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 비극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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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 비극의 세계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0.08.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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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문화정전 14강>_ 유종호 전 연세대 석좌교수의 「희랍 비극의 세계」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일곱 번째 시리즈 ‘문화정전’ 강연이 매주 토요일 한남동 블루스퀘어 카오스홀에서 진행되고 있다. 인류 문명의 문화 양식은 오랜 역사를 통해서 문화 전통, 사회적 관습으로 진화하며 인류 지성사의 저서인 '고전'을 남겼다. 이들 고전적 저술 가운데, 인간적 수련에 핵심적이라 받아들여지는 저술을 문화 정전(正典)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 52회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인류가 쌓아온 지적 자산인 동서양의 ‘문화 정전(正典)’을 통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마주한 삶의 문제를 깊숙이 들여다본다. 14강 유종호 교수(전 연세대 석좌교수)의 강연 중 서론과 결론 부분을 발췌해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유종호 교수는 희랍, 즉 “그리스 비극의 현대와의 유관성 회의론”에 대해 적극 반박하며 “인간 이성과 이해력을 넘어서는 어떤 힘을 느끼게 하는 삶 경험과 현실 경험”에 비추어볼 때 오늘에도 여전히 관심을 가질 만한 텍스트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보다 구체적으로는 고대 희랍 비극을 둘러싸고 이미 이루어진 “방대한 연구와 견해”에 의존하되 지금의 “독자에게 도움이나 자극이 될 만한 사항”, 이른바 “가장 중요한 비극 이론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의 분석 및 헤겔의 갈등 이론, 그리고 니체가 행한 비극의 탄생 및 죽음 해석을 중심으로 “그리스 비극의 몇몇 국면”을 살핀다. 그리고 그 논의들 끝에 “비극적 비이성과 부정의가 삶의 조건이요 질서”임을 눈치 채고 그를 통해 ‘비겁한’ 위안이나마 얻어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지난 8월 8일, 유종호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문화정전의 14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 지난 8월 8일, 유종호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문화정전>의 14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들어가면서

그리스 비극은 서구 문학에서 고전 중의 고전인 것이 사실이다. 비극 상연은 고대 아테나이에서 폴리스의 집단적 연례행사의 일환으로서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졌고 또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어려운 시기에도 중단 없이 계속되었다. 당대 아테나이 시민과 비극의 관계는 현대인과 영화의 관계와 흡사하다. 그런 맥락에서 고전을 경원하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문학적 깊이나 높이와 상관없이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는 장르로 추리소설을 지적할 수 있다. 비평가나 문학계 여론 주도자의 냉대에도 불구하고 추리소설은 독서 군중을 애독자로 가지고 번창하고 있다. 추리소설의 문장은 대체로 접근이 평이하다는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추리소설을 미국에서 후더니트(who-dun-it)라고도 하는데 문자 그대로 “누가 했나”의 뜻이다. 모든 추리소설은 누가 했나를 추적하는 플롯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누가 했나”란 별칭을 얻게 된 것이다.

그리스 비극의 최고 걸작의 하나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을 얘기할 때 좋은 사례로 거론하는 『오이디푸스 왕』은 바로 “누가 했나”의 플롯을 따르고 있다. 추리소설이 등장인물에 대한 탐구 없이 기계적으로 “누가 했나”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삶과 사람과 세계에 대한 성찰을 담고 독자에게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 비극이다. 아울러 필요한 것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불필요한 것은 하나도 들여놓지 않는 고전적 완벽성을 보여 이상적 구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오늘의 추리소설이 플롯상으로는 『오이디푸스 왕』의 아류라고 하는 사실을 상기할 때 추리소설 속에 살아 있는 과거로서 고전 비극이 잠복해 있음을 알게 된다. 그 점을 예감하고 인지할 때 고전 비극은 벌써 경원의 대상이기를 그칠 것이다.

그리스 비극의 현대와의 유관성 회의론에 대한 강력한 작품적 반론은 『안티고네』에서 찾을 수 있다.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이행은 “운명에서 선택으로”란 말로 요약될 수 있다. 근대인의 삶은 신분의 고정성에서 벗어나 선택을 통한 신분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양자택일의 선택은 근대인이 항상적으로 마주치는 당연하나 난감하고 곤혹스러운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양립될 수 없는 상호배제적 부분적 선 사이에서의 갈등과 선택의 결과를 다루고 있는 『안티고네』는 따라서 근대로 내려올수록 더욱 호소력을 갖게 된다. 20세기에 들어와 연극이나 오페라에서 12편의 「안티고네」가 생산되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브레히트나 장 아누이 같은 재능들이 생산에 가담했다는 것도 특기할 만한 일이다.

