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사회’라는 속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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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택트 사회’라는 속임수
  • 문성훈 편집기획위원/서울여대·현대철학
  • 승인 2020.07.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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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사색]

코로나 19 상황에서 회자된 새로운 용어를 든다면, 이는 단연코 ‘언택트 사회’라는 말일 것이다. 이 새로운 용어는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의 지속적 확산 때문에 비대면이 ‘뉴노멀’이 되는 이른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가리키기 위해 사용된다.

물론 코로나19 상황에서 감염병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면대면 접촉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도 재택근무하고, 온라인 수업에 원격 진료를 받고, 온라인 쇼핑과 비대면 택배로 소비하고, 여행은 랜선으로 하고 친구와는 영상통화, 집밖으로 나가더라도 한적한 곳에서 나홀로 산책하길 원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코로나19 상황에서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코로나19 이전처럼 사람들과 만나서 교류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학교, 직장, 교회, 사찰, 각종 문화 및 체육시설이나 식당, 주점 등에서 아무런 차단 시설도, 아무런 거리 제한이나 인원 제한도 없이 마음껏 만나고 모이기를 원한다.

그런데도 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거론하면서 감염병 종식이 불가능한 것처럼 말하고, 비대면 사회의 도래를 주장하는 것일까? 이와는 반대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그 어떤 감염병도 지금과 같은 팬데믹 상황을 만들어내지 않는 안전한 사회여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 개발이 당면 과제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현재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학술대회는 물론 단행본 서적이 출간되고, 방송국이나 정부, 혹은 지자체 주도의 정책 토론회도 붐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 핵심 주제를 이루고 있는 것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산업 정책이다. 즉 E-커머스, 무인자동차, 온라인 교육, OTT 시장, 5G, 클라우드 서비스 등 비대면 원격 산업을 위한 사회 경제적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논의들은 사실 ‘탈 노동 사회화’를 가속화시킬 수밖에 없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부분들이며, 이에 대한 논의는 코로나19와는 관계없이 그 이전부터 등장했던 것이다. 온라인 뱅킹, GPS를 이용한 자율주행시스템, 온라인 쇼핑과 온라인 교육, 공업 및 농업 생산의 스마트화, 인공지능을 통한 신문기사 작성이나 법률 및 회계 서비스 등.

이 모든 것은 면대면 산업의 붕괴와 이로 인한 대량 실업을 낳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가 제러미 리프킨이 예측하듯이 전체 성인 인구의 5%만 고용되는 탈 노동 사회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만약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도래할 사회가 탈 노동 사회라면, 그 과정에서 대량 실업으로 인한 사회적 저항은 불가피하며, 이로 인해 생계가 망막해질 대다수 국민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 구축 역시 시급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언택트 사회의 도래는 감염병 탓인 양 책임 전가되고, 감염병 종식이 불가능하다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언택트 사회로의 이행이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말해진다. 결국, 언택트 사회라는 말은 아무런 마찰도 없이, 아무런 사회적 안전망 구축도 없이 탈 노동사회화를 은폐하면서도 이를 가속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성훈 편집기획위원/서울여대·현대철학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거쳐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 철학과에서 악셀 호네트 교수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여대 기초교육원 현대철학 담당 교수로 재직 중이며, 『베스텐트 한국판』 책임편집자, 철학연구회 연구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미셸 푸코의 비판적 존재론』, 『인정의 시대』, 공저로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테제들』, 『포스트모던의 테제들』, 『현대정치철학의 테제들』, 『현대페미니즘의 테제들』이 있고, 역서로는 『사회주의 재발명』, 공역서로는 『정의의 타자』 『인정투쟁』 『분배냐, 인정이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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