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절린드 크라우스와 함께 현대미술의 예민한 경계를 더듬어 나가기
상태바
로절린드 크라우스와 함께 현대미술의 예민한 경계를 더듬어 나가기
  • 최종철 이화여대·미술이론
  • 승인 2024.04.07 06: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저자에게 듣는다_ 『로절린드 크라우스』 (최종철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144쪽, 2024.02)

 

신간 <로절린드 크라우스>는 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 현상학과 정신분석학을 넘나드는 크라우스의 복잡한 사유를 열 가지 키워드로 알기 쉽게 정리한다. 1970-80년대 크라우스의 초기작에 등장하는 그리드(격자), 인덱스(지표), 기호사각형에서부터, 중기 이론의 핵심 키워드인 시각적 무의식과 비정형, 그리고 2000년대 이후 연구의 새로운 주제인 포스트미디엄 상황, 기술적 토대, 매체의 재창안까지 크라우스 이론 전반을 빠짐없이 다룬다. 각 단락에서 해설되는 크라우스의 주요 개념들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대기 순으로 진행되는 단락들로부터 그녀가 어떤 이론적 동기과 관점으로 현대미술을 바라봤는지 그 변화의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로절린드 크라우스는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현대미술 이론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이 책은 크라우스의 이론을 연구하는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현대미술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실천하려는 작가와 미술애호가들에게 유용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컬럼비아 대학 미술사학과 교수인 크라우스는 전통적인 미술사와 다른 새로운 방법론을 개척해 왔다. 크라우스에 관한 연구서를 쓴 데이빗 케리어는 크라우스를 “철학적 미술 비평가”라 부른다. 그녀의 연구가 구조주의, 현상학, 정신분석학을 망라하는 다양한 이론을 바탕으로 하며, 예술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을 발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아 예술의 의도와 욕망, 그것의 내적 본질을 묻고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역사적인 대상도 사유와 해석 체계를 통해 구성되고 평가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고 크라우스는 말한다. 그리고 이 사유와 해석은 미술사의 전 시대를 아우르는 불변의 체계에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에 고유한 담론들 안에서 스스로를 쉼 없이 쇄신해 왔다. 

미국 모더니즘 이론의 대가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후계자로 불렸던 크라우스였으나, 곧 모더니즘의 신화에 도전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의 분산적(dispersal) 실천에 가담한 점, 단순히 분산의 다원적, 해체적 열망에 휩쓸리지 않고 이 새로운 실천의 구조적 질서를 파악하려고 노력한 점, 모두가 포스트모던의 정치적 구호에 경도되고 그것이 약속한 유토피아를 지향하고 있을 때 “음란한(obscene) 동기”로 초현실주의와 바타유에 탐닉하고 그로부터 탈승화의 바닥으로 내려갔던 것, 그리고 최근 설치미술의 국제적 유행이 야기한 반예술적, 반특정적 흐름에 대항해 ‘십자군 전쟁’을 벌이며 다시 모더니스트의 면모를 드러낸 점 등은 모순적인 자기-배반이 아니라, 담론의 흐름에 따라 자기 사유를 쇄신해 온 부단한 ‘자기-혁신의 변증적 과정’인 것이다.

크라우스가 창간한 저명한 비평지 <옥토버>(동료 아넷 미켈슨과 1976년 공동창간)는 바로 이러한 철학적 미술 비평의 산실이었다. 크라우스와 아울러 이브 알랭 브와, 벤자민 부흘로, 할 포스터 등에 의해 주도된 옥토버 논문들의 특징은 포스트모던 예술의 개념적 혹은 ‘철학적’ 형식에 대한 비평을 바로 그 철학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실로 다양한 유럽 철학의 최신 흐름들이 옥토버를 도관으로 하여 미국에 수입되었다. 이는 당시 옥토버의 공동 창립자 아넷 미켈슨이 유럽 구조주의의 흐름을 누구보다 빨리 이해하고 해설하고 있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실용과 분석에 입각한 미국 철학의 체계가 동시대 미술의 복잡다양한 사유 방식을 충분히 포괄할 수 없다는 긴급성 때문이기도 했다. 이러한 긴급성과 함께, 롤랑바르트와 레비-스트로스, 메를로 퐁티와 라캉, 데리다와 들뢰즈, 그리고 바타유가 현대미술을 읽는 새로운 가늠좌로 적극 소환되었다. 

