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거대한 SKY 캐슬...사라진 ‘대학 서열화 완화’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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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거대한 SKY 캐슬...사라진 ‘대학 서열화 완화’ 공약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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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대 총선 당선자 37%가 'SKY' 출신…'인서울 대학'은 79%
- 대학 서열화, 학벌·학력주의…지방대학의 위기
- 대학의 공공성 강화…대학통합네트워크 구축?
▲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제정 100만 서명운동(사진제공=사교육걱정없는세상)
▲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제정 100만 서명운동(사진제공=사교육걱정없는세상)

한국사회에서 대학은 학생의 역량 개발보다 특정대학 출신이라는 신분 획득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출신대학에 따라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걱세)은 우리나라 국가 권력의 핵심인 입법부・사법부・행정부 고위 공직자의 출신대학을 분석한 바 있다. 분석 결과 대한민국은 거대한 SKY캐슬로 SKY대학 출신들이 국가 핵심 권력의 50% 이상을 독점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불과 세 곳의 대학 출신들이 국가 요직의 50%~70% 이상을 압도적으로 점유하는 것은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을 필연적으로 야기하고, 특권 계층과 학벌을 형성, 국가의 정책 결정에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대학 서열화는 우리 교육문제의 핵심적 진앙지고 블랙홀이다. 모든 전공에서 출신 대학을 기준으로 획일적인 대학서열화 구조가 존재하는 우리나라야말로 대학서열화의 폐해가 클 수밖에 없다.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특정 대학이 특권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던 관행과 학벌주의를 없애고, 특권 대물림의 통로가 된 교육의 중단을 위한 제도 마련을 국회와 정부에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 21대 총선 당선자 37%가 'SKY'…'인서울 대학'은 79%

지난 4·15 총선에서 당선된 21대 국회의원 가운데 ‘SKY대학’(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이 40%에 근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을 포함해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국회의원 비율은 79%로 조사됐다. 국회에서도 대학 서열화로 인한 특정 대학의 편중 현상이 여전하다는 증거다.

사걱세는 지난달 2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의 후보자 명부와 포털사이트의 인물정보 등을 종합한 결과, 이번 총선 당선자 가운데 SKY대학 출신이 전체 당선인 300명 중 112명(37.3%)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대학원을 SKY대학으로 진학한 경우인 19명을 합하면 SKY 출신 국회의원은 131명(43.7%)으로 늘어난다. 이들을 포함해 학부나 대학원을 소위 인서울 대학, 즉 서울 소재 대학에서 졸업한 당선자는 238명으로 79%에 해당한다.

사걱세는 "‘대학알리미’에 등록된 대학이 416개임을 고려하면 단 세 개 SKY대학 출신이 전체 국회의원 당선인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며 "권력의 지나친 집중이라는 측면에서 우려스럽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고려할 때 '인서울' '지거국' '지잡대' 등 용어를 사용하며 대학을 구분하거나 차별하는 경향이 심각한 상황에서 국회의원 비중이 인서울 대학에 치우친다면 수도권과 지방의 불균형 해소 문제와 지방대 육성 문제 등을 균형있게 풀어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사걱세는 대학서열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2017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내세웠던 '대학서열화 완화' 공약을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걱세는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거점 국립대와 공영형 사립대를 육성하고, 한국형 네트워크대학 구축을 통해 대학서열화를 완화하겠다고 했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나온 국정과제에는 '대학서열화 완화'라는 표현이 사라졌다"며 "공영형 사립대 정책은 예산 전액 삭감으로 인해 아직 첫발도 내딛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대입 제도 공론화 과정도 수시·정시 비율의 조정에만 머물렀을 뿐 교육을 통해 특권이 대물림되는 현상에 대한 대안은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면서 "대입 제도 개선을 넘어 근본적인 대학서열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이번 총선의 민주당 공약에선 아예 공약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다. 사걱세는 "이번 총선에서 여당은 국회 의석의 5분의 3을 확보함으로써 강력한 국민적 지지 위에서 문재인 정부의 집권 하반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며 "21대 국회와 정부는 대학서열화 완화와 같은 근본적인 개혁 과제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대학 서열화, 학벌·학력주의…지방대학의 위기

