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가격 폭등은 ‘합법적 약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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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가격 폭등은 ‘합법적 약탈’이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0.09.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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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부동산 약탈 국가: 아파트는 어떻게 피도 눈물도 없는 괴물이 되었는가? |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328쪽

이 책은 지난 50여 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역대 정권들이 부동산을 통해 어떻게 ‘합법적 약탈 체제’를 만들어왔는지를 살펴본다. 합법적 약탈은 내 집 마련해보겠다고 뼈 빠지게 일해 저축한 사람들, 전세·월세 값이 뛰어 살던 곳에서 쫓겨나게 된 사람들의 처지에서 보면 폭력으로 빼앗아가는 약탈보다 나쁜 약탈이다. 부동산으로 돈을 번 사람들에게는 ‘투기의 천국’이었지만, 그로 인해 피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에게는 ‘투기의 지옥’이었다. 피를 토하고 죽어도 시원치 않을 서민들의 억울함과 고통은 민주화가 된 지금의 세상에서도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약탈의 기득권자들이 스스로 약탈을 중단하는 법은 없다. 그래서 부동산 약탈은 우리가 가장 경계하고 분노해야 할 악(惡)인지도 모른다. 이제 반세기 넘게 한국을 지배해온 부동산 약탈 체제를 끝장낼 수 있도록 분노와 행동을 보여야 할 때다.

서울시는 판자촌과 도시 빈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기도 광주를 개발해 빈민들을 이주시키는 정책을 세웠다. 그리하여 1969년 5월부터 경기도 광주로 강제 이주시켰는데, 그 수는 14만 5000여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서울시는 쓰레기 내버리듯 그들을 내팽개쳤을 뿐 아무런 대책도 세워주지 않았다. 황무지였던 그곳에서 빈민들은 천막을 치고 살았는데, 그들은 일감이 없어 굶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굶주리다 못해 말하기조차 끔찍하게 인육을 먹었다는 소문까지 떠돌 정도로’ 그들의 굶주림은 심각했다. 결국 주민들은 투쟁위원회를 만들어 1971년 8월 10일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배가 고파 못 살겠다’, ‘토지 불하 가격을 인하해달라’, ‘일자리를 달라’는 내용이 적힌 피켓과 플래카드도 준비했다. 이 사건으로 주민과 경찰 100여 명이 부상했고 주민 23명이 구속되었다. 이 사건은 ‘학생이 아닌 일반인 시위로는 사상 유례없는 사건’이었으며, 이를 계기로 광주 대단지의 비참한 실상이 사회에 알려지게 되었다.

서울로 밀려들던 지방 사람들은 서울이 좋아서 이주해온 게 아니었다. 고향에서는 먹고 살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살던 판자촌은 강제 철거 대상이었다. 철거민들을 쓰레기 내버리듯 서울 밖의 지역으로 내팽개치는 일은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그 덕분에 서울은 ‘천박’할망정 겉보기에는 점점 아름다운 도시가 되어갔다. 어디 그뿐인가? 역대 정권들은 주거 빈민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드는 분산 정책을 통해 이들이 집단행동을 일으킬 수 있는 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약속이나 한 듯이 이들을 투명 인간으로 취급했다. 물론 그 덕분에 부동산 가격 폭등을 통해 무주택자들의 지갑을 터는 ‘부동산 약탈 체제’도 평화롭게 지속될 수 있었다.

건축가 정기용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들이 어디 사냐고 물으면 ‘나는 현대에 살고, 너는 삼성에 살며, 그 친구는 대우에 살며, 저 친구는 우성에 산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네가 아니라 대기업체의 이름 속에 당당하게 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기보다는 (집이라는) 상품을 소비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개탄했다. 같은 지역, 같은 평형이라도 아파트 브랜드에 따라 값이 2배까지 차이가 나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에는 6개 주택 계급이 존재한다. 제1계급은 집을 2채 이상 가진 자, 제2계급은 1가구 1주택자, 제3계급은 자기 집은 세를 주고 남의 집을 옮겨다니는 자, 제4계급은 전세나 월세 보증금이 5,000만 원이 넘는 집에 사는 무주택자, 제5계급은 사글세·보증금 없는 월세·보증금이 5,000만 원 이하인 집에 사는 무주택자, 제6계급은 지하방, 옥탑방, 판잣집, 비닐집, 움막, 업소 내 잠만 자는 방, 건설 현장 임시 막사 등에 사는 주거 극빈층이다.

집단적으로 ‘부동산 대박’에 미친 사회에서는 개인이 아무리 도덕적이라 하더라도 집단적 광기의 문법을 거스르기가 어렵다. 라인홀드 니부어는 집단의 도덕이 개인의 도덕에 비해 열등한 이유를 오직 개인들의 이기적 충동으로만 이루어진 집단적 충동과 자연적 충동을 억제할 만큼 강력한 합리적 사회 세력을 만들기 어렵다는 것에서 찾았다. 개인들의 이기적 충동은 개별적으로 나타날 때보다는 하나의 공통된 충동으로 결합되어 나타날 때 더욱 생생하게 누적되어 표출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동산 약탈에 반대할 강력한 합리적 사회 세력을 만들기 어렵게 한 주범이 역대 정권들이라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헨리 조지는 “땅 한 조각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어떻게 그의 국가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했다. 그는 부의 근본이 토지이므로 토지세를 통해서 정부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해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토지가 공동의 소유로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개인 소유 형태에는 손을 대지 않고 지대만 세금으로 거둬 국가 재원으로 사용하는 한편, 다른 형태의 세금은 폐지하는 방법으로 사회적으로 부를 공유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내내 좌우를 막론하고 노동과 자본에만 집착하느라 그의 메시지는 외면당했다.

그런 현상은 21세기 한국에서도 계속 반복되고 있다. 부동산 문제에 관한 한 한국의 진보는 ‘수구 세력’ 노릇을 하고 있다. 부동산 약탈 체제의 수혜자나 적어도 피해자가 아닌 사람이 진정한 진보의 가치에 충실하는 게 매우 어렵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부동산 약탈을 외면하는 진보좌파는 가짜다. 다시 말해 부동산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서민들의 삶을 외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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