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년은 총선의 해, 역사적 전환의 새 분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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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은 총선의 해, 역사적 전환의 새 분기점
  • 임재해(林在海) 안동대 명예교수·민속학
  • 승인 2019.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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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로 보는 경자년]

쥐는 띠 동물 가운데 가장 작은 동물이면서 가장 으뜸 동물이다. 몸이 작은 이를 보고 ‘쥐불알만한 놈’이라고 하거나, 월급이 적은 것을 ‘쥐꼬리만한’ 월급이라고 하는 것은 쥐가 작기 때문이다. 꼬맹이 쥐가 12 동물 가운데 덩치 큰 소와 말, 범 등을 제치고 으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의아스럽지만, 흥미로운 유래담이 의문을 풀어준다.

옥황상제가 동물들에게 경주를 시켜서 차례에 따라 12지 띠 동물을 정하기로 했다. 달리기에 자신이 없는 소는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기 위해 모두 잠든 밤중에 먼저 출발했다. 눈치 빠른 쥐가 낌새를 알아차리고 몰래 소 등에 올라탔다. 소가 밤새도록 달려서 목적지에 이르자, 쥐는 얼른 뛰어내려 1등을 차지했다. 따라서 쥐는 작지만 12지의 으뜸 동물이 되고, 소는 다음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유래다.

생태학적으로 쥐[子]는 한밤중에 활동하는 까닭에 첫 시인 자시(子時)에 맞추어 띠 동물로 삼은 것이지만, 창조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유래담은 납득할 만한 이야기를 이루고 있다. 소의 부지런한 특성과 쥐의 약삭빠른 속성이 설득력 있게 구성되어 유래담으로서 공감대가 높다. 쥐는 소의 일등을 가로챈 것처럼, 가만히 놀면서 남의 성과를 훔치는 존재로 간주된다. 따라서 이규보가 “사람은 천생의 것을 훔치는데, 너는 사람이 훔친 것을 또 훔치는구나!” 하고 노래했다. 자연에서 먹을 걸 취하는 사람보다 한 수 더 뜨는 존재가 쥐라는 말이다.    

야밤에 몰래 곡식을 훔치는 쥐의 속성은 전형적인 도둑질 행태이다. 쥐는 훔치는 재주와 함께 좁은 구멍에 들어가 잽싸게 숨어버리는 능력도 뛰어나서 고양이도 뒤쫓다가 곧잘 놓치기 일쑤이다. 따라서 나랏돈을 몰래 도둑질하는 약삭빠른 인간을 두고 흔히 ‘쥐새끼’ 같은 놈이라 한다. 옛말에 “나라에는 도둑이 있고 집안에는 쥐가 있다”고 하여 도둑과 쥐를 같은 존재로 취급했다. 그러므로 나라 살림 도둑질한 자를 지목해서 ‘쥐새끼’로 호명했다.

나라 도둑은 여럿이다. 이를테면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재정을 제멋대로 부정하게 쓰는 사립유치원이 한 보기이다. 더 문제는 횡령과 비리를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부정을 막으려는 입법까지 공공연히 거부하고 있는 점이다. 이처럼 나랏돈은 주인 없는 돈이라면서 먼저 빼먹는 사람이 임자라고 여기는 도둑들이 적지 않다.

국민 세금을 빼먹는 도둑보다 국민주권을 빼먹는 도둑이 더 큰 도둑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틀어쥐고 있는 검찰 권력이 국민주권을 자의적으로 침탈하고 있다. 사소한 사건에는 과도한 압수수색으로 한 가정을 풍비박산 내는가 하면, 국가 존립을 뒤흔든 국군기무사의 계엄령 음모 사건은 유야무야 묵살하고 있다. 별장 성접대 사건의 김학의는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탓에 무죄 선고를 받는가 하면, 수사 압박으로 자살한 직원의 휴대전화를 압수하여 유가족에게조차 공개하지 않은 채 사건을 덮고 있다. 검찰이 털어서 만들지 못하는 범죄가 없고, 검찰이 묵살해서 덮어버리지 못하는 범죄가 없는 상황은, 국가의 법치주의가 검찰에 의해 도둑맞고 있는 셈이다. 

