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학기, 역지사지의 실천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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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학기, 역지사지의 실천은 어렵다
  • 정성아 경북대·정보통신공학
  • 승인 2019.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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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교수 단상]

부임 후 맡은 첫 수업이 공식적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기말고사 답안지를 걷고 사무실에 돌아오니 안도의 한숨과 아쉬움이 섞여 나온다. 첫 학기 동안 느낀 소감은 “역지사지 실천의 어려움”이다. 교수가 되고 싶다는 당돌한 꿈을 꾸게 된 것은 대학원의 지도 교수님 덕분이다. 어느 상황에서나 본인 자신보다 학생을 먼저 생각해주시며, 대학원 시절 그리고 졸업 후에도 정신적 지주로서 항상 응원해주시는 지도 교수님을 뵐 때마다 교수라는 직업의 꿈을 맘속에서 키워왔다. 33년의 인생 중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꼽으라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학원 시절이라 말할 수 있을 만큼, 남들이 가장 힘들고 고달팠다고 말하는 석·박사과정 기간이 내 인생에서는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던 기억 중의 하나이다. 모든 교육 과정을 마친 후, 기업에 입사하여 동료들과 대학원 시절에 관해 이야기할 때마다 “정말 축복받은 대학원 생활을 했구나”라는 감사함에 지도 교수님께 맘속으로 감사 인사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감사함을 보답하는 길은 후배 공학도들에게 같은 경험을 선사해줄 수 있는 교육자가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사명감에 교수의 문을 두드린 결과, 2019년 9월 교수가 되어버렸다.

첫 강의를 하기 전, 주위의 동료, 친구, 선후배, 교수님들에게 근심 어린 많은 조언과 격려를 받았었다. 대부분의 걱정은 성인으로서의 미래를 혈기왕성하게 시작하는 대학 학생들에게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영향력을 전파해야 하는 직업의 무게감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부임 전 강의를 준비할 당시 본인은 교수라는 직업을 조금은 아니 꽤 만만하게 보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본인도 학교를 벗어난 지 2년이 채 안 된 시점에서, 학생들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이해가 많을 것이므로 학생들에게 좀 더 편안히 다가갈 수 있는 교수가 되지 않겠냐는 안일한 생각으로 첫 학기를 준비했던 것 같다. 하지만, 2019년 가을학기 첫 수업을 마치고 나서 사무실에 돌아와 느낀 소감은 첫 학기를 마무리한 지금과 같았던 거로 기억한다. 끝났다는 안도의 한숨과 생각처럼 진행하지 못했던 첫 수업에 대한 아쉬움.

맹자의 “이루편(離婁編)”에 나오는, ‘상대의 처지에서 생각한다’는 뜻으로 널리 사용되는 사자성어 ‘역지사지.’ 원전에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으로 표기되어 “처지를 바꾸어도 한결같이 그렇게 한다”라는 본연의 뜻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인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역지사지’라는 사자성어에 대해, 혹자는 한국만의 독특한 해석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을 한다. 자주 즐겨 쓰는 ‘역지사지.’ 말처럼 그리 쉽지 않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만드는 첫 학기였다. 덕담과 조언에 한마디 넣기는 쉬울 수 있으나, 남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고 행동에 옮기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닐 수 없다. 교수로서 ‘역지사지’의 실천은 무엇이겠는가. 학생들을 배려하고 학생의 보폭에 맞추는 것이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 내에 학생들에게 지식을 공유하고 이해시키며 이를 기반으로 평가를 해야 하는 성과 위주의 교육 시스템에서 그런 것이 쉽겠는가. 말로는 학생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려 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본인에 대한 합리화와 함께 학생을 생각하지도 그들을 위해 특정 행동을 실천에 옮기지도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역지사지’는 구체적인 실천지침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 학기는 배려와 격려가 필요한 학생이 없는지,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수줍은 학생들이 없는지 살펴보고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네는 교수가 되어야겠다.


정성아 경북대·정보통신공학

한국과학기술원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를 했다. 현재 경북대학교 IT대학 전자공학부 조교수로 있다. New Jersey Institute of Technology 방문학자, 그리고 한국과학기술원 및 하버드 대학 박사 후 과정을 거쳤으며 Samsung Research의 Staff Engineer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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