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전공 입학’이라는 허상과 그 정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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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전공 입학’이라는 허상과 그 정치성
  •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 승인 2024.04.07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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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남 칼럼]

교육부의 대학혁신지원사업과 국립대학육성사업 기본계획(2024.1.30.)의 핵심은 현재 대학가의 첨예한 화두인 ‘무전공 입학’을 제도화하는 데 있다. 교육부는 성과급성 교육재정의 가산점 요건으로 일정 규모의 ‘무전공 입학’정원 기준을 요구하고 있는데, 그 대상은 사실 국립대학과 수도권 사립대학에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지방 소재 사립대학들도 이번 ‘글로컬대학 육성사업’ 공모에 87%나 신청하면서(2024.3.25.) 교육부가 강요하는 이 핵심 정책을 나서서 수용하다 보니 당연히 의제는 ‘무전공 입학’정원을 어느 정도의 규모로 할지에 쏠리게 되었다. 하지만 ‘무전공 입학’정원의 적절한 수준에 관한 판단을 떠나 그 제도의 도입 자체를 근본에서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자치와 학문의 자유에 맡겨 심사숙고하여야 할 학사제도의 변경을 번갯불에 콩 볶듯 추진해야 할 짓인지, 최소한의 교육자적 양식에서 따져보겠다는 말이다. 

첫째, ‘무전공 입학’을 통해 학생에게 전공 선택권을 보장하여야 한다는 주장에는 중요한 속임수가 숨어 있다. 학생은 수시와 정시라는 대학입학의 전형에서 폭넓은 선택권을 이미 보장받고 있다. 그리고 학생은 자신이 내린 선택에 따른 시간과 노력을 감수할 수만 있다면 자퇴나 편입 등을 통해 언제든지 그 선택을 철회하고 다시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 또한 제한된 범위이긴 하지만 입학 후에도 전과를 통해 새로운 전공으로 옮기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전공 입학’의 도입은 학생들에게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반복되는 선택의 강요와 오히려 불안정성을 제공할 뿐이다. 

무엇보다도 한국 사회에서 학생 선택권은 단지 전공의 선택에 한정되지 않고 서열화된 대학의 위계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학의 서열화야말로 전공 선택권을 포함한 모든 교육 가치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따라서 학생의 선택권을 진정으로 보장하고자 한다면, 교육부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라도 대학의 서열화와 그에 따른 차별적 대우를 철폐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만 할 것이다. 또한 시민들도 썩어들어가는 한국 고등교육의 구조를 숨긴 채 겉만 화려한 치장에 몰두하는 교육부의 이 고질적인 버릇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이번 ‘무전공 입학’에는 그 합목적성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수단이 목적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교육부가 내세운 목적은 ‘급변하는 미래사회에 맞는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는’ 데 있다. 학문의 융합은 학문의 기존 경계를 가로지르며 현실의 복잡하고 다양한 요구에 학제적 수준으로 대응하는 움직임을 말한다. 따라서 그 경계를 넘나들기 위해서도 ‘나’는 나만의 고유한 학문을 수행하고 있어야 하며, 학문의 융합에 이를 정도의 전공을 이해하려면 최소한 학부의 고학년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다소의 상관성은 존재하겠지만 교육과정의 혁신과 입학제도의 개선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관계도 발견되지 않는다. 지금의 입학제도 아래에서도 학문의 융합을 도모할 교육과정 혁신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부가 진심으로 학문의 융합을 도모하고자 한다면 이 목적에 실제 부합하는 교육과정 혁신안을 기획하여 토론하고 제도화하는 데 노력하여야 한다.

셋째, 최근 15년 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번 ‘무전공 입학’이 마주할 운명은 매우 분명하다. 전공을 정하지 않고 입학하는 제도는 15년 전 법학전문대학원이 한국에 전격 도입되면서 생긴 부산물이라 할 수 있다. 법학전문대학원이 설치된 전국의 25개 대학은 기존 법학과를 폐지하면서, 이 특수대학원의 입학정원을 할당받으면서도 폐지된 법학과의 학부 입학정원을 자신의 대학교에 고스란히 남겼다. 각 대학교는 기존 법학과의 입학정원을 분산시키면서 대부분 자유(자율)전공학부 또는 계열(이하 ‘자유전공학부’)을 만들었다. 자유전공학부가 매우 낯선 개념이었지만 선호도가 제법 높아지다 보니 많은 대학교가 뒤이어 설치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입학 후 오히려 취업 등의 현실적 요구에 눈을 뜬 학생들이 취업에 유리한 소위 인기 전공에 지나치게 쏠리면서 학생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고 성적순으로 전공을 배정하는 등 많은 대학교가 그 운영에 어려움을 겪자 자유전공학부를 폐지하고 그 정체성이 모호한 이름의 전공을 새로이 개설하였다. 

물론 법학전문대학원을 운영하는 대학교 몇몇은 아직도 그 자유전공학부를 유지하고 있으나, 현재 자유전공학부가 개설된 대학교 십여 곳은 대부분 구조조정 후 입학정원의 잉여분을 처리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한 고등교육의 실험실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최근 ‘대학교육연구소’의 보도에 따르면(2024.3.28.), 2022년 기준 조사대학 12개교 중 8개교가 자유전공학부의 중도 탈락률이 평균보다 높았으며 2개교는 4배보다도 더 높았다(4개교는 평균과 비슷). 이것은 지금이라도 당장 무책임한 ‘무전공 입학’ 제도를 멈추라고 하는 교육 현장의 엄중한 경고다.

자유전공학부 운영이 보여준 지난 15년의 난맥상만으로도 ‘무전공 입학’의 운명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학생들은 취업전선에 조금이라도 유리한 전공으로 크게 쏠릴 것이며, 이는 다시 학생의 전공 선택권 보장이라는 명분이 사실상 그 선택권을 죽이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결국 선택하지 않은 전공을 억지로 수용하거나 중도 탈락하여 학교를 떠나는 학생의 수가 점점 늘어날 것이다. 애초 교육부가 내세웠던, 융합형 인재 양성이라는 화려한 명분은 흔적조차 남지 않을 것이며, 그 책임을 고스란히 대학 구성원들에게 전가할 것이다. 결국 지금도 존립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초학문의 붕괴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고등교육재정이 충분하지 않은 대학들은 진퇴양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전공 입학’이야말로 교육적 실체를 전혀 갖지 않는 허상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긴 하지만 국립이든 사립이든, 수도권의 대학이든 아니든 한국의 대학은 무척 가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전공 입학’이라는 허상을 강요하는 교육부의 정치적 기획은 무엇인가?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담보하는 데 전혀 지혜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교육부가 자신의 무능을 잠깐이나마 덮고자 성과급을 수단으로 고등교육과 대학을 정치적으로 지배하는 데 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더 두려운 것은 판돈을 걸고 노름에 전념하는 듯한 대한민국의 고등교육 정책을 수용하면서도 대학에서 학문의 자유와 대학자치를 기대하는 우리의 모순된 자화상이다. 어쩌면 오늘의 나무에서 어제의 물고기를 찾는 꼴이기 때문이다.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인제대학교 법학과 교수로 『민주법학』 편집위원이며, 전공은 계약법인데 교육법, 인권법, 법여성학, 사회철학, 사회과학방법론, 법인류학 등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경남 근현대사: 사건, 공간, 운동』(공저, 2023), 『여성과 몸』(공저, 2019), 『대학정책, 어떻게 바꿀 것인가』(공저, 2017), 『민법사례연습』(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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