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민주주의를 파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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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민주주의를 파괴할 것인가?
  • 박성진 광주교대·정치철학
  • 승인 2024.04.07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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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의 말_ 『AI 시대의 정치이론: 인공지능이 민주주의를 파괴할 것인가?』 (마티아스 리스 지음, 박성진 옮김, 그린비, 576쪽, 2024.02)

 

● 우리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인공지능이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의 가장 고차원적 행위라 할 수 있는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다. 유권자들의 정치적 성향을 분석하여 맞춤형 광고를 보내거나 투표를 포기하도록 정치혐오를 조장하는 등 인공지능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나아가 알고리즘은 각각의 시민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동영상을 추천해주며 사회를 극단적 대립으로까지 몰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사회를 내전의 상태로 이끌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제 인공지능은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것이 되었다. 인공지능은 더 이상 단순한 도구나 컴퓨터 프로그램이 아니다. 우리의 삶을 총체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강력한 정치적 행위자이자 숭배의 대상으로 군림하려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인공지능의 정치성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인공지능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 인공지능을 정치적으로 바라보기

이러한 상황에서 인공지능을 정치적으로 바라보는 한 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있는 마티아스 리스 교수의 『AI시대의 정치이론』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인공지능과 같은 초지능적 존재와 빅데이터 시대를 정치적 관점에서 고찰한다. 디지털 시대의 현상들을 정치적 질문과 연결하여 우리 시대에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이 책은 24시간 감시 체제에서 살고 있으며 이를 벗어날 수 없는 세상에서 인권이 무엇인지 묻고 3세대 인권을 넘어 4세대 인권에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현대인을 인식하는 동시에 인식되는 존재로 규정하며 이들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어떤 권리를 가져야 하는지를 탐구한다. 또한 민주주의와 기술과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탐구하여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는 인공지능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점검한다. 그리고 빅데이터 시대 시민들의 사적 혹은 공적 활동을 통해 생성되는 데이터가 누구의 소유여야 하는지를 평가한다. 데이터 소유권은 현대 사회의 권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데이터의 주인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정보를 생산하고 지식을 독점할 수 있다. 따라서 데이터의 소유권에 관한 이슈는 현대 정치의 핵심적 문제일 수밖에 없고 이 책은 이에 대한 혜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문헌들을 탐구하며 기계에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넘기는 기계 숭배 현상이나 기술로 인해 우리 삶의 의미가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를 여러 각도에서 탐구한다. 아울러 최근의 트랜스휴먼과 포스트휴먼의 논의들을 검토하며 기계나 인공지능이 도덕적 지위나 우리와 같은 정치적 소속감을 가질 수 있는지를 검토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책은 초지능의 출현과 이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인류가 이에 대해 정치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대한 불안

지난 겨울 챗-GPT를 비롯한 다양한 생성형 인공지능이 출현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사회를 총체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제 학교와 회사를 비롯하여 예술과 학문의 현장 등 사회 거의 모든 곳에서 인공지능과의 협업이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으며 인간의 정신적 노동의 많은 부분을 인공지능이 대체하고 있다. 인간은 잉여화될 것이며 사회는 더욱 양극화되고 일반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우리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정치와 최선의 정치 체제라고 믿고 있는 민주주의는 새로운 국면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사회가 걱정하고 두려워하던 디스토피아적 시나리오처럼 되지 않을 것이라는 어떠한 증거나 보장도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통제권을 잃고 인공지능이 우리의 생존을 결정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영화에나 나올 이야기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생존과 생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과거의 시각과 관습에 따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에 무책임하게 대응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은 이러한 현실들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인공지능과 디지털 사회를 정치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 정치적인 해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필독서라 할 수 있다. 인공지능과 함께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이 책은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니다.

 

박성진 광주교대·정치철학

광주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한국 사회에서 정치철학자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지만 늘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미래 사회의 정치적 주체인 ‘포스트데모스’(Post-demos)와 ‘고통과 공포의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기술혁명 시대의 정치와 정치적 주체 그리고 절망이 고여 있는 공간에서의 민주주의에 대해 고민 중이다. 지은 책으로 『현대철학 매뉴얼』이 있으며 대표 연구로는 “Theodor W. Adorno, Artificial Intelligence, and Democracy in the Postdigital Era (2023)”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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