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에 대한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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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에 대한 오해와 진실
  •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출판평론가
  • 승인 2019.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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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올해 출판 관련 이슈 중 하나는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도서정가제 폐지 청원’(10월 14일)이 올라와 30일 만에 약 21만 명의 동의를 받아내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이에 대해 답한(12월 12일) 일이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제기된 70만 건에 가까운 청원 중 20만 명 이상의 동의 요건을 충족해 정부나 청와대가 공식 답변한 것이 모두 130건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에 비추어 봤을 때 상당히 관심을 끈 사안임을 알 수 있다.

도서정가제 폐지 청원은 책값 인상, 지역서점 수 감소, 출판시장 축소, 평균 발행부수 감소, 국민 독서율 감소 등이 모두 2014년 11월부터 시행 중인 도서정가제 강화에 기인한 것처럼 주장한다. 또한 책값 부담이 독자를 책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며 저렴한 책값을 요구한다.
 
책값에 경제적 부담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법한 주장이다. 그런데 이러한 청원인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사실은 찾기 어렵다. 먼저 책값이 인상 추세인 것은 맞지만 전체 소비자 물가지수에 비해 낮은 편이다. 2015년을 기준(100.00)으로 2018년의 출판물 물가지수(103.41)는 전체 소비자 물가지수(104.45)보다 인상률이 낮았다(통계청 물가지수). 또한 도서의 평균 정가는 2010년 12,820원, 2014년 15,631원, 2018년 16,347원으로 도서정가제 강화 이후 더 낮은 수준으로 올랐다(대한출판문화협회 통계).

전통적인 지역서점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인데, 현행 도서정가제에 의해 감소세가 둔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학습참고서 없이 개성 있는 북 큐레이션으로 승부하는 독립서점들이 500여 개 이상 새로 등장했다. 현행 도서정가제 덕분에 과거보다 소매점 간 판매 가격 차이가 줄어들면서 서점이 성장할 환경을 만든 것이다.     

꾸준한 출판사 수의 증가, 학습참고서를 제외한 일반도서 출판시장의 축소, 평균 발행부수 감소와 같은 출판 관련 지표의 변화는 도서정가제 개정의 영향이 거의 없다. 도서 가격 제도의 방식과 무관하게 출판사는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이며, 책의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종이책 시장이 줄고 전자책 시장이 성장한 것은 인터넷, 스마트폰, 유튜브, 넷플릭스 등 디지털 매체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독서인구 감소, 도서구입비 축소, 선호 매체 형태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즉 청원인의 ‘현행 도서정가제가 독자의 책값 부담만 키우고 책 생태계를 망친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논거는 아무것도 없다.

도서정가제는 책값을 높이는 역기능이 크지 않다. 오히려 할인 판매 경쟁에 취약한 대다수의 저자, 출판사, 서점이 공존하도록 환경을 조성해 줌으로써 생산-유통-판매의 다양성을 촉진한다. 이를 통해 독자 입장에서는 다양한 출판사들이 펴낸 다양한 저자의 책을 크고 작은 서점에서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행 도서정가제는 진짜 정가제가 아니라 ‘가격 할인 제한 제도’에 불과하다. 전국 어디서나 동일한 책을 같은 가격에 판매하는 일물일가(一物一價)를 적용하는 것이 ‘진짜 도서정가제’다.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10% 할인과 5% 마일리지 등 15%에 해당하는 직간접 할인을 허용하는데, 이는 할인을 염두에 두고 출판사가 책값을 정하는 거품 가격을 구조화시킨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공급받는 가격(공급률)이 높은 소형 서점들은 인터넷서점처럼 할인을 하기 어려워 도태될 수밖에 없다. 또한 카드사 등이 제공하는 추가 할인율을 민간 협약에 따라 15%까지 인정하는 등 문제가 많다. 할인을 불허하는 완전한 도서정가제가 될 때 거품 가격이 내리고 곳곳에 더 많은 서점이 생길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져 시장이 커지고 독자에게도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 책값은 부가가치세(10%)가 면세되어 원천적으로 10% 할인 효과가 존재한다. 또 웬만한 책은 공짜로 도서관에서 실컷 빌려 볼 수도 있다.

책과 관련된 모든 사람이 책값이 저렴한 사회를 바란다. 그러려면 역설적으로 독자와 도서 구매 인구가 대폭 증가해야 한다. 책값에 대한 불만은 도서정가제 파괴가 아닌 강화를 통해 풀어야 한다. 오해와 착각은 자신의 이익은 물론이고 사회적 이익까지 해친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출판평론가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로 한국출판학회 부회장 겸 출판정책연구회장, 일본출판학회 정회원이다. 대학에서 출판문화론 등을 강의한다.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문화체육관광부 규제개혁위원, 서울도서관 네트워크 위원장, 경기도 지역서점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한국출판산업사』를 썼고, 옮긴 책으로 『서점은 죽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책』, 『책의 소리를 들어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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