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을 통한 경계 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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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을 통한 경계 넘기
  • 이명원·경희대 교수/문학평론가
  • 승인 2020.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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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원의 에크리티시즘] 한국에서의 오키나와 문학 이해의 가능성

한국에서 오키나와를 검토하는 것은 일본에서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나는 생각해왔다. 일본학(日本學)의 하위범주로서의 오키나와학이 아니라, 오키나와학으로서의 독자적 성격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오키나와 문학에 대한 이해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일본어로 쓰여진 ‘일본어문학’이고, 일본의 중앙문단에서 보자면 ‘지역문학’이지만, 이러한 규정에 포섭되지 않는 독자성과 주체성, 체계성을 갖는 개별문학이다. 일본어문학이면서도 개별문학으로서의 독자성과 주체성, 체계성을 갖는 또 다른 문학은 아마도 재일조선인·한국인 문학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한국에도 번역을 통해 점차 알려지고 있는 『화산도』의 작가 김석범이라든가 이진경에 의해 ‘전설적 시인’으로 고평되고 있는 재일 시인 김시종이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
 
오키나와 문학이나 재일 한국인·조선인 문학은 경계에 서 있는 문학이고, 그것을 넘는 문학이며, 경계의 안과 밖에서 종래의 민족문학 혹은 국민문학 범주가 포섭할 수 없는 또다른 문학이 존재하고 있으며,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관습적 지평의 경계 혹은 그 너머의 문학이다.
 
이런 문학작품을 읽는 행위는 단순히 심미적 쾌를 충족시키기 위한 행위로 멈추지 않는다. 텍스트 자체가 복잡한 역사적 경로에서 형성된 기억과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읽는 방식도 단순한 문예비평 이상의 심층적 분석을 요구한다. 동시에 이런 문학작품들을 읽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그것은 단순히 ‘외국문학’이나 ‘디아스포라 문학’과 같은 개념으로 환원되기도 어렵다. 작품을 작품 자체로 향유하면서도, 작품을 둘러싼 종횡의 맥락과 함축을 이해하면서 그것의 현재적 의미를 대화적으로 탐구해 나가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보면 텍스트를 해독하고 재구하는 작업 자체가 단순한 의미론적 실천 이상의 성격을 띠게 된다.
 
오키나와 문학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최근 새롭게 우리에게 소개되고 있는 문학들을 우리는 어떠한 관점에서 검토해야 할까. 일본 본토의 문학과는 달리 독자적인 체계성을 지닌 오키나와 문학에 대한 소개는 최근 들어서 활발해지고 있다.

선집의 형태만 보더라도 『오키나와 현대소설선: 신의 섬』(2016), 『오키나와 문학의 이해』(2017), 『오키나와 문학선집』(2020) 등 세 권이 나와 있다. 개별작가 선집으로는 『오시로 다쓰히로 문학선집』(2016)이 나와 있고, 개별작가의 작품집으로는 『긴네무집: 마타요시 에이키 작품집』(2014)과 『어군기: 메도루마 슌 작품집1』이 변역 출간된 바 있다.
 
번역작업만 보면, 한정된 번역자들이 오키나와 문학 번역에 열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정력적인 번역을 하고 있는 이는 곽형덕인데, 그는 『오키나와 문학선집』과 『긴네무 집』, 『어군기』 등을 번역했고, 『오키나와 현대소설선: 신의 섬』에서 마타요시 에이키(又吉栄喜)와 메도루마 슌(目取真俊)의 소설과 작가 대담을 번역했다. 『오키나와 문학의 이해』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번역했다. 손지연의 경우는 주로 「칵테일 파티」로 아쿠타카와상을 수상한 바 있는 오시로 다쓰히로(大城立裕)에 관심을 두고 번역과 소개를 해왔으며, 조정민의 경우는 사키야마 다미(崎山多美)의 단편소설을 번역했다. 메도루마 슌의 『혼 불어넣기』(2018)가 유은경에 의해 최초로 번역된 이래로, 2010년대 중반 이후 오키나와 문학에 대한 번역과 논의가 점차 활발해졌다는 것을 이로써 알 수 있다.
 
이들의 번역을 통해서 오키나와 문학은 한국에서 아직까지는 대중적 환대를 받지는 않은 상황이긴 하지만, 적어도 초보적 소개와 이해의 기반은 갖추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오키나와 문학이 왜 한국에서 새로운 번역과 논의의 통로이자 가능성으로 기능할 수 있게 되었는가. 나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항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오키나와와 한반도 역사의 ‘가족 유사성’ 문제이다. 근대전환기까지 오키나와는 류큐왕국이라는 독립주권을 갖고 있다가, 일본에 의해 식민화되어 현재까지 사실상 내부식민지로존속하고 있다. 1910년 구(舊) 일본에 의해 식민화된 한반도와 오키나와의 상황은 상당 부분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1945년 이전에 산출된 오키나와의 문학은 이러한 식민지적 상황 아래서의 오키나와인의 고뇌를 잘 드러낸다. 이것은 당대 조선문학의 대응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 역할을 한다.
 
둘째, 전쟁과 냉전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오키나와는 1945년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 전쟁을 겪었고, 이후 미국의 점령통치가 1972년까지 이어져 한국과 유사한 냉전의 최전선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지화에 따른 각종의 사회문제를 경험한다. 이것은 한국전쟁을 경험하고, 냉전체제에 편입되는 한편, 미군 기지문제가 초래한 각종의 사회문제에 직면한 한국의 ‘기지촌’을 대상으로 한 문학과 오키나와 문학이 상당한 관련성을 갖게 되는 계기를 이룬다.
 
