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끼운 첫 단추, 교원노조법 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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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끼운 첫 단추, 교원노조법 개악
  •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 승인 2020.05.3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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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직설]

헌법재판소는 2018년 8월 30일 대학교수들도 ‘학생들에 대한 지도·교육이라는 노무에 종사하고 그 대가로 받는 임금·급료 그밖에 이에 준하는 수입으로 생활하는 사람’이므로 이들은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헌법재판소의 기존 결정을 인용하면서 대학교수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를 갖지 않는다는 당시 교원노조법 제2조에 대하여 헙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또한 관련 법률을 올 3월 31일까지 고치라고 했다. 그러나 모두가 잘 알듯이 국회의 입법 태만이 이어지면서 헌법재판소가 요구한 시한은 지나버렸다. 따라서 그 규정의 효력이 상실됨으로써 교수들은 당시 교원노조법에 따라 단결권 등 노동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으며, 당연히 교수들은 광역단위 또는 전국 단위의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설픈 참사가 일어났다. 임기를 며칠밖에 남겨두지 않았던 20대 국회의원들이 마치 밀린 숙제 처리하듯 일사천리로 법률들을 개정한 데 이어 숙의가 필요한 교원노조법마저 선무당이 사람 잡듯 개악하고 말았다. 이에 여러 차원에서의 검토와 토론이 필요하지만 꾹 참고, 몇 가지만 지적하고 싶다.

첫째, 국회는 정부 발의안보다 후퇴한 사안을 입법하고도 자신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차라리 정부의 개정안은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존중하기라도 했다. 다시 말해 이번 국회는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는 사람의 범위는 교원뿐만 아니라, 교원으로 임용되어 근무하였던 사람으로서 노동조합 규약으로 정하는 사람’에 이르게 된다는 정부 개정안조차 배제했다. 7년 동안 한국사회의 몽매함을 반증하던 전교조 법외노조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변곡의 단초를 국회 스스로 걷어차 버렸을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정년을 맞이하거나 중간에 그만둔 학자들이 노동조합이라는 사회경제적 공동체를 통하여 생계를 유지하고 학문생태계를 이어나갈 여지마저 차단해버린 것이다. 교원, 특히 대학교수는 하나의 직업이기 이전에 학문의 계승자라고 하는 운명을 짊어진 학자이자, 사회의 어두운 곳을 비춰야 하는 무한의 헌신자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개인이면서도 집단이고, 혼자만의 고독자이면서 공동의 연대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의 노력과 헌신, 사회와 국가의 배려 그리고 이들의 공동체가 함께 일구는 광범위한 사회경제적 방파제, 즉 교수라는 계약적 직업 여부에 매몰되지 않고 학문생태계의 커다란 공동체를 떠안은 노동조합이 가능할 때에야 비로소 대학교수들은 학문연마와 교육에의 초심을 죽는 순간까지 흩트리지 않고서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국회는 이번 개악을 통해 노동조합의 설립 단위를 개별 학교로 넘겨버렸다. 물론 이번 정부 개정안을 비롯하여 대학교수들 사이에서 학교 단위의 노동조합이 적합하다는 견해도 있었다. 하지만 학교 간 이동이 거의 없거나 불가능에 가까운 한국의 대학사회에서 학교 단위의 노동조합이 주류를 이룬다면 이 노동조합은 가장 낮은 차원의 노동권만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초·중등이든 대학이든 교원의 노동조건은 여전히 국민국가 단위의 교육철학, 사상, 정책 등을 전제하는 교육체계와 교육과정 그리고 학사가 관철되기 때문에 교원, 특히 대학교수들의 노동조합은 전국 단위로만 설립할 수 있어야 최소한의 교섭을 위한 소통이 가능한 것이다. 대학 자율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온갖 진단 또는 평가와 재정지원을 미끼로 고등교육기관을 옥죄는 한국에서 과연 대학 자율성을 전제하는 개별 학교 단위의 노동조합이 제 역할을 할 수나 있겠는가? 더욱이 학교 단위의 노조가 주류를 이룬다면, 교수의 사회적·경제적 조건을 상향평준화하여 국가 단위의 균질한 수준을 유지하고자 하는 정책을 전혀 펼 수 없다. 교수의 지위는 고등교육의 질과 상관성을 갖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 단위로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면 막강한 학교법인과 한편인 ‘어용노조’가 탄생할 수 있다는 항간의 지적 역시 매우 현실적인 판단이다. 전국 단위로 설립되는 교원노조에 가입한 중등교원을 사립학교에서 대체로 찾아보기 어려운데, 이는 중등교원의 경우 학교 단위의 노조 설립이 불가능하기에 최소한 교원노조법의 취지에 위배되는 어용노조가 설립될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셋째, 어설프게 개정하다 보니 ‘교원의 노동조합은 일체의 정치활동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제3조와 ‘교원노동조합과 그 조합원은 일체의 쟁의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제8조를 삭제하기는커녕 오히려 교수의 노동조합에까지 적용해버리는, 시대착오적 개악을 저질렀다. 시민의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는 법률에 해당하므로 애초 삭제되었어야 할 내용이었음에도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성찰의 부재를 드러내는 인권불모지의 전형적 상징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이번 교원노조법 개정은 단연코 잘못 끼운 첫 단추이므로 다시금 이를 모두 뜯어내야 한다. 가볍게 숟가락 하나 얹은 자의 목소리가 아닌, 지난 20년 동안 찬비 맞으면서도 교수노동조합의 합법화와 교육 민주화 그리고 대학 자치를 일관하여 외쳤던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여 지난 2018년 8월 30일의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다시 출발하기를 바란다.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인제대학교 공공인재학부 교수로 <교수평의회> 의장을 맡고 있다. <민주법학> 편집위원이며, 전공은 계약법으로 교육법, 인권법, 주택법, 법여성학 등에도 관심이 많다. 저서로 『여성과 몸』(공저, 2019), 『대학정책, 어떻게 바꿀 것인가』(공저, 2017), 『민법사례연습』(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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