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맞대면시킴으로써 철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다
상태바
동서양을 맞대면시킴으로써 철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다
  • 이근세 국민대학교·철학
  • 승인 2020.08.02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책을 말하다_ 『문화적 정체성은 없다』 (프랑수아 줄리앙 지음, 이근세 옮김, 교유서가, 172쪽, 2020.06)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우리와 특별한 관계를 맺어왔다. 1500년대 후반부터 서양의 천주교 선교사들이 전교를 위해 동방에 들어와 활동하는 과정에서 많은 프랑스 선교사들이 조선 땅을 밟았고 이들의 활동은 한국 천주교 전통과 서구문화 유입의 기반이 되었다. 4세기 전부터 동방 연구를 진행해온 프랑스 학계는 막강한 동양학 전통을 지니고 있다. 마르셀 그라네(Marcel Granet), 르네 에티앙블(René Etiemble), 자크 제르네(Jacques Gernet), 레옹 반데르메르슈(Léon Vandermeersch) 등의 중국학 대가들이 활동해왔고, 현대 프랑스 철학계를 주도하고 있는 프랑수아 줄리앙(François Jullien, 1951~)도 프랑스의 풍부한 중국학 전통에 속한 연구가로 평가되곤 한다. 그러나 줄리앙은 중국학의 차원을 넘어 중국사유와 서양사유를 맞대면시키는 작업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철학을 전개해왔다. 그는 지난 40여 년간 동서양 사상의 관계를 통찰한 40여 권의 단행본을 저술했고 최근에는 이와 같은 막대한 지적 자산을 토대로 독창적인 문화론과 실존의 윤리학을 정립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20여 개국에서 번역되었으며 국내에는 이번에 선보이는 『문화적 정체성은 없다』 이전까지 9권이 출간되었다.

▲ 프랑수아 줄리앙
▲ 프랑수아 줄리앙

줄리앙은 중국을 중심에 둔 작업 때문에 프랑스에서도 ‘중국학 연구가(chinologue)’로 불릴 때가 많지만 이 호칭을 꺼린다. 중국은 철학을 새롭게 가동하기 위한 도구로 택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작업은 근본적으로 철학이라는 것이다. 줄리앙 철학의 의미는 ‘우회’와 ‘회귀’의 두 단계로 압축할 수 있다. 첫 단계인 ‘우회’는 서양철학 전통의 근간을 이루는 존재, 신, 이상, 목적, 자유 등의 주요 철학소(哲學素)들을 중국사상을 통해 동요시킴으로써 사유의 낯섦을 체험하는 데 있다. 이는 서양철학이 기대어온 굄목, 즉 자기 사유의 균형을 유지하게 해주지만 너무 친숙해 사유되지 않은 ‘굄목’ 자체를 제거해보는 작업이다. 두 번째 단계인 ‘회귀’는 서구적 이성을 지탱해주는 암묵적 선택을 중국이라는 바깥을 통해 재조명하는 작업이다. 회귀는 중국을 통해 서구적 편견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서구의 잊혀진 가치를 새롭게 사유하는 단계이다.

서양철학은 위기에 처해 있다. 서양철학은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과제로 삼아왔다고 자부하지만 자기 고유의 범주 속에서 늘 비슷한 질문에 매여 있다. 그래서 줄리앙은 철학을 재개하기 위해 철학의 고향인 그리스와 거리를 두며 중국을 거쳐 우회하는 작업을 수행해 왔다. 그의 작업은 서구적 이성의 고질적인 격세유전(隔世遺傳) 또는 습벽(習癖)에 질문을 다시 던지고 사유되지 않은 문제로 거슬러 오르기 위한 전략적 우회와 회귀이다. 중국은 중국학 자체를 넘어 철학을 재가동시키는 이론적 뇌관이다.

철학의 재가동을 위해 중국이 선택된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 서양철학은 인도유럽어로 구성되었으므로 언어적 바깥을 체험하려면 인도유럽어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따라서 산스크리트어도 배제된다. 둘째, 역사적 영향 관계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따라서 아랍 및 유대 세계는 서양의 역사와 계속 관련되었기 때문에 배제된다. 셋째, 고대부터 텍스트로 표현되며 본래성을 지닌 사유를 만나야 한다. 유럽과 중국의 본격적 교섭은 16세기 이후에야 진행되었고 중국사상은 이미 고대부터 텍스트로 정립되어 있었다. 줄리앙은 인류학자가 아닌 철학자이고자 하며, 따라서 텍스트를 통해 명확히 진술되고 해설되어 그리스 사유와 비교 가능한 사유와 마주쳐야 했다. 언어와 역사 차원에서 서양과 영향 관계에 있지 않고 동시에 텍스트 전통을 갖춘 사례는 중국뿐이다. 서양사유와 중국사유는 철학을 재가동하기 위한 유일한 두 대화 상대자이다. 