20세기 이후 대중의 호응을 가장 많이 받은 것은 아마도 영화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 공간은 역동성을 획득하고 시간 또한 미래와 과거를 오가며 역동적으로 전개한다. 이러한 시공간의 제약으로부터의 자유가 영화의 서사 가능성과 시각적 향유 잠재성을 확대해서 관객을 사로잡는다. 권력 또한 그 막강한 홍보 잠재성에 착안하여 후원함으로써 영화는 시대의 총아가 된다. 막대한 재력이 동원되어 다수의 영화가 제작되는데 그 소재의 다양성도 괄목할 만하다. 그러한 가운데 가령 로브 라이너 감독의 「소수 정예(A Few Good Men)」 같은 법정 영화도 다수 제작되어 관객을 모으고 있다. 그리스 비극이 영감의 원천이 되어 이러한 법정 영화가 나오게 되었다는 추정은 결코 상상력의 비약만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리스 비극은 주인공이 피고이고 무창단(舞唱團)이 배심원이며 관객이 판결을 내리는 법정이라고 생각해도 크게 잘못은 아닐 것이다. 코로스의 존재가 그리스 비극이 노래로 진행되었을 것이라는 오해를 야기해서 유럽 근세의 오페라가 탄생했다는 것은 유럽 음악사의 유명한 삽화이다. 이러한 창조적 오해의 모태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그리스 비극의 풍요성과 향유 유발 능력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것이다.

축제ㆍ경연ㆍ폴리스

그리스 비극은 기원전 6세기에 시작하여 해마다 중단 없이 상연되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에는 물론이고 아테나이가 스파르타에 패배를 당한 뒤에도 중단이 없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그 전성기는 기원전 5세기이며 현존하는 비극 텍스트는 그 무렵에 쓰인 것이다. 시기적으로 비극은 아테나이의 민주정과 나란히 발전하였다.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인구의 다대수가 정치에서 강력하고 정규적인 목소리를 내게 되고 결국엔 역할을 하게 된 시기에 비극이 동반 발전하였다는 것은 우리가 유념하고 숙고해야 할 국면이다. 비극은 지리적으로 산재해 있던 그리스 세계에서 두루 환영받았고 기원전 4세기에는 많은 그리스 도시가 자기네의 극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기원에 있어 비극은 아테나이의 문화적 산물이다. 비극(tragedy)이란 말이 “산양 노래”에서 왔다는 것은 밝혀져 있지만 왜 그랬나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였다. 최근엔 우승자에게 주어진 포상품(襃賞品)이었다는 해석이 대세인 것 같다. 마찬가지로 비극의 기원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고 정설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근거하여 비극이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송가와 관련된 무창단(舞唱團)의 실연에서 발전해왔다는 추정이 지배적이다.

모든 장르가 그러하듯이 그리스 비극도 그 나름의 관습(convention)을 가지고 있다. 과거를 언급하기도 하고 미래를 예상하지만 단 하루에 일어난 일을 다룬다. 또 예외적인 경우가 있기는 하나 단일한 장소에서 일이 벌어진다. 장소는 대개 집 바깥이고 죽음이나 중요한 사건은 무대 밖에서 일어나며 사자(使者)의 전언 형태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작중인물에게 일어난 참혹한 자초지종을 상세하게 전하는 사자의 전언은 가장 흔한 비극의 특징이다. 또 서두에 그때까지의 얘기를 전하는 도입부나 상반되는 견해를 가진 등장인물 사이의 토론 즉 애건(agon)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그리스 비극을 말하면서 우리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표명하고 있는 비극론이다. 널리 알려진 것이어서 상론하는 것은 피하지만 “희극은 보통 이하의 악인을 모방하려 하고 비극은 보통 이상의 선인을 모방하려 한다”는 대목은 유념해두어야 할 것이다. 비극을 관람하면서 관중들은 연민과 공포를 경험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카타르시스라 부른 과정을 통해서 감정의 정화를 성취한다는 것이 비극의 효과라 할 수 있다.