더 문제는 나라 밖에서도 도둑 떼가 득실거리고 있는 현실이다. 미국의 트럼프 정부는 지금 미군 주둔 비용을 터무니없이 요구하여 나라 살림을 거덜 내려 하고 있는가 하면, 일본의 아베 정부는 원자재 수출규제로 한국 반도체 산업을 무너뜨려서 경제적 타격을 가하려는 술책을 부리고 있다. 이른바 우방이라는 미국이 군사력을 미끼로 안보장사를 하는 한편, 일본은 한일무역 역조로 엄청난 흑자를 누리면서 오히려 우리 경제를 망치려 드는 짓을 뻔뻔스레 하고 있다.

쥐는 도둑을 상징하는 한편, 죽은 생명을 살리는 신통한 존재이기도 하다. 『동경잡기(東京雜記)』에 신라왕이 생명을 살리는 신비한 금척(金尺)을 쥐로부터 얻은 설화가 전한다. 경주에는 이 금척을 묻어놓았다는 금척리가 있다. 구전설화도 여럿이다. 옛날에 어떤 머슴이 죽은 새끼 쥐를 살려내는 어미 쥐의 금척을 얻어서 공주를 살려내고 부마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때 쥐는 죽음의 어둠에서 생명의 빛을 주는 구실을 했다. 실제로 쥐의 시간인 ‘자시’는 어둠의 시각에서 여명의 시각으로 전환되는 출발점이자, 죽음의 밤을 넘어서 생명의 낮으로 거듭나는 재생의 시점이다. 쥐띠해 또한 12지의 으뜸으로서 시작의 첫해이자, 시대적 전환의 분기점을 이루는 역사적인 해이다. 특히 경자(庚子)년 새해는 ‘흰쥐의 해’로서 쥐 중에서도 힘이 가장 센 우두머리 쥐띠해인 까닭에 역사적 전환의 힘을 더욱 크게 발휘할 조짐이다.

그러한 역사적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극렬한 반대 운동에도 유치원 3법이 패스트 트랙으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검찰 권력의 남용을 막는 공수처법과 검경수사권 조정법도 패스트 트랙에 따라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모두 야당이 막고 있지만,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이전 시기와 크게 다른 국면이다. 국제관계도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미군 주둔비 과다 요구에 대등하게 맞서서 한미 종속관계를 극복하고 있는 것은 물론, 일본의 수출규제도 당당하게 대응하여 아베 정부의 공세를 무위로 만들고 있다. 한미, 한일 관계 모두 과거와 전혀 다른 입지를 확보한 상황이므로, 경자년 새해에는 현대사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전망이다.

그러나 혁신에 앞서야 할 대학은 여전히 잠자고 있다. 핀란드에서는 16세 학생부터 교과서를 없애는데, 한국에서는 대학에서조차 교과서로 강의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1946년에 이미 대학 등록금을 없앴을 뿐 아니라, 1969년에는 베를린대학 총장선거에서 31세의 사회학과 조교가 교수 대표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교수와 조교, 학생이 대등한 지위를 누린 까닭이다. 교수 호칭도 ‘아무개 씨’로 이름만 부르게 되었다. 기득권에 매몰된 한국의 대학은 아직 한밤중이다. 학위 사기꾼이 대학 개교 이래 25년째 총장을 독점해도 교수사회는 침묵하고 있다. 새해 경자년은 총선의 해로서 역사적 분기점이다. 시민들은 투표로 정치 적폐를 청산하고 더 진전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새 역사를 쓸 것이다. 교수들도 대학 적폐의 쥐구멍에서 나와 대학개혁의 새 역사를 써야 한다. 교수들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고 진정한 민주주의자가 되어야 대학과 사회가 혁신된다. 경자년에도 훔친 것을 또 훔치는 쥐로 남을 것인가, 역사적 전환의 주체가 될 것인가. 대학과 학문의 혁신은 교수들 하기 나름이다.


임재해(林在海) 안동대 명예교수·민속학

영남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석사와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안동대학교 인문대 민속학과 교수로 있는 동안 민속학연구소장, 박물관장, 인문대학장을 역임하고, 실천민속학회장, 한국구비문학회장, 비교민속학회장, 한국민속학술단체연합회장 등의 학회활동을 했다. 현재 민속학과 명예교수,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공동대표,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이사 일을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민속문화를 읽는 열쇠말』, 『신라 금관의 기원을 밝힌다』, 『마을문화의 인문학적 가치』, 『고조선문화의 높이와 깊이』, 『고조선문명과 신시문화』 등 33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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