우리나라만큼 대학이 서열화되고 학벌을 중시하는 나라는 많지 않을 것이다. 지방대 출신은 입시경쟁에서 낙오됐다는 그릇된 인식과 함께 '지잡대'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대학 우월주의를 조장한다. 무엇보다 계속되는 청년실업난 속에 지방대생들의 취업문은 더욱 좁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5월 사걱세가 실시한 '대학서열화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절반 이상이 대학 서열화로 인해 취업, 승진 등에서 불이익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309명 중 69명이 자신 또는 주변사람이 겪은 경험이었으며, 이 중 44건이 취업, 승진, 직장문화 등과 관련한 응답이었다.

취업과 승진과정에서 겪은 사례로는 ▲면접에서 상위권대학 출신을 내정한 경우 ▲지방대라서 서류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경우 ▲일을 아무리 잘해도 상위권 대학 출신보다 승진이 느려지는 경우 등을 꼽았다. 또 ▲업무성과를 서열높은 대학졸업자의 성과로 치부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비하 발언 ▲업무분장에서도 대학서열이 반영되는 경우 등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응답자 A씨는 "채용 과정에서 면접 단계까지 갔다. 회사 데스크에서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특정 대학 출신자를 내정했는데 혹시 몰라서 면접까지 올렸다고 했다. 그런데 내정된 사람의 출신대학이 KAIST였고, 나는 지방대였다"고 전했다.

응답자 B씨도 "전에 근무한 적이 있는 직장에서 SKY 출신이 요직을 독차지하고 있었고, 그들의 승진이 상대적으로 빨랐다"며 "팀 단위로 일을 하면 팀원 중에 있는 SKY출신들이 조명을 많이 받았다"고 설명했다.

'어느 유형의 대학서열화가 가장 문제인가'라는 질문에는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소위 SKY대학과 비SKY대학 간 차별이 가장 큰 문제'라고 응답한 비율이 37.5%로 가장 높았다. 이어 서울 소재 대학, 수도권 대학, 비수도권 대학 등 '대학 소재지에 따른 차별'이 31.7%, '상위권과 비상위권대학 간 차별'이 27.8%로 집계됐다.

'대학서열화가 해소되지 않는 이유(복수응답)'로는 응답자 76.1%가 '경쟁과 서열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의 풍토'를 꼽았다. 다음으로 '대학을 입학성적으로 서열화하는 관행이 굳어져서' 61.5%, '대학 혹은 전공의 특성화가 이뤄지지 못해서' 29.1% 순이었다.

김상봉 교수(전남대 철학과)는 사걱세와의 인터뷰에서 "대학서열화는 모든 학생에게 내면의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시험 성적으로 인간이 상품화되는 가운데 근거 없는 우월감과 열등감이 상처로 남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적이 학생들의 진로 선택에 있어 진입장벽이 되고 있는데 점수 위주의 진학지도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며 "대학서열이 사라진다면 간판을 위해 대학에 갈 일이 없어지고 그렇게 되면 초중등교육도 살아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열과 학비 없고 교육기회와 교육수준을 보장하는 독일식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김누리 교수(중앙대 독문과)도 사걱세와의 인터뷰를 통해 ‘교육이 아버지의 돈 지갑 부피에 따라 좌우되는 것은 야만’이라며 한국도 대학을 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경쟁을 통해 서열화 시켜야 학문 수준이 높아진다는 말은 옳지 않다며,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를 원하는 때에 갈 수 있는, 그리하여 성적에 매이지 않고 누구나 잠재력을 발현하는 대학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 대학 서열화 해소 방안은?…대학의 공공성 강화, 대학통합네트워크 구축

