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헤드 과정철학의 관점에서 본 조선조 성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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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헤드 과정철학의 관점에서 본 조선조 성리학
  • 임병태 기자
  • 승인 2020.06.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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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과 조선조 성리학 | 이동희 지음 | 심산 | 352쪽
 

한국의 철학적 전통을 하나의 문화로서 세계화 시대에 내놓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자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퇴계와 율곡을 상식적으로 많이 거론하고 있다. 전통적인 방법인 문헌해설적 연구, 소위 고증학적 연구는 아주 잘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이것을 토대로 약간 보완할 수 있는 작업의 하나로 현대 철학적 해석의 한 시론으로서 화이트헤드(A.N. Whitehead, 1861~1947)의 과정철학(process philosophy)과 주자학(넓게 말하면 성리학)을 비교했다.

주자학의 이런 해석은 동양철학을 현대적 언어논리에서 논해 보려는 의도이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이것을 계기로 우리나라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를 시발로 한 조선조 성리학의 특성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퇴·율 성리학의 근본이 주자의 성리학이지만, 수용하고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우리 나름의 특징이 생겼다고 보고, 그것을 ‘한국의 철학적 사유의 전통’으로 부각하고자 했다.

고려 말 우리나라에 주자학이 들어온 이후 소위 철학적 사유는 조선조 화담 서경덕과 회재 이언적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것이 퇴·율을 거쳐 개화하고, 그 후 이들의 추종자들이 학파 의식을 가지고 경쟁적으로 더욱 부연하는 과정에서 우리 나름의 철학적 사유의 특색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또 사유의 폭도 좀 더 넓어졌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성리학 본질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학파별 전개를 동시에 다룸으로써 역사적으로 조감할 수 있도록 했다.

과정철학은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과 종교론으로서 이 우주를 관념적이고 체계적인 형이상학으로써 설명하려고 하는 사상인 바, 이 자연을 ‘유기체(생명체)’로 보는 점에서는 유기체철학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존재는 ‘과정(process)’이라고 하여 종래의 실체적 존재론을 거부하고 있다. 이는 뉴턴의 근대 물리학에 대해서 양자론이나 상대성이론이 발견한 ‘물질의 미시세계’의 존재의 실상을 철학에서 전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체적이고 고정적인 존재 대신에 끊임없이 생멸하는 존재의 기본 구성요소(基體)로서 ‘현실적 존재(actual entity)’라고 하는 개념을 창출하였다. 이것의 이념적 원리로서 ‘영원적 객체(eternal object)’를 또한 상정하였다. 만물은 이 둘의 유기적 작용에 의해 끊임없이 생멸하는 ‘과정’이라고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만물의 원자성(개체성), 즉 존재(있음)를 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거시세계가 아니라 미시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 미시세계가 거시세계의 기초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거시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즉 일정한 중력이나 태양계 영향력 아래에서 통용되는 근대과학의 물리법칙이 전적으로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 체계는 불필요한 관념의 유희가 아니고, 미시세계의 사물의 실상을 형이상학적으로 체계화한 것이다. 이에 대응되는 성리학의 개념이 ‘기’와 ‘리’이다. 또 화이트헤드의 종교론에서는 ‘신(God)’을 요청하고 있다. 이 세계의 미적 조화의 원인은 역시 자연의 섭리로서 이해할 수밖에 없고, 그것을 화이트헤드는 신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서양 전통의 기독교 신관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특히 그는 위와 같은 형이상학적 지지를 받는 종교만이 타락하지 않는다고 하여 ‘형이상학적 신관(神觀)’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 기독교의 신관과는 다른 점이 또 있다. 일종의 이성종교라고 할 수 있는데, 성리학의 태극론이나 우주적 신비감, 예를 들면, 생생(生生)의 도(道)라든가 천지의 생물지심(生物之心)으로서의 인(仁)과 상통되는 점이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필자가 의미하는 한국철학의 세계화가 갖는 참뜻이 무엇인지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에서 필자는 이러한 과정철학과의 비교 이외에 우리나라 학자들이 성리학을 받아들여 오랫동안 우리 나름의 철학적 사유를 기울여오는 과정에서 한문식 글 읽기와 쓰기에서는 미처 자각하지 못했거나 또는 해결하지 못했던 성리학의 아포리아도 들춰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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