                    The Expanded Field diagram by Rosalind Krauss (Reprinted from Krauss R. 1979)

형식주의와 역사주의로 점철된 (오직 눈에 보이는 것들만 비평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당시 미국 미술사의 한계를 고려해 본다면, 이러한 새로운 조류가 미국의 비평적 토양을 얼마나 비옥하게 바꿨는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이처럼 난해한 철학적 비평은 즉각적이고 광범위한 독자들의 반응을 얻지 못했다. 대중들은 철학적 사변과 구조주의적 도식으로 가득 찬 그녀의 문장을 어려워했고, 그것을 “가식적이고, 모호하고, 옹졸한” 지적 허영으로 비난했다. 그러나 그처럼 난해한 지적 모험이 없었다면 결코 중심화될 수 없었던 수많은 혁신적인 현대미술들이 크라우스 이론의 당위성을 증명한다. 과연 크라우스의 <확장된 영역에서의 조각>(1979)에 등장한 그 유명한 구조주의 도식이 없었다면 어찌 우리가 ‘풍경’과 ‘건축’ 사이에 움텄던 대지 미술과 공공 미술의 만개를 예상할 수 있었을까? <아방가르드의 독창성 그리고 포스트모던적 반복>(1981)을 통해 그녀가 독창성의 신화를 해체하지 않았다면, 어찌 신디 셔먼과 세리 르빈의 전유(appropriation)를 적법한 실천으로 변호할 수 있을까? <시각적 무의식>(1993)과 <비정형>(1997)의 탈승화적 읽기가 없었다면 과연 우리는 현대미술의 온갖 음난하고 혐오스러운 충동이 일깨우는 내 안의 타자성에 주목할 수 있었을까? 돌이켜 보면, 오늘날 미술과 비평이 크라우스와 옥토버에 빚지지 않은 것이 없다.

                                      Photo of Rosalind Krauss (Image via artoferickunscom)

크라우스는 지난 1999년 동맥류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그 후유증인 단기 기억상실을 치료하기 위한 지난한 재활의 시간을 갖는다. 이 기간은 인간 크라우스에게 뿐만 아니라 미술사학자로서 크라우스에게도 매우 암울한 시기였는데, 왜냐하면 이 시기의 미술이 그녀의 바람대로 ‘포스트-’의 혁신적 가치 속에서 모더니즘을 극복하거나 그것을 완성하는 방식으로 전개된 것이 아니라, 단지 파괴와 전복의 교조화된 반모던적 구호(‘화이트 큐브는 끝났다’)를 반복함으로써, 예술의 고유한 가치를 망각하는 자기모순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제 팔순이 넘은 크라우스는 자신의 남은 생을 현대미술의 이 망각에 저항하는 기억의 투쟁을 독려하기로 결심한다. 이 투쟁은 예술의 특정한 본질을 일깨우는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는 기억의 행위로부터 시작된다. 뇌동맥이 파열되고 모든 기억을 상실한 채 남겨진 크라우스 자신이 자의식을 향한 그러한 집요한 질문들 속에서 되살아난 것처럼, 이 존재론적 질문은 반형식/반매체주의의 내파에 의해 빈사상태에 빠진 현대미술을 구원할 복음의 메시지가 된다. 

과연 크라우스가 혼신의 힘을 다해 전하는 구원의 메시지는 현대미술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일상성과 특정성의 경계에 선 예술은 그저 정치적 구호나 기술적 데이터로 기화하지 않고 여전히 특별한 예술로 남을 수 있을까?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처럼 지속적인 자기 쇄신의 변증적 질문을 통해 크라우스의 미술사는 항상 우리를 현대미술의 가장 예민한 경계로 몰아갔다는 점이다. 그 경계에서 우리는 비로소 예술의 미래가 과거와 밀접히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과거가 없었다면 예술이 발 딛고 설 당대도, 앞으로 나아갈 미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신간 <로절린드 크라우스>는 현대미술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르는 발전의 계기가 바로 예술의 혁신적인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부단한 지적 호기심이었음을, 크라우스의 역작을 통해 증언한다.

 

최종철 이화여대·미술이론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현대미술을 담당하고 있는 교수다. 2012년 미국 플로리다대학교에서 매체 미술로 미술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로절린드 크라우스의 ≪언더 블루 컵≫(2023)을 번역했으며, 포스트미디엄과 관련한 다수의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