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라는 이상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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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라는 이상한 질문
  • 성희활 인하대 로스쿨·법학
  • 승인 2020.09.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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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나는 누구인가?”라는 이 질문. 철학적 질문 중 책 제목으로 이보다 더 많이 사용되는 문구가 있을까? 국내 대형서점 사이트와 미국 아마존 북스토어에서 이 질문으로 검색하니 국내의 경우 수백 권, 미국의 경우 수천 권의 책이 올라온다. 제목에 정확하게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책의 핵심 주제가 이 질문이거나 맥락상 이 질문을 주로 다룬 책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칼럼이나 강연의 단골 주제이기도 한 이 질문은 우리 각자가 인생의 심연을 마주할 때 주문처럼 외는 넋두리이자 철학 등 인문학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학부 이공계열 신입생을 대상으로 인간의 본질에 관한 기초교양과목(2학점, P/F)을 여러 교수들과 함께 개괄적 협의를 해 가면서 몇 년째 개설 중이다. 과목의 성격상 근본적인 철학적 질문들을 주제로 고전 등 읽기 자료 중심의 강의를 하고 글쓰기 과제를 평가한다. 근본적 질문들이란 예컨대 “나는 누구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유토피아는 어디에 있는가”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는 뭔가 이상했다. 처음 몇 학기 동안 넘치는 의욕에도 불구하고 나의 강의도 학생들의 글쓰기도 이 질문에 대해서는 종잡을 수 없는 미궁을 헤매는 듯 혼란스러웠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그 원인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방향이 다른 여러 질문들을 포괄적인 한마디로 압축하였기 때문이고, 따라서 강의와 글이 중구난방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얼마나 다양한 질문들이 이 한마디에 녹아 있고 어떻게 쪼개는 것이 바람직할까?

먼저 이 질문에 대한 일차적인 반응으로는 한국인, 남성/여성, 노동자, 학생 등 사회적 자아로서의 정체성을 묻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공동체 내에서 그 존재성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학 교양수업에서 굳이 이 주제를 다룰 때는 좀 더 근본적 문제를 탐구하자는 것이다.

일차적 반응을 넘어 철학적 수준에서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자존·자긍의 주체적 자아 개념이다. 페르소나 안에 있는 진정한 자기(self)나 데미안의 아프락사스와 같이 한 개인을 독립적 존재로 우뚝 세우는 본질적 요소를 묻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헨리 D. 소로가 ‘월든’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타인의 북소리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만의 북소리에 발을 맞춰 고독하게 길을 가며,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탐욕과 두려움을 떨치고 참 자유를 누리는 모습이 주체적 자아의 모델로 제시될 수 있겠다.

다음으로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정신인가 물질인가’라는 보다 근원적 질문이 될 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고대부터 종교와 철학이 끊임없이 답을 추구해왔지만, 근대 이후로는 원자론과 진화론 등 과학이 그 자리를 대신하여 왔다. 그러나 문명의 완성 같았던 20세기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종교와 과학의 최대 전장으로 남아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전시관에는 고갱의 그림 제목이기도 한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이 연구소가 해결해야 할 사명 내지 목적으로 새겨져 있다. 과학기술문명 위에 자리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인문학 교양수업에서 과학적 지식도 필수가 되어야 할 듯하다.

마지막으로 이 질문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볼 수도 있다. 사실 철학적 성찰의 근본 목적은 지금 여기서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냐에 대한 추구가 아닐까? 이 방향의 질문에 대해서는 실존주의의 피투/기투 개념이 사고에 유용할 수 있다. 현실 세계에서 수기치인을 추구한 논어 등 동양고전도 큰 도움이 될 듯하다. 흔히 궁극의 인생 목적이라는 ‘행복’이나 ‘의미’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빅터 프랭클의 탐구를 빼놓을 수 없다. 갈매기 조나단은 멀리 보기 위해서 높이 날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날개를 가진 새로 태어난 이상 날기 능력을 최대한 발달시켜 날기의 끝을 보는 것, 그 자체가 그의 삶의 의미이자 행복이었고 목적이었다.

니체는 대표작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모든 사람을 위한, 그러나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이라는 부제를 붙였는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또한 ‘모든 것에 대한, 그러면서 그 무엇도 아닌 것에 대한 질문’처럼 어렵게 다가왔다. 그러나 이 거대한 질문을 위와 같이 다양한 방향의 작은 질문들로 쪼개 놓으니 나의 강의와 학생들의 글쓰기가 보다 명료해졌다. 인문학 비전공자의 소박한 깨달음이겠지만 소중한 경험이었다.
 

성희활 인하대 로스쿨·법학

한양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증권법으로 법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뉴욕주 변호사이다. 현재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서 자본시장법 및 금융거래법과 상법을 강의하는 한편 학부 교양과목도 담당하고 있다. 저서로는 <자본시장법 강의>, <자본시장법 주석서>(공저), <법정책학>(공저) 등이 있다. 책을 통해서 3천년래 고금동서의 현자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경이로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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