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정치에 실패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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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치에 실패하는 이유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4.04.06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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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는 왜 실패하는가: 분열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문제 제기 | 벤 앤셀 지음 | 박세연 옮김 | 한국경제신문 | 472쪽

 

2024년에는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와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비롯해 전 세계 76개국에서 선거가 치러진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우리는 정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정치의 필요성 혹은 효용감보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 혹은 혐오가 현실에 가깝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런 와중에 이 책은 정치에 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정치는 왜 우리의 삶과 세상을 더 낫게 바꾸지 못했을까?’ 물론 냉소, 정치 혐오와는 철저하게 거리를 둔다. 그 반대다. 정치에 희망에 있기에, 정치가 실패해온 이유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저자는 민주주의, 평등, 연대, 안전, 번영이라는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하는 중요 가치를 통해 우리 사회를 둘러싼 딜레마가 무엇인지, 그 안에서 정치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이 다섯 가지 사안에서 갈등은 필연적이다. 개인 이익과 집단 목표 간의 불일치 때문이다. 저자는 이것을 ‘덫’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 불일치 안에서 타협과 협의의 길을 내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다섯 개의 논점은 다음과 같다.

• 민주주의: 진정한 ‘국민의 뜻’과 같은 것은 없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는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대표하는 말이 ‘국민의 뜻’이다. 저자는 ‘국민의 뜻’이라는 말이 가진 함정을 지적한다.

• 평등: 평등한 권리를 허용하면 평등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평등한 사회일까? 물론 모두 극단적인 경우다. 하나는 완전하게 평등한 소유를 실현하는 사회다. 이는 동시에 불평등한 권리와 자유의 사회라는 뜻이기도 하다. 또 다른 하나는 평등한 경제적 권리를 허용하고 시장이 기능하도록 내버려둔다. 이럴 경우 거대한 경제적 불평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어떤 경우든 정치는 실패한 것이라 지적한다.

• 연대: 우리는 자신이 필요할 때만 사회적 안전망을 원한다

‘연대의 덫’에는 세 가지 원인이 있다. 첫 번째, 우리는 삶의 전체 이야기를 미리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삶 전반에 걸쳐 순수한 기여자가 될 것인지, 즉 연대를 통한 도움의 ‘제공자’가 될지 또는 ‘수령자’가 될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항상 나쁜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나서야 보험에 가입하려고 한다. 두 번째는 연대의 경계에 관한 문제다. 모두가 똑같은 ‘우리’를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는 연대의 범위가 지구 단위이지만 누구는 함께 사는 가족에 한정된다. 세 번째는 근본적으로 동료 시민에 관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 안전: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하면서도 자유를 희생하려 하지는 않는다

“안전의 덫에서 벗어난다는 말은 한편에는 독재가 등장하고 다른 한편에는 무정부 상태의 혼돈이 존재하는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면서, 경찰과 교도소와 군대 같은 제도가 우리의 안전을 지킬 만큼 강하면서도 우리를 착취할 만큼 강하지 않도록 만들어간다는 뜻이다. 정치가 실패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균형을 잡는 법을 배워야 한다.”

• 번영: 단기적으로 우리를 더 부유하게 만드는 것은 장기적으로 더 가난하게 만든다

오늘의 달콤한 풍요는 길을 잃게 만든다. 이런 단기적인 유혹은 장기적인 정체로, 결국은 파멸로 이어진다. ‘번영의 덫’이다. 번영의 덫은 다른 사람과 협력해서 장기적으로 더 부유하게 살 수 있을 때도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는 속이고, 약속을 어기고, 착취함으로써 즉각적인 이익을 취하려 한다. 스스로 제약이 없고 자신의 손을 묶지 않을 때 우리는 다른 이의 노력에 무임승차하려는 단기적인 유혹에 넘어간다. 그리고 단 한 사람이라도 그렇게 할 때 전체는 무너진다.

이 다섯 가지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정치의 역할에서 찾는다. 정치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정치는 필연적인 불일치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우리는 정치를 외면하거나 피해 달아날 수 없다”. 물론 일거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 나타나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기대, 기술과 시장을 통해 나은 세상이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정치가 없어져야 세상이 발전할 것이라는 선동은 오히려 우리를 퇴보하게 만든다. “정치를 외면한 대안은 우리를 좌절의 길로 이끌 것이다.”

다음으로는 개인의 이기심은 자연스러운 사실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기심은 필연적이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이기심이 비도덕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집단적인 목표가 좌절되는 것은 개인의 다양한 이기심이 서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기심을 탓하기보다 제도를 설계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규범을 존중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를 둘러싼 정치적 제도를 너무 성급하게 비효율적이라거나 부패했다고(물론 때로는 그렇지만!)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타협과 조정과 균형이라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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