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의 일상과 인생의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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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의 일상과 인생의 재미
  • 황경식 서울대 명예교수·철학
  • 승인 2020.06.0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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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

대부분의 학자들은 자신이 업으로 삼는 주제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얽매여 살고 있다. 그 일 이외에 특별히 관심을 갖는 다른 세상사나 과외로 몰입하는 취미를 갖는 학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자니 대부분의 세상사에 어두운 편이고 정해진 일상 이외에는 특별히 재미있는 일도 없는 편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대체로 고지식하고 따분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이삼십 년 살다 보면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길들여져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게 되고 또한 한눈을 팔지 않고 한 우물을 파는 것이 훌륭한 학자의 미덕으로 생각하며 판에 박힌 학자의 일상을 천직으로 간주하게 된다. 물론 자신의 본업에 몰두하게 되면 업적과 성과를 내는 유능한 학자가 되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퇴직하여 본업에서 물러나게 될 때 생겨나게 된다. 퇴임 후 한두 해는 그런대로 지금까지 해오던 일에 길들여진 방식대로 살아가는 일이 편하다. 그래서 무언가 계속 연구하고 구상하고 글을 써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도 퇴임 후 4~5년이 넘어가면 해오던 일에도 회의가 생기고 능률도 떨어진다. 드디어 정년한 지 10여 년이 넘어가게 되면 어느덧 지금까지의 일상이 허망하게 느껴지고 그야말로 무기력에 젖어 든다.

필자는 퇴임한 지 어언 10여 년이 가까워져 오는 사람이다. 그래서 후배 학자들을 만나거나 스승의 날 모임에서 한 말씀 부탁을 받으면 으레 인생이란 무대에는 다양한 소도구도 필요하니 본업에 힘쓰는 일과 더불어 다양한 취미생활도 계발하라고 당부한다. 갖가지 운동도 좋고 그림 감상도 도움이 되며 노래나 악기를 배우는 일도 인생의 무료함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된다. 그야말로 영·수·국만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예·체능 또한 절실히 필요한 때가 온다는 말이다.

달리 말하자면 인생에는 ‘의미’도 중요하지만 ‘재미’ 또한 소홀히 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인생이란 짧은 듯하기도 하나 때로는 의외로 길고도 지루할 때가 있으며 심심한 게 인생인 것이다. 바람직한 인생행로를 꾸려가기 위해서는 올바른 철학과 가치관도 필요하겠지만 잘 정립된 무대에는 각종 소도구의 장식을 통해 인생의 재미를 추구하는 일 역시 소중하다 할 것이다. 그래서 인생에는 의미와 더불어 재미 또한 심각하게 고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참고삼아 필자는 부부가 함께 하루 1시간 이상 산보를 통해 동네 분들과 사교를 즐기며 한 달에 한 번 부부 노래모임을 가져 선생님을 모시고 민요와 가요 등을 배우며 흥을 돋우기도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지난 20여 년간 고미술을 취미로 삼아 감상과 더불어 수집을 해오고 있다. 그래서 그간 수집해온 도록을 정리해서 한 권의 책으로 묶을 준비를 하고 있다. 가제로는 ⌜고미술의 매력에 빠지다 – 어느 철학자의 외도⌟로 정했다. 이 모두가 인생의 심심풀이를 위한 몸부림이 아니겠는가?


황경식 서울대 명예교수·철학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7년 존 롤스의 《정의론》을 번역한 후 풀브라이트(Fulbright) 장학금을 받아 1980~1981년 하버드 대학교 철학과 대학원 방문 연구원(visiting fellow)으로 있으면서 롤스에게 지도받았다. 그 후 한국윤리학회, 철학연구회, 한국철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동국대학교와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및 의료법인 명경의료재단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사회정의의 철학적 기초》, 《개방사회의 사회윤리》, 《이론과 실천》, 《시민공동체를 향하여》, 《철학과 현실의 접점》, 《자유주의는 진화하는가》, 《덕윤리의 현대적 의의》, 《정의론과 덕윤리》, 《법치사회와 예치국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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