이른바 '대학 서열화' 문제는 이전부터 계속 논란이 되어 왔다. 대학 서열화는 획일적인 점수 위주의 입학 사정기준과 맞물려 학생들로 하여금 과도한 입시 경쟁을 부추기며, 이에 따른 ‘교육열’도 한계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상위권의 성적을 거둔 학생이 서울 및 수도권대학을 입학하고, 그렇지 못한 학생은 지방대학으로 밀려나고 있는 대학서열 구조는 실질적으로 대학들 간 경쟁에도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대학 서열화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대학통합네트워크 구축'을 제안했다. 10개 거점 국립대학을 ‘제도적’으로 통합하고, 이후 지역 중심 국립대학들과 공영형 사립대학, 독립형 사립대학들까지 포괄해 인적·물적으로 공유하고 협력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교육 공약 중 하나이기도 했다. 대학통합네트워크는 국공립대 위주로 공동 입시, 공동 학위 운영 등으로 수평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어, 수직적인 대학서열화를 극복하고 고등교육을 혁신하자는 담론이다.

대학통합네트워크는 '대학서열화 해소'라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대학평준화' 또는 '하향평준화 우려'를 이유로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실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국가교육위원회법 등은 아직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 지난 2월 19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2020~2025년 대학통합네트워크 현실화 경로와 방안 토론회'
▲ 지난 2월 19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2020~2025년 대학통합네트워크 현실화 경로와 방안 토론회'

지난 2월 교육계는 국회에서 '2020-2025년 대학통합네트워크 현실화 경로와 방안' 토론회를 열고 서울대 등 거점 국립대 10곳이 공동 학위·입시를 운영하고 연구 역량을 강화하자는 내용의 '대학통합네트워크' 계획을 공개했다.

2016년 기준 입학 정원 6.9%(3만8813명)를 점유한 서울대와 부산대 등 10개 거점국립대를 한국1대학, 한국2대학과 같이 제도적으로 통합하며, 예산 등 회계는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골자다. 2단계로는 공영형 사립대를 중심으로 수도권 사립대를 포함한 10개 대학을 연합 네트워크 형태로 참여시킨다. 여기에 필요한 추가 예산은 1년에 3조~5조원으로 추산됐다.

한국교육개혁전략포럼 김종영 정책위원장(경희대 사회학과)은 "지방 거점국립대를 세계적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으로 성장시켜야 한다"며 "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에서 연구중심대학이 부상하는 동안 한국 대학은 연구 역량에서 정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정책위원장은 "대학통합네트워크는 대학병목체제를 막고 교육의 다원적 기회구조를 구축하는 것으로서 국가 프로젝트가 돼야 한다"며 "시민사회, 학계, 정부의 광범위한 연대와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대 포함 여부, 단계적 추진 여부, 대학 입시 정책과의 관계 등 세부적인 설계를 놓고 교육계 내부에서도 여전히 이론이 많다. 임재홍 방송대 교수(교육혁명포럼 연구위원장)는 그동안 대학통합네트워크 담론이 현실화의 추진 동력을 얻는 데 실패한 요인으로 “대학 평준화에 대한 사회 일부의 거부감, 제도 도입에 따른 혼란, 국립대학 서열화에 따른 서열 높은 국립대 구성원의 반대 등”을 지적했다.

게다가 정치권의 관계자들 자체가 기득권인 문제도 크다. 그들 자체가 스카이 출신인 만큼 정치적 스펙트럼은 달라도 여야를 떠나 학벌로 맺어진 학벌 카르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일부에서는 지적한다.

소득격차가 교육격차로, 교육격차가 학벌격차로, 학벌격차가 취업·승진격차, 다시 소득격차로 이어지며 불평등이 심화되고 특권이 대물림되는 사회는 공정사회가 아니다. 공정사회는 부모의 배경 없이 자신의 노력으로 원하는 삶을 살고, 열심히 노력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주어지는 사회이며, 명문대학, 인서울 대학을 꼭 나오지 않아도 삶이 위태롭거나 차별을 받지 않는 사회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공정사회로 가는 첫 출발은 대학 서열화와 학벌사회의 해체다. 대학 서열화를 해소하고 줄세우기 교육을 멈추기 위해서는 대학의 공공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가가 공공성을 추구할수록 대학들이 평등해지고 학생들이 소모적인 경쟁에 내몰리지 않게 된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더라도 대학 서열화 해소를 위한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으로서 대학통합네트워크 구축을 본격적으로 고민해 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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