요컨대 비극은 인간의 삶에서 어려운 문제 특히 왜 우리가 고통받는가 하는 것을 다루는 것에 주요 관심이 있는 장르이다. 비극은 그리스 신화 가운데서도 존속 살해, 가족 살해, 근친상간, 사회의 붕괴와 같은 소재를 선택해서 가장 어두운 국면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승화시키고 도덕적 패턴을 과함으로써 다루어진 고통은 의미 있는 것이 된다. 또 고난을 통한 학습 효과 즉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능력 때문에 또 보다 넓은 우주적 질서를 반영함으로써 인간 삶에서 가장 감당하기 어려운 경험을 벌충하려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일상생활을 넘어선 즐거움을 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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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우선 그리스 비극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적어둔다. 중년 이후 되풀이 한정적으로 읽게 된 것은 인간 이성과 이해력을 넘어서는 어떤 힘을 느끼게 하는 삶 경험과 현실 경험 때문이다. 거시적, 장기적으로는 이성이나 정의가 역사 속에서 확대되고 실현될지 모르나 한 개인의 의식 사안이 아니라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비극적 비이성과 부정의가 삶의 조건이요 질서가 아닌가? 그래서 위안받는 측면이 있었다. “형이상학적 위안”이란 것과는 다른 구경꾼의 무사하다는 비겁한 안도감과 연관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솔직히 짧다는 것도 매력이었다. 멜빌이나 헨리 제임스의 끝없는 장광설에 멀미가 난 독서 경험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리스 비극이나 20세기 영화나 동아시아의 전통적 시간 단위였던 2시간과 얼추 비슷한 상연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혹 인간의 신체 리듬과 관련된 것일지도 모른다.

1 경연과 극단: 그리스 비극의 사건에는 원시적 잔혹성이 보인다. 오이디푸스가 권좌에서 내려오고 망명의 길로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하더라도 자해로 시력 상실자가 되는 것은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신화를 극화하는 것이니 비극 시인의 재량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또 메이디아가 남편에 대한 항의로 자식들을 살해하는 것도 그렇다. 물론 원형적인 상황이요 원형적인 인물이니 극단화된 것이기는 하다. 고전극의 특징상 비극의 주인공이 한 고정관념의 소유자로 나오는 것과도 관련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경연이라는 비극 상연의 특성 때문에 관객에게 영합하기 위해 극단을 지향하게 되고 그것이 관습이 된 것은 아닐까? 극장 경찰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아테나이 관중을 과대평가할 수는 없다. 셰익스피어의 경우 여러 층의 관중이 있었다. 대사에 나오는 음담패설에 환호하는 층, 유혈 낭자한 사건에 숨을 죽이는 층, 이러한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도 운문으로 된 대사에 감동하는 층이 있었다. 이른바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하고 있었다는 셰익스피어의 비밀은 이 점에 있었다.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의 관객보다 아테나이의 노천극장 관객을 심미적으로 더 세련되고 계몽된 관객이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2 여성 문제: 페리클레스 시대에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낮았다. 부부가 외출하는 경우에도 나란히 걷지 않고 여성은 뒤따라 다녔다. 여성은 민회(民會)에 참석하지 못했다. 동성애적 우정을 권장했던 풍조도 여성의 낮은 사회적 지위와 관련될 것이다. 그럼에도 『미학강의』의 저자가 탄복해 마지않는 안티고네를 위시해서 늠름한 여성들이 기라성같이 비극 무대에서 자기 소리를 내는 것은 어인 까닭인가? 늘 궁금하면서도 궁금증을 풀지 못하였다. 대답을 찾지 못할 때 잠정적으로 임시 답안을 작성해두고 수정할 태세를 갖추는 것이 배움 길 병사의 상사(常事)이다. 어머니 대지를 말하는 신화적 상상력이 여성을 괄시할 수 없다는 사정도 있을 것이다. 또 그리스 비극이 기원전 13세기에서 12세기에 이르는 영웅시대의 신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왕가와 같은 지배층이 주인공으로 되어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연치 않다. 그때 떠오르는 것이 문학적 구상력의 힘이다. 가령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란 작중 인물을 처음 부정적으로 그릴 셈이었으나 소설을 써내려가면서 자기가 구상한 여인상에 끌리어 사회 인습에 희생되는 동정에 값하는 인물로 조형해내었다. 작자의 편견이나 이념을 넘어서 진실에 도달한 것이다. 엥겔스가 발설해서 뒷날 남용되고 속화된 감이 있는 리얼리즘의 승리라는 개념으로 포괄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자신 없는 잠정적 답안이다. 가정의 파탄을 그린 작품에서 책임이 남녀 모두에게 있음을 암시하는 것은 비극 시인들의 편향되지 않은 안목을 상기시킨다.

