 중, 한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혼사가 거의 끝나 가는데 왜 아직까지 안 오느냐고. ‘아차’하는 심정에 청첩장을 확인해 봤다. 예식 시간은 내가 알고 있던 7시가 아니었다. 17시였다. 필자의 경솔함으로 반드시 가야할 혼사를 이리 결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 그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으련만 내친 김에 광화문에서 내렸다. 세종문화회관 앞, 촛불 그리고 태극기가 서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그 소리가 서로 엉켜 무슨 얘기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를 지켜야 한다는 얘기인지, 당장 끌어내려야 한다는 얘기인지, 그저 소란하기만 했다.

맞닿은 그 전선에는 살(殺)풍경만이 그득했다. 소통할 수 없는 각자의 아우성만이 쏟아져 자칫 심각한 싸움으로 번질 지경이었다. 서로 다른 자기의 지평만이 고집될 뿐, 본디 서로 같았던 지평은 전부 부정되었다. 그리고 분별되는 각자만으로 폐색(閉塞)되어 한층 왜소해질 뿐이었다. 서로가 합하여 더 큰 우리가 되는 지평융합은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차마 그 자리에 머물 수 없기에 서둘러 떠나려 했지만 어찌 버스를 놓쳤다.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도리 없이 그 법석에 갇혀있을 수밖에 없었다.

광화문은 본래 빈터였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항상 우리 모두는 하나였다. 어느 순간 빈터 한 귀퉁이에서 갑작스런 소리가 들려왔다. 연후 그 반대편 귀퉁이에 정반대의 또 다른 소리도 들려왔다. 서로 소통되지 않는 그 소리들은 자기 소리만을 드높이더니 이내 악다구니가 되었다. 그리고 그 악다구니들을 진원으로 하여 둘 사이에 하나의 인위적 선이 그어졌고, 그 선 위로 둘을 소통할 수 없게 만드는 높다란 벽이 드리워졌다.

하늘 닿을 듯 까마득하게 솟아 있는 벽, 불통의 그 벽 언저리 어정쩡한 곳에 필자는 하릴없이 그저 절망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현듯 그 벽도, 어느 순간에 갑작스런 뭔가에 의해 아니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절로 허물어질 것을 깨닫는다. 자아류의 돈오돈수(頓悟頓修). 더욱이 그 벽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 허물어짐은 더 빠를 것이라는 깨달음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높은 벽은 색(色)이요 종내 하나 됨은 공(空)이니, 색은 공이요, 공은 또 색이라는 불가의 깊은 지혜를 가만 음미한다.


이계존 수원여대·사회복지학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수원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직업재활연구팀장, 수원 영통종합사회복지관 관장, 성남시 산성동복지회관 관장 등을 역임했다. <장애인의 이해>, <사회복지조사실무론>, <사회복지조사론>(공저), <사회복지 웹사이트>(공저), <한국의 사회문제>(공저)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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