『문화적 정체성은 없다』(Il n’y a pas d’identité culturelle, 2016)는 레옹 반데르메르슈가 “가장 야심차고 가장 심오한” 줄리앙의 작품으로 평가한 2008년의 『보편, 단형, 공통 그리고 문화들 간의 대화』를 압축한 책이다. 두 저작은 수십 년간 동서양 사유를 맞대면시키고 양자의 간극(間隙)을 조명한 작업의 의미를 문화 개념 자체에 적용함으로써 문화적 대화 방법을 제시한다. 줄리앙의 문화론은 자신이 추구해온 동서양의 맞대면 작업을 문화 개념을 매개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정당화하는 관점이다. 요컨대 그의 문화론은 문화 자체에 대한 독립적 고찰로서 파악하는 동시에 문화와 관련해 제시된 그의 개념들에 동서양 사유를 맞대면시키는 선행 작업을 대입할 때 입체적 이해가 가능해진다.

『문화적 정체성은 없다』에서 프랑수아 줄리앙은 혼란한 정치 구호가 난무하는 상황을 진단하고 새로운 문화 이론을 통해 문화적 대화를 해법으로 제시한다. 서구에서나 아시아에서나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구호는 해당 민족, 국가,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이다. 문화적 정체성은 세계화를 통해 외부로부터 위협해오는 획일화와 한 사회를 내부로부터 좀먹어 들어가는 여러 집단주의에 맞선 방어벽일지도 모른다. 관용과 통합 사이에서, 그리고 차이의 인정과 동일성의 요구 사이에서 어느 편에 서야 하는가?

오늘날 문화적 정체성의 요청은 민족주의의 회귀와 세계화에 대한 반작용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강요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더 일반적으로 문화 간의 관계 및 문화의 미래에 대한 논의와 관련된다. 프랑수아 줄리앙은 문화의 고유한 점은 변천과 변화라는 관점에서 문화적 정체성 개념의 문제를 폭로하고 문화적 ‘자원’을 대안 개념으로 제시한다. 한 문화의 자원이 특정 언어, 특정 장소, 특정 국가에서 생겨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자원은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 어딘가에 귀속된 것이 아니다. 문화적 자원은 ‘가치’처럼 배타적인 것이 아니고 설교나 전도의 대상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문화적 자원을 발굴하여 활용하거나 그것을 개척하지 않을 수 있다. 즉 문화적 자원은 활성화하거나 방기될 수 있으며 이는 각자의 책임에 달려 있는 일이다. 줄리앙은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지구의 자연 자원 및 ‘생물의 다양성’이 고갈되어가는 것을 그토록 불안해할 때 왜 문화자원의 고갈은 똑같이 걱정하지 않는가?” 

『문화적 정체성은 없다』에서 프랑수아 줄리앙은 문화와 관련해 자주 혼동되는 보편(universel), 단형(uniforme), 공통(commun)의 개념을 정제함으로써, 다양한 문화가 보편성의 왜곡된 개념인 단형성을 극복하고 서로의 간극을 비춰보는 공통 작업을 통해 각자의 강도(强度)를 높이는 문화적 대화 방법론을 제시한다. 문화적 대화는 개별 문화자원들을 고정된 정체성 간의 상호배제나 상호경쟁의 관계로 고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간극을 인정하는 동시에 서로를 풍성하게 만드는 지성적 모험이어야 한다. 모든 문화권에 적용될 수 있는 문제의식이겠지만,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온전히 정의하지 못한 채 ‘우리의 정체성’을 이데올로기처럼 믿고 있는 ‘우리’에게,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다양한 집단주의로 시달리고 있는 ‘우리’에게 이 저작이 자극제가 되었으면 한다.    


이근세 국민대학교·철학

경희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벨기에 루뱅 대학교 철학고등연구소(ISP)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브뤼셀 통·번역대학교(ISTI) 강사를 역임하고 귀국하여 현재 국민대학교 교양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서양 근대 철학, 프랑스 철학이며, 점차 연구의 초점을 동서 비교철학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저서로 『효율성, 문명의 편견』, 『철학의 물음들』 등이 있고, 역서로 『스피노자와 도덕의 문제』, 『변신론』, 『전략: 고대 그리스에서 현대 중국까지』, 『스피노자 서간집』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