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왜 가족 안에서 더 빈곤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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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왜 가족 안에서 더 빈곤해지는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4.04.06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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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의 성별: 가족은 어떻게 불평등을 재생산하는가 | 셀린 베시에르·시빌 골라크 지음 | 이민경 옮김 | arte(아르테) | 372쪽

 

부의 불평등에 관한 논의에서 지금까지 제대로 주목받지 않았던 ‘가족’과 ‘성별’이라는 측면을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연구서다.

딸 아들 구분 없이 상속하고, 결혼 중 취득한 재산을 이혼시 아내와 남편에게 동등하게 분배하는 평등주의적 법제가 마련된 21세기, 왜 여전히 여성 가족은 남성 가족보다 가난할까? 두 저자 셀린 베시에르와 시빌 골라크는 유물론적 페미니즘의 관점 아래, 부의 불평등이라는 퍼즐에서 빠진 가족과 성별이라는 조각을 맞춰내는 정교하고 충실한 연구를 진행한다. 이들은 사회과학의 질적연구와 양적연구를 적재적소에 동원한 20년간의 체계적인 추적 관찰과 심층 면담, 실증적인 분석을 통해, “가족 안에서 여성이 왜 빈곤해지는지”, 그리고 “가족에 관한 법제와 실행이 어떻게 여성에게서 체계적으로 부를 박탈하는지”를 밝혀낸다.

자본주의 한가운데를 살아가는 오늘날, 경제적 격차는 계층 간에서만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보다 덜 알려졌으나 똑같이 중요하고도 명백한 사실은, 바로 지금 이 시대에 성별 간에도, 가족 안에서도 경제적 불평등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가족 ‘간’의 문제로 보였던 빈부격차의 초점을 가족 ‘안’으로 이동시킨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문제를 제시한다. 가족‘이’ 여성을 빈곤하게 한다는 것이다.

두 저자는 불평등 문제에 대한 기존 분석들이 대부분 ‘성별’이라는 중요 변인에 대한 고려를 누락해 왔음을 지적한다. 그들은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주장한, ‘자본소득을 통한 수익률이 노동소득을 통한 수익률을 추월한다’는 분석 및 ‘상속이 불평등의 주요 기제’라는 분석에 동의하고, 그의 ‘자본’ 개념을 자신들의 불평등 분석에 필요한 전제로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피케티가 성별에 따라 이러한 자산의 상속과 축적 속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부의 성별 불평등을 만드는 핵심 기제는 다름 아닌 ‘가족’ 안에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계급 혹은 계층에 더해 ‘성별’을 불평등의 주요하고도 독립적인 요인으로 기입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가족은 모든 계층을 아울러 사회 구성의 기본 단위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전 계층을 아울러 부의 성별 불평등이 동일한 원리로 작동하여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난다는 말이기도 하다. 즉, 모든 계층을 아울러서 여성들은 같은 계층의 남성들보다 덜 부유하거나, 적어도 남성이 여성보다 부에 관한 지배권을 더 강하게 가지고 있다.

이 기제를 밝히기 위해 저자들은 ‘가족’을 ‘친밀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제적 제도로 보면서, 그 제도 내에서 부가 축적되고 순환되고 공유되고 전승되는 방식을 분석한다. 가족의 생애주기 내에서 저자들이 특별히 주목한 사건은 가족 내에서 경제적 자원이 이전되는 대표적인 두 순간, ‘상속’과 ‘이혼’의 순간이다. 그렇게 관찰한 가족 내 부의 이전의 특징이자 부의 성별 불평등을 만드는 원인 중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가족 내 경제구조’를 유지시키는 여성들의 노동은 비가시화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가사 노동이 무급이며 제도 속에 노동으로 규정되지 않음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둘째로, 부모-자녀 간의 부 및 지위 대물림 장면, 저자들이 ‘가족 재생산 전략’이라는 용어로 포착한 가족 내 경제 실행 과정에서 딸은 차별받는다. 상속이 발생하기 이전, 사회화 과정에서부터, 딸들은 경제적 자원에 관심이 없게 길러지는 반면 아들은 그 반대다. 상속 장면에서는 더 본격적이다. 아들이 집이나 사업체 같은 집안의 더 중요한 ‘뼈대가 되는’ 자산을, 더 많이, 더 유리하게 받는다. 셋째로, 이혼 시 대체로 자녀의 주돌봄자가 되는 아내는 양육비 청구와 주거비 등의 측면에서 재산 관계 정리시 불리하다. 이러한 여러 차원을 종합해 보면 부의 성별 불평등은 가족 내에서 만들어진다.

한편, 사적이고 비공식적인 영역이라 여겨지는 ‘가족 내 경제구조’를 공인하고 제도화하는 세계가 존재한다. 바로 법과 회계의 세계다. 변호사와 공증인 등 법률 전문가들의 사무실부터 판사들이 주재하는 법정까지 이러한 법의 공간에는 촘촘히 계층 차별적, 성차별적 편향이 스며들어 있다. 이들은 고객의 계층에 따라 법적 조언을 다르게 제공하거나, 남성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분식회계나 다름없는 회계 기법을 사용하며, 세금 회피 기술을 알려 주기도 한다. 또한 자신들에게 내재한 성차별적 편견으로 인해 현실과 동떨어진 ‘생계 부양자 남성 대 양육 제공자 여성 모델’에 기초한, 그러므로 남성에게 더 호의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나아가 저자들은 법과 복지정책이 여성의 재정적 취약성과 의존을 정당화하는 순간들도 예리하게 포착해 낸다.

오늘날, 적어도 가족과 재산에 관련한 정책 및 법제는 여성과 남성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여 여성과 남성은 이제 형식적으로는 평등한 듯 보인다. 그러나 이 형식상의 평등주의가 부의 불평등에서 ‘성별’ 요인을 가려지게 한 장막이라는 것이 저자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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