셋째, 탈식민과 민주화 문제. 1987년의 시민항쟁을 거치면서 한국은 민주화의 성숙궤도에 들어섰지만, 1972년 오키나와는 일본에 재귀속되게 됨으로써 일종의 ‘재식민지화’ 상황에 빠져든다. 그러는 한편에서 오키나와 전쟁 당시의 일본군에 의한 ‘집단자결 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토지수용 문제’ ‘기지반환/신기지 건설 문제’ 등이 점화되는데, 이 과정에서 탈식민과 민주주의의 문제가 문학을 통해 적극 사유되어 왔다.
 
이러한 세 가지 주제영역들이 오키나와 문학에는 잘 담겨있다. 1945년 이전까지의 문학은 대체로 일본에 의한 식민지화 과정에서 차별과 피지배의 대상이 된 오키나와인들의 일본으로의 동화(同化)/이화(異化)의 문제가 주된 탐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1945년 이후 미국에 의한 점령통치기의 문학은 오키나와 전쟁의 상흔(傷痕)을 적극 음미하면서도, 가혹한 미군통치에 대한 상징적 저항과 해방, 일본으로의 귀속/탈귀속 등의 문제가 적극적으로 환기된다. 1972년 이후 현재의 문학에서는 오키나와 전쟁을 비일(非日)/비미(非米)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극복하면서, 오키나와적 주체성을 적극적으로 환기시키는 문학이 등장했는데, 이것이 최근 오키나와 안에서도 사회적 의제화가 되고 있는 ‘독립지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확언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보면, 한국에 수용되는 오키나와 문학은 거시적 범주에서는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의 문제의식을 함축하고 있고, 그런 가운데 오키나와의 자립과 주체성, 혹은 더욱 급진적으로는 독립지향의 가능성까지를 서사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이다. 특히 한국문학과의 비교문학적 탐구를 통해서, 우리는 문학의 보편적 기능에 대해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오키나와 문학이 한국에 번역 소개된 이후 제주 4.3문학과의 매우 활발한 논의가 전개 된 바 있다. 섬으로 상징되는 공간적 공통성과 함께, 본토와의 관련성 아래서 섬주민이 희생되어야 했던 비극적 역사는 오키나와 문학, 제주 4.3문학, 타이완 2.28문학과의 접점이 가능해지는 부분이다. 이른바 한국의 ‘분단문학’ 역시 오키나와 전쟁문학과의 비교검토가 가능하고, 87년 6월항쟁에 이르는 시민문학의 진전과정 역시 오키나와 안에서의 ‘반기지투쟁’을 포함한 민주주의 의제와 관련한 논의 역시 가능한 것이다.
 
식민지 시기의 조선문학 역시 오키나와 문학과의 비교검토가 가능하다. 특히 오키나와와 식민지 조선 모두 ‘민족어’와 ‘민족주권’의 상실이라는 공통적 압력에 처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문학뿐만이 아니라 ‘문학사상’의 측면에서도 곱씹어 볼 대목이 적지 않다. 아마도 이런 저간의 사정이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오키나와 문학 번역이 활성화되는 경향이 더욱 촉진될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나 보충될 부분도 없지 않다. 그중 오키나와 문학 번역의 체계화된 정본화 작업을 환기시키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 오키나와 문학선집
▲ 오키나와 문학선집

오키나와와 일본 쪽에서 선집의 형태로 출간된 저작은 다음 세 권을 들 수 있다. 1) 『오키나와 근대문예작품집』(오키나와타임스사, 1991). <신오키나와문학>의 별책부록으로 편집된 것으로, 류큐왕국의 주권상실로부터 1945년까지의 작품을 수록한 선집이다. 2) 『전쟁문학: 오키나와 끝나지 않은 전쟁』(2011). 전쟁문학이라는 관점에서 전후 오키나와 문학을 수록한 선집이다. 3) 『오키나와 문학선: 일본의 끝에서 묻는다』(2012). 류큐왕국의 주권상실로부터 현재까지의 오키나와 문학을 대표작을 선정해 연대기적으로 묶은 선집이다.
 
이 세 판본의 오키나와 문학선집은 선집 편집의 초점이 다르고, 각각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어떤 판본이 더 정본에 가깝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국에서 오키나와 문학 선집의 정본을 만든다고 했을 때는, 또 한국의 비교문학적 상황을 고려하면서, 오키나와 문학의 독자성도 ‘전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 번역 출간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번역자들 개인의 열정과 함께, 번역출간에 따르는 판권계약 등을 포함한 각종의 잡다한 문제들과 함께 출판에 따르는 비용 등의 문제도 고려되어야 할 문제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오키나와에 대한 탐구를 지속하면서, 나는 ‘자주 문학 너머의 문학’ 혹은 ‘경계 너머의 경계’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이 시대에 한 사람의 평론가이자 문학연구자로서, 내 눈앞에 있는 오키나와 문학은 무엇인가. 내게는 그것이 단순히 한국문학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이라기보다는, 모든 폭력과 억압에서 해방된 인간화된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존재의 편재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옛 노래처럼, 동지는 간 데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숨어 있다. ‘발견의 시선’이 부재했을 뿐이다.   

이명원·경희대 교수/문학평론가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성균관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최일수 문학비평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이후 문학평론가로 활동해왔다. <비평과전망> <내일을여는작가> <실천문학>의 주간을 역임했다. 지은 책에 <타는 혀>, <해독>, <파문>, <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 <종언 이후>, <시장권력과 인문정신>, <두섬: 저항의 양극, 한국과 오키나와> 등이 있다. 상상비평상, 성균문학상, 한국출판문화상(저술 부문)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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