門化光, 광화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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門化光, 광화문 이야기
  • 김주성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정치사상
  • 승인 2020.06.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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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

“門化光”은 복원 중인 경복궁의 정문 현판이다. 문화재청은 올해 안에 현판을 교체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교체작업이 임박하자 시민단체에서 들고 일어났다. 현판을 훈민정음체로 바꾸자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원형대로 복원하겠다는 입장이고, 시민단체는 차제에 새롭게 바꾸자는 입장이다. 이 논쟁은 과거로 돌아가느냐 미래로 나아가느냐의 갈림길에 선 듯 날카롭기만 하다.

광화문 광장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모이고 수많은 외국인들이 오가는 곳이다. 광화문 광장은 어느덧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간이 되었고, 광화문은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이나 독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게이트 또는 중국 북경의 천안문처럼 세계적인 명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런데 한자현판을 걸고 있으니, 디지털 한글의 나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념물로서는 문제가 없지 않다.

요즘 짜증내는 시민들도 많다. 중국 관광객들이 한복을 입고 광화문 앞에서 ‘좋아라’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이 언짢은 것이다. 마치 자신들의 문화재 앞인 듯 모여들어 떠들고 신나 하는 것을 보면 괜히 심사가 뒤틀린다. 한자현판을 걸고 있는 광화문이 우리의 긍지를 나타내기보다도 중국인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는 듯싶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본 관광객들이 향수를 쫓아 즐겨 찾았던 옛 조선 총독부 건물을 단숨에 폭파해 버렸다. 그런데 그 자리에 광화문을 복원해놓으니까 이제는 중국인들이 몰려들고 있으니, 심사가 편할 리 없다.

사실 우리는 현대에 들어와 문자 사대주의를 청산하고 한글 전용정책으로 위대한 한글문화를 창조해낸 사람들이다. 생기발랄한 한글문화는 한류를 만들고 전 세계인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드라마에서 시작한 한류는 점차 확장되어 온 세계의 대중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이제 BTS 방탄소년단을 모르는 젊은이들은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 세계의 젊은이들은 우리말로 노래를 부르면서 한글을 배우고 있다.

그런데 한류를 꽃피우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門化光” 현판을 제대로 읽을지 알 수 없다. 한자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아마도 띄엄띄엄 “문화광”이라고 읽지 않겠나 싶다. 한글세대의 젊은이들은 현대적인 문자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왼쪽부터 읽을 것이다. 우리의 자랑스런 젊은이들이 광화문 현판을 “문화광”으로 읽는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럽겠는가?

하긴 한글 “광화문”을 ‘문화광’으로 읽었던 유명한 한문 교수도 있었다. 1968년에 콘크리트구조로 광화문을 복원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에 박정희 대통령이 한글로 쓴 “광화문” 현판을 걸어놓자, 이를 조롱삼아 한문현판을 읽듯이 오른쪽부터 “문화광”으로 읽었던 것이다. 광화문 현판을 원형대로 “門化光”으로 바꾸라는 취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고루한 주장이었는지 웃음이 절로 나온다.

문화재청의 주장은 문화재는 원형을 복원할 때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붓글씨의 현판은 원형대로 복원할 수 없다. 붓 호의 움직임으로 표현된 변화무쌍한 생동감은 붓이 아니면 제대로 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광화문 현판은 일본의 도쿄대학에 소장된 흐릿한 사진의 광학 이미지를 2010년에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조합해놓은 것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 스미스소니언에 소장된 사진이 발견되어 보니까 검은 바탕에 금박글씨였다. 그래서 색깔을 바꾸어 걸려는 것이다. 

현판 글씨를 원형대로 복원할 수도 없다면, 전혀 새로운 발상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시민단체의 주장대로, 세계의 명물로 자리잡아가는 광화문이 우리 문화의 정수를 표현하게 하는 것이다. 민족사의 최고 발명품이자 현대한국의 문화 정수인 한글이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훈민정음 해례본의 글자로 광화문 현판을 새겨놓는다면 얼마나 새롭고 의미가 깊겠는가? 디지털 문화의 시대를 앞서나가겠다는 우리의 당찬 꿈을 광화문 현판에 디지털 문자인 한글로 담아놓는다면, 세계인들에게 얼마나 큰 시각문화적인 충격을 줄 것이며, 아울러 우리의 미래 세대들에게 얼마나 큰 자부심을 안겨주겠는가?


김주성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정치사상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거쳐 미국 텍사스대학교(오스틴캠퍼스)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교원대학교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회장, 한국교원대학교 총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자유시민정치회의 공동대표로 있다. 저서로는 <한국민주주의의 기원과 미래>, <페어 소사이어티>,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직관과 구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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