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작품 속 '몸짓 언어'의 의미와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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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작품 속 '몸짓 언어'의 의미와 기원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9.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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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포즈의 예술사: 작품 속에 담긴 몸짓 언어 |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 320쪽

‘몸짓 언어’와 ‘미술의 진화’라는 두 가지 주제를 결합한 이 책은 과학자이자 예술가로 살아 온 데즈먼드 모리스의 이중적인 삶이 독창적으로 통합된 책이다. 작품 속에 담긴 다양한 포즈들에 주목해 그것에 내재된 인류 보편의 사회문화사적 의미로 확장해 나가는 방식은 ‘인간 관찰의 대가’인 저자가 독자에게 선물하는 새로운 미술 감상법이라 할 만하다. 미술 작품 속 인간의 포즈를 환영, 모욕, 위협, 자기 보호 등 아홉 가지의 의사전달 형태로 분류한 뒤 그 포즈가 지닌 사회적 기능과 보편적 의미를 분석해 나가는 방식은 과학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하다.

지난 수세기 동안 하나의 ‘몸짓’이 일으킨 역사적 사건들의 면면을 따라가다 보면, 사소한 행위 하나가 빚어낸 결과의 의미가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된다. 서기 1세기에는 예루살렘으로 모여드는 유대인들을 막기 위해 이를 감시하는 로마 병사들이 있었고, 이들 병사 중 한 명이 군중을 향해 엉덩이를 내미는 모욕 행위를 가하자 성난 군중들 때문에 1만 명이 깔려 죽은 참사가 벌어졌다.

1951년에는 아인슈타인이 공식 석상에서 기자를 향해 혀를 쭉 내미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 모습을 촬영한 기자는 당시로서는 모욕을 당한 셈이었지만 전 세계인의 뇌리에 남은 가장 유명한 사진이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명석한 인물이 가장 천진난만한 모욕 행위를 한 의도는 무엇일까? 그 행동의 의미는 처음 의도와 다르게 역사적 시간을 거치며 점차 인류를 향한 깊은 의미를 담은 진술로 변모해 갔고, 이 포즈에서 영감을 받은 많은 거리 예술가가 이를 그림으로 표현하며 또다른 현대 미술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 1951년 3월 14일 아인슈타인이 프린스턴 클럽에서 생일 파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차 안에서 찍은 사진
▲ 1951년 3월 14일 아인슈타인이 프린스턴 클럽에서 생일 파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차 안에서 찍은 사진

인간이 ‘고통’을 받거나 ‘슬픔’을 느끼면 눈물을 흘리는 행위는 매우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반응은 영장류 중에서 유일하게 인간만이 보이는 특성이다. 화가들은 이 눈물 흘리는 행위가 야기하는 표정을 놓치지 않았는데, 안드레아 만테냐의 「죽은 예수」(1483)에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성모 마리아의 얼굴이나 피카소의 「게르니카」(1937)에 나오는 죽은 아기를 안고 있는 여성의 모습은, ‘눈물 흘리기’가 인간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형태의 사회적 신호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해 준다.

시대와 공간을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몸짓 언어’는 무엇일까? 예를 들어 인간이 ‘하품하는’ 자세나, 혐오를 느낄 때 ‘얼굴을 찡그리는’ 동작은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몸짓 언어다. 또한 ‘항복’의 신호를 나타내는 ‘손드는 자세’도 상대에게 필사적으로 자비를 청하는 의미로만 쓰였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1808년 5월 3일」(1814)가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두 손을 들어 올린 남성의 모습을 통해 나폴레옹 군대에 무력한 스페인군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프란시스코 고야의 「1808년 5월 3일」
▲ 프란시스코 고야의 「1808년 5월 3일」

고대 문명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잠을 자는 모습도 비슷한 양상으로 표현돼 왔다. 선사 시대 미술에서 약 5천 년 전에 발견된 점토상인 ‘몰타의 잠자는 여신’은 돌베개에 머리를 얹고 오른쪽으로 엎드려 자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와불상’ 역시 잠자는 사람의 모습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잠자는 미녀’를 모티프로 한 수많은 작품에서도 잠자는 미녀들의 모습은 대개 비슷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다만 빅토리아 시대의 「장미 정자」(1870~1890)처럼 전형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변화를 주려는 미술적 시도들이 반복되어 왔을 뿐이다.

70여 년에 걸쳐 인간의 몸짓과 행동을 동물학자의 관점으로 연구해 온 저자는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과 예술에 대한 탐구 정신을 이 책을 통해 다채롭고 풍부하게 보여 준다. 그 스펙트럼은 고대 문명에서부터 현대에까지, 아시아에서부터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대륙에 이르기까지 드넓은 시공간을 아우르고 있으며, 인간의 가장 동물적인 순간부터 가장 초월적인 순간까지 눈부신 시각적 아카이브로 펼쳐진다. 어느 한 시대의 작품 속 인물의 포즈와 조우하게 되면, 동물적 존재이자 문화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달하게 된다. 아울러 눈부신 예술 작품을 통해 인간 행동의 숨겨진 의미를 재발견하는 지적 즐거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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