3 비극과 시민 교육: 기원전 399년 아테나이 인민 법정은 281 대 220의 유죄 평결을 통해 소크라테스를 사형에 처했다. 배심원 501명이 전원 참석해서 내린 평결이다. 아테나이는 해마다 501명 혹은 1001명의 배심원을 추첨으로 결정해서 통고한다. 그릇 큰 인물의 재판이라 하더라도 501명의 배심원 전원이 참석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정치에 무관심한 시민은 조용함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간주되지 않고 폴리스를 떠받치는 의무를 다하지 않는 자로 간주되는 것이다.” 페리클레스의 전몰자 추도 연설에 보이듯 의무를 다한 것이다. 비극 참관은 유료, 무료, 수당 지급과 같은 단계를 거친다. 수당 지급까지 했다는 것은 시민 교육으로서의 비극의 가치를 평가한 것이 아닐까? 더구나 비극은 재판정을 연상케 하는 바가 많다. 그렇다면 잠재적 배심원인 시민에게 배심원 교육 기회의 하나로 생각한 측면도 있지 않을까? 많은 순기능 가운데의 하나가 아닐까? 비극이 신화적 사고와 철학적 사고 사이의 통로이며 비극의 논리가 반대물 사이, 상반되는 힘 사이의 긴장의 논리라고 생각하는 프랑스의 고전학자 장 피에르 베르낭은 비극 시인들이 법률적 전문 용어를 즐겨 구사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그가 명시적으로 배심원을 언급한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비극 관람 장려가 법률적 판단에 도움을 준다는 현실적 고려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정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극 경연이 아테나이 민주정과 뗄 수 없는 것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4 비극의 전언: ‘어떤 사람도 행복하다, 불행하다, 하지 말라, 죽을 때까지는 모르는 일이어니’라는 대사로 소포클레스의 『트라키스의 여인들』은 시작된다. 그것은 오래된 속담이다. 『오이디푸스 왕』의 코로스도 비슷한 취지의 뜻을 전하면서 작품을 끝낸다. 오이디푸스 같은 영웅도 마지막엔 이런 참혹한 지경에 이르니 인간사는 모르는 것이라는 뜻이다. 문학 작품에서 협의의 교훈을 도출하려는 기도는 미련한 짓이다. 그러나 그리스 비극 곳곳에서 발견되는 이런 생각은 사실상 권력자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참주”를 열심히 혐오하고 거부했던 아테나이 시민 사이에서는 그랬을 것이다. 휴브리스 경계는 고대 그리스의 지혜이기도 하다.

5 위선자 부재: 신화나 비극에 위선자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편의를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속임수를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경우는 있지만 근대 사회에서 흔히 보게 되는 표리부동한 위선자는 찾기 어렵다. 신화 속의 인물들은 장고 끝에 행동하지 않고 즉행적이다. 비극의 영웅들도 마찬가지다. 위선자는 말과 행동을 통해 장기간에 걸쳐 거짓말을 하는 거짓말쟁이요 광대이다. 습관이 천성이 된 면도 있을 것이다. 위선은 악이 선에게 바치는 최고의 경의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영어의 hypocrite는 광대를 뜻하는 그리스 말에서 나왔다. 민주제와 광대적인 인물 및 위선자의 범람 사이에는 어떤 함수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전투에서 위선은 작동할 여지도 필요도 없다. 위선은 호메로스가 그리는 시대를 지나 조금은 진보된 단계의 문명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6 비극의 죽음: 주술로부터의 세계 해방이 현실화하면서 비극의 자리는 사라졌다. 근대 비극의 죽음 논의는 궁극적으로는 주술로부터의 세계 해방의 일환으